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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봉봉’(감독 김영석) 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32)

발행일 : 2018-02-03 14:54:23

김영석 감독의 ‘봉봉(BonBon)’은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대학원생 영남(박재랑 분)은 지도교수에게 앙심을 품은 여정(박소연 분)의 강권에 못 이겨 교수(송철호 분)에게 전해 줄 불순물 음료수를 마지못해 건네받는데, 연구실로 돌아가던 영남은 우연히 교수와 맞닥뜨리고 만다.

어떤 한 쪽 편에 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두 사람을 조율하고 포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은 약자인 사람이, 양쪽으로부터 받는 압력 앞에서 곤란해하는 모습을 영화는 담고 있는데, 많은 관객들은 자신들의 과거 경험이 오버랩 되면서 감정이입할 수 있다.

‘봉봉’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봉봉’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나보러 어쩌라고? 관객은 자기의 과거 경험을 오버랩 해 바라볼 수 있다

‘봉봉’에서 한 사람은 지도교수이고, 한 사람은 나이가 많은 누나인데 둘 다 나에게 서로 때문에 힘들다며 곤란한 일을 부탁한다. 영화적으로 만든 특별한 설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많이 존재한다.

두 교수가 자기 학파를 부각하고 다른 학파를 폄하하기 위해 모두 나에게 상대 학파를 비난하는 행동을 하게 할 때, 회사에서 서로 다른 부서의 상관이 나에게 각자 자신들의 부서 입장을 대변해 달라고 부탁할 때, 엄마와 아빠가 싸우고 나서 나에게 각자의 입장을 주입시킬 때, 동창회, 동호회, 학교 등의 모임에서 자신들의 편이 되라고 할 때, 선거를 앞두고 있는 후보자 두 명이 각각 나에게 자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상대의 약점을 폭로해달라고 강요할 때를 떠올리면 영남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고 여겨질 수 있다.

◇ 대상관계이론, 멜라니 클라인의 투사적 동일시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은 투사(projection)가 투사적 동일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론을 정립한 학자이다. 투사는 자기가 스스로 견디기 힘든 내면을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가해 자기 마음 안에 있는 것을 외부 세계에 있는 것으로 돌리려는 것을 뜻한다. 주로 죄의식, 열등감, 공격성, 수치심 등 직면하기 어려운 면들이 투사된다.

내가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투사했는데 실제로 상대방은 내가 투사한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있기에, 상대방을 조정해 투사를 현실화하도록 조정하는 적극적인 투사를 투사적 동일시라고 한다.

투사적 동일시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 네 가지 형태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 힘 투사적 동일시, 성적 투사적 동일시,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이다.

‘봉봉’ 김영석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봉봉’ 김영석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영남에게 힘 투사적 동일시와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각각 모두 사용한 여정과 교수

‘봉봉’에서 여정은 영남에게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힘 투사적 동일시와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동시에 사용한다. 대학원 선배 누나라는 힘, 물리적인 힘을 이용해 불순물 음료수를 교수에게 전달하라고 강요하면서도, 너 아니면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요청하는 양면 전략을 동시에 사용한다.

“나는 너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고 의존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가하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와 “너는 나 없이는 살 수가 없어”라는 힘의 메시지를 통해 상대방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하는 힘 투사적 동일시를 연이어 번갈아 사용하기 때문에, 영남은 거절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는 것이다.

교수 또한 영남에게 힘 투사적 동일시와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한다. 영남이 없으면 연구실이 돌아가지 않는다며 나중에 교수가 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면서도, 수틀리면 이전처럼 석사 논문을 바로 찢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어필한다.

교수는 의존적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할 때 환심사기 투사적 동일시도 같이 사용한다는 점 또한 눈에 띄는데, 여정의 말만 들으면 무자비할 것만 같았던 교수는 영남에게 존댓말을 하고, 그동안 자기가 영남에게 잘했던 것을 어필해 환심과 동정을 사려고 한다.

‘봉봉’이 단편영화가 아니라 더 긴 이야기였다면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영남과 여정, 영남과 교수, 여정과 교수, 그리고 세 사람 간의 관계성의 전사와 후사가 뒷받침됐을 수도 있다.

‘봉봉’에서 반전을 주는 아이디어는 관객들의 폭소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어진 두 개의 큰 반전 이후에 작은 반전이 또 이어지는데, 갈등을 해소하면서 모든 긴장을 한 번에 없애지 않고 다시 작은 긴장감을 주는 설정한다. 마지막의 작은 반전이 주는 시각적 여운이 더 크게 기억될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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