이덕찬 감독의 ‘입하(POUR)’는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소년(탕준상 분)은 형사 아빠(서종봉 분)를 따라 일가족이 살해된 사건 현장을 방문하는데, 어느 순간, 아빠는 사라지고 소년은 불길한 소녀(박채원 분)와 마주한다.
장편영화로 기획됐는데 그중 일부만 발췌해 단편영화로 만든 것처럼 이 영화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고, 전사와 후사의 이야기가 친절하게 펼쳐지기보다는 이미지적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 사건에 바로 직면하기보다는 하나 이상의 필터를 통해서 바라본다
‘입하’는 차에 타고 있는 장면이 많은데, 차 안에 있는 사람을 바라볼 때와 차 안에서 밖에 있는 모습을 볼 때 모두 유리창을 통해 보고 때로는 비가 내리는 유리창을 통해 본다.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모습, 빗줄기를 통해 보이는 모습 등 하나 이상의 필터를 통해서 보이는 모습은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며, 소년의 과거 경험과 현재의 상황을 교차해서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피와 비의 의미가 무엇인지 영화 보는 내내 생각하게 만드는데, 피가 현재의 사건, 아픔, 터짐이라면 비는 씻겨 내려감, 흔적을 지움, 울음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 영화 전반의 정서를 이끌고 있는 탕준상
‘입하’는 소년의 시야로 전개된다. 소년은 공포영화의 목격자이거나 예비 희생자인 것 같은 시야로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모습을 바라본다. 카메라 또한 소년의 시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감정이입한 관객은 더 무서울 수 있다.
탕준상은 담담하지만 호기심 있는 행동을 하는데, 에너지가 넘쳐서가 아닌 진한 내적 아픔을 겪고 있어서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는 듯한 모습을 진지하게 연기한다. 가볍지도 않으며, 지나치게 무겁지도 않게 설정해 어떤 장면이 이어지더라도 개연성을 확보할 수 있는 탕준상의 표정 연기가 주목된다.
◇ 장편영화로 기획된 시나리오의 일부만 샘플로 본 느낌
‘입하’는 장편영화로 기획된 시나리오의 일부만 샘플로 본 느낌이 든다. 전사와 후사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이미지적으로 빨리 지나가기에 이해하지 못한 디테일이 많을 것 같고, 자세하게 펼쳐지지 않은 숨은 이야기가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작품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소년의 감정 안에 들어있는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은 추정할 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디테일하게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소년과 엄마(권귀빈 분)의 이야기, 소년과 아빠의 이야기, 소년과 엄마, 아빠의 이야기, 아빠와 문선영(안지희 분)의 이야기가 일가족이 살해된 집의 이야기와 하나씩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만약 장편영화를 염두에 뒀다면 모든 스포일러를 단편영화 안에서 오픈할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무서운 느낌이 여운으로 남을 것인데, 같이 상영될 다른 단편영화에 정서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이 흥미롭게 상상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