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규 감독의 ‘그랑주떼(Grand Jeté)’는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무대를 앞두고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 다희(백지혜 분)는 공연 레퍼토리 중 고난도 동작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다.
영화는 항상 동료와 경쟁해야 하는 예술가의 고민과 갈등, 마음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의 답답함을 담고 있는데,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해도 같은 아티스트들끼리는 절대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떠올리게 만든다.
◇ 항상 동료와 경쟁해야 하는 예술가의 고민과 갈등,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 따라주지 않는 몸
그랑주떼는 양 다리를 공중에서 반대 방향으로 향하게 하며 점프하는 무척 고난도의 동작을 뜻한다. 다희는 마음대로 몸이 따라주지 않았을 때의 답답함을 느낀다.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 따라주지 않는 몸의 괴리는 더욱 완벽하게 예술적인 성취를 하고 싶을 때 더욱 커질 수 있는데, 이는 발레뿐만 아니라 모든 무대공연을 앞둔 아티스트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항이다.
항상 동료와 경쟁해야 하는 예술가의 고민과 갈등도 ‘그랑주떼’에서는 날카롭게 표출된다. 누구든 나를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만 하는데, 따라가는 재연(이정민 분)보다 앞서가는 다희가 더 불안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 큰 시험을 앞둔 사람들의 극심한 스트레스, 무대를 앞둔 아티스트에게 매 순간의 무대가 큰 시험일 수 있다
큰 시험을 앞둔 사람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대를 앞둔 아티스트에게는 매 순간의 무대가 큰 시험과 같은 긴장과 스트레스의 반복과 연속일 수 있다.
내 실력을 제대로 펼쳐야 한다는 압박감과 함께, 지금 내가 앞서나가고 있어도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상시 공존하기 때문이다. 독보적인 실력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가는 사람의 스트레스와 앞서가는 사람의 불안감이 적이 아닌 동료 사이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정말 같이 공감해야 할 사람을 공감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예술가의 아이러니일 수도 있다.
◇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해도 같은 아티스트끼리는 절대 표현하지 않는다?
예술혼을 불사르는 아티스트는 내면의 치유가 필요한데, 마음의 안정을 줘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 있다. 모두 다 외로운 세상이지만 아티스트는 특히 더 외로울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내 약점을 개방했을 경우 언제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도 모르고, 내가 힘들다는 점을 조금만 이야기해도 배부른 소리 한다며 동종업계 사람들은 나를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들끼리는 속으로 상대방이 무척 잘한다고 생각돼도 실제로 그 사람 앞에서 칭찬하는 경우가 드물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존심이나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누군가를 칭찬할 만큼 대단하지 않고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자격지심이 발동해서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칭찬할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랑주떼’는 이런 경험이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어도 예술혼이 훼손되는 게 아니라는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지금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모든 아티스트를 응원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