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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혜숙씨’(감독 정형화) 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30)

발행일 : 2018-02-02 13:44:38

정형화 감독의 ‘혜숙씨’는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혜숙(김금순 분)은 오늘도 연속극을 보는데, 그는 다정하게 혜숙의 이름을 불러준다.

드라마가 주는 판타지와 드라마를 통해 얻는 위로와 힐링이 얼마나 큰 위력을 발휘하는지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혜숙의 행동을 폄하해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깨달을 수도 있다.

‘혜숙씨’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혜숙씨’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드라마와 대화하는 혜숙, 사람은 많아도 정작 내면의 대화를 할 사람은 없는 시대

‘혜숙씨’에서 드라마와 대화하는 혜숙의 모습이 별로 특이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 이유는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과 대화를 하고, 스마트폰의 인공지능 음성명령 서비스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온 국민의 연기자가 되려고 연기 연습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이 되지 않는 시대에 외로움을 달래줄 대상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너저분한 남편 영환(박찬국 분)과 궁상떠는 딸 희수(이기리 분)와의 일상보다, 연속극 남주(박종찬 분)가 연속극 혜숙(오혜수 분)에게 부르는 이름을 듣는 것이 혜숙에게는 더 짜릿하다. 외로움과 대화 단절이 문제이고, 대화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게 한다면, 시대상이 바뀔 수도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 드라마에 감정이입하는 이유

드라마에 빠져드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두 가지 중 하나는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 감정이입해 시청하는 그 순간 나도 주인공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나는 드라마 속 불행한 주인공보다는 괜찮고 행복하다는 대리만족, 대리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이는 주로 막장드라마에 적용되는데,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이유는 그만큼 심리적인 반대급부가 있기 때문이다.

‘혜숙씨’에서 혜숙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인데,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 본인과 같지 않더라도 본인의 이름을 불러준다고 반복해서 생각하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들리는 순간이 올 것이고, 사랑받는 주인공이 된 것처럼 짜릿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은 충분한 이유와 개연성이 있다.

‘혜숙씨’ 정형화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혜숙씨’ 정형화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무덤덤한 일상생활에서의 ‘사리대화’, 드라마 속 주인공이 건네는 ‘심정대화’

대화는 정보와 지식을 주고받는 ‘사리대화(事理對話)’와 감정을 주고받는 ‘심정대화(心情對話)’가 있다. “날씨가 엄청 추운데 몇 도나 될까?”라는 질문에 “현재 온도는 영하 15도이고, 바람이 불기 때문에 체감온도는 영하 22도로 추운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하면 사리대화로 대답한 것이고, “추우니까 옷을 따뜻하게 입어.” 또는 “이리 와, 내가 안아줄게.”라고 하면 심정대화로 대답하는 것이다.

‘혜숙씨’에서 혜숙은 남편에게 무드 없다고 말하는데, 남편과 딸이 혜숙에게 하는 대화는 팩트를 기반으로 한 사리대화가 대부분이다. 반면에 드라마 속 주인공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상대의 마음을 꿰뚫는 대답을 하는데, 심정대화를 통해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대상에게 마음이 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능 프로그램보다 뉴스보다 드라마에 더욱 열광하게 되는 이유는 다른 장르보다 드라마에서 사리대화를 가장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잘생긴 주인공 때문일 수도 있는데, 잘생겼는데다 사리대화까지 한다면 그야말로 판타지인 것이다.

‘혜숙씨’를 보면서 혜숙의 행동을 당위를 논리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평상시에 주로 사리대화를 하는 시청자이고, 혜숙의 마음을 헤아리도록 노력한다면 심정대화를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시청자라고 추정할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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