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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소년의 자리’(감독 김혜영) 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82)

발행일 : 2018-02-09 18:58:35

김혜영 감독의 ‘소년의 자리’는 2018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상영작인 단편영화이다. 장애를 가진 누나(코마키 분)를 둔 10살 소년(이토 유우토 분)의 꿈은 누나처럼 엄마(타야마 유키 분)에게 사랑받는 것이다. 나름의 방식으로 애써봤지만 늘 혼만 나서 죽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외국인 여자 김유리(강진아 분)는 소년을 사사건건 방해한다.

영화 속 소년의 행동과 마음은 아이의 철없음이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이 말한 ‘멸절(annihilation)’ 및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의 개념을 대입하면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중요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년에게 엄마는 훼손할 수 없는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에, 엄마를 미워하고 저버리는 것은 아예 자기자신이 없어지는 멸절이기 때문에 소년의 내면은 엄마가 미워도 엄마를 저버리는 선택을 할 수 없다. 나름대로 애써 왔지만 혼만 난 소년은, 엄마를 훼손할 수 없기 때문에 자기를 훼손하는 방법인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소년의 자리’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소년의 자리’ 스틸사진.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멸절’과 ‘충분히 좋은 엄마’

위니콧에 의하면, 갓 태어난 아이는 자아라는 개념을 아직 가지지 못하며, 엄마와 자기는 하나의 존재라고 여겨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그렇지만, 그런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자기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하게 된다.

자기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껴지면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드는데,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 질서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이 아니라 타고난 자기의 기질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의미한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예방한다.

◇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일까? ‘소년의 자리’에서 소년에게는 엄마의 사랑을 받는 것일 수 있다

‘가치 있는 인생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로 영화는 시작한다. 장애를 가진 누나는 일반인보다 보호가 더 필요한데, 엄마의 보호를 받는 것을 소년은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누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에 보이는 보호를 적게 받는 자기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소년은, 실제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멸절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소년의 자리’에서 엄마는 누나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기에게는 그렇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소년은 더 힘들 수 있다.

소년은 엄마로부터 보호와 사랑을 받기 위해 누나처럼 몸이 불편해지기를 바랐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를 훼손할 경우에도 누나를 보호하고 있는 엄마가 자기를 보호(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름대로 늘 애써왔지만 늘 혼만 났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소년의 반항심이 발동하지 않을까 반문할 수 있는데,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소년은 엄마를 훼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엄마를 훼손하는 대신 자기를 훼손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도 상대방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인 죽음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표면적인 행동만 보면 소년의 철없는 모습이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소년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한다면, 웃음을 주는 재미있는 장면에서 관객은 가슴을 치며 펑펑 울 수도 있다.

‘소년의 자리’ 김혜영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소년의 자리’ 김혜영 감독. 사진=2018 한예종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제공>

◇ 소년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우연히 만난 외국인 여자 김유리일 수 있다

‘소년의 자리’에서 소년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우연히 만난 외국인 여자 김유리라고 할 수 있다. 엄마가 있는데 엄마도 아닌 외국인 여자가 어떻게 충분히 좋은 여자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엄마의 역할을 엄마가 아닌 보모, 할머니, 아빠, 이모, 고모, 선생님 등이 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좋은 엄마도 생물학적 엄마가 아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유리는 오늘 하루 자기가 위로받아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년과 공감을 하며 공유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김유리가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한다는 전제로 ‘소년의 자리’를 보면, 김유리 역의 강진아가 얼마나 디테일이 강한 연기를 펼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감탄하게 된다.

한일 합작 단편영화 제작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소년의 자리’에 대한 한국 관객과 일본 관객의 반응은, 어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디테일의 차이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보편적인 정서가 환경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어필되는지도 궁금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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