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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라이타’(감독 김수림) 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42)

발행일 : 2018-02-04 11:44:55

김수림 감독의 ‘라이타(Lighter)’는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퉁명스러운 택시 기사 재호(홍석연 분)는 유난히 손이 가는 여자 손님을 태우고 가는데, 여러 명의 청년 승객들과 마주치면서 짜증스러운 상황들이 생긴다.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 주는 선입견은 영화 속 다른 여자 손님(남다솜 분)과 관객 모두 가질 수 있는데,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을 방어적으로만 대해야 하는 현실에 작은 청량제를 뿌리는 것 느낌을 준다는 점이 주목된다.

‘라이타’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라이타’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 선입견이지만 그 선입견을 무시하면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

‘라이타’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렇지만, 그 선입견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선입견은 불필요한 상황에서도 방어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방어를 해야 하는 상황을 인지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나 일어날 것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더 잔인하게 펼쳐지는 시대에 살면서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 사이에 오해로 인해 또 다른 피해를 받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에 영화는 귀 기울인다.

살면서 잠재적 가해자가 내 주변에 있기에 조심해야 할 때도 있고, 본의 아니게 잠재적 가해자로 오해받아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다. ‘라이타’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해프닝에 대해 어떤 관객은 자신의 과거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공포심을 느낄 수도 있다.

◇ 아빠의 속 깊은 사랑, 그야말로 판타지일 수 있다

‘라이타’에서 비밀을 공유한 아빠와 딸(오시원 분)의 교감, 딸을 위하는 아빠의 속 깊은 사랑은 그야말로 판타지로 작용할 수 있다. 일을 하면서 험한 상황을 자주 목격하는 아빠는 딸을 철저하게 통제해, 딸의 안전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런데, ‘라이타’에서 아빠는 그런 딸의 행동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보호하면서 속 깊은 사랑을 주는 것이다. 아빠는 딸에게 키다리아저씨와 같은 헌신적인 사랑과 배려, 보호를 하는데, 영화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다.

‘라이타’ 김수림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라이타’ 김수림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충분히 좋은 엄마’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이 말한 ‘멸절(annihilation)’,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및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의 개념을 ‘라이타’의 아빠와 딸에 적용해 생각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자아라는 개념을 아직 가지지 못하고 있으며, 엄마와 자기는 하나의 존재라고 여겨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그런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자기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할 수 있다.

자기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껴지면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들 수 있는데,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 질서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이 아니라 타고난 자기의 기질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뜻한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예방하기 위해 ‘안아 주기(holding)’, ‘다루어 주기(handling)’, ‘대상 제시(object-presenting)’의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위니콧은 말했다.

◇ 딸이 ‘참 자기’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충분히 좋은 엄마’ 역할을 하는 아빠

‘라이타’에서 아빠는 ‘충분히 좋은 엄마’라고 볼 수 있다. 안아 주기, 다루어 주기, 대상 제시를 은연중에 모두 실천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빠는 남자인데 어떻게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는데, 생물학적인 엄마만 가능한 게 아니라 보모, 할머니, 아빠, 선생님 등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은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

만취한 상태에서 아빠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딸은 험한 일을 당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만약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딸은 멸절의 공포를 느끼며 극도의 공포심과 트라우마를 겪게 될 것이다.

‘라이타’에서 아빠는 딸을 멸절의 공포에서 직접적으로 나서 보호하면서, 딸이 거짓 자기가 아닌 참 자기로 살 수 있도록 보호한다. 밖에서의 행동을 안 한 척하는 것, 아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라이타가 없다고 하는 것 모두 거짓 자기일 수 있는데, 아빠의 사랑과 배려는 딸을 참 자기로 살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라이타’에서 아빠의 사랑을 표면적으로 봐도 판타지가 느껴지는데, 위니콧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얼마나 훌륭한지 또다시 감탄하게 된다. ‘라이타’에서의 딸은 자신감을 가지고 대인관계도 잘 할 것으로 충분히 예상된다.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은 할 수 있는데, 내가 저런 아빠가 되겠다고 결심하면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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