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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리차드 3세’(3) 반리비도적 자아가 폭발하는 황정민

발행일 : 2018-02-15 04:06:58

‘리차드 3세’는 셰익스피어 원작, 서재형 연출, CJ E&M, 샘컴퍼니 주최, 샘컴퍼니 제작의 연극으로 2월 6일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중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을 이용해 ‘리차드 3세’의 리차드 3세를 바라보면 그의 종잡을 수 없는 것 같은 심경의 변화가 결국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반리비도적 자아가 격발될 때 폭발하는 내면 표현에서도 황정민은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로날드 페어베언의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

로날드 페어베언 분열성 양태 모델의 핵심은 리비도적 자아/흥분시키는 대상, 반리비도적 자아/거부의 대상이다. 이 이론을 적용할 때 프로이트(Sigmund Freud)에게 리비도는 쾌락 추구였다면, 페어베언에게 리비도는 대상 추구라는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용어가 주는 선입견은 잘못된 해석을 내리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분열성 양태 모델에서 완전한 고유의 자아는 본래 고유의 대상인 다른 사람과 완전하고 문제없는 관계를 리비도적 연결로 형성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대상과의 완벽한 리비도적 연결이 침해받을 경우, 자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아와 대상을 각각 견딜 수 있는 부분과 견딜 수 없는 부분으로 나눈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자아는 스스로 견딜 수 있는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와 견디기 힘든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로 분리되는데, 이는 각각 대상이 되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의 대상’과 연결된다.

즉, 강하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나의 부분인 ‘리비도적 자아’는 나를 애타고 감질나게 만드는 타인의 부분인 ‘흥분시키는 대상’과 연결된다. 의존적인 나에 대한 혐오와 거부 또한 같이 형성되는데 나의 부분인 ‘반리비도적 자아’가 돼 상대방을 ‘거부의 대상’으로 대하게 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여기까지 듣고 보면, 나와 리비도적 자아, 반리비도적 자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고, 상대방과 흥분시키는 대상, 거부의 대상이 모두 다른 사람인지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인지 궁금해질 수도 있다.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는 모두 나라고 볼 수도 있고 내 안에 있는 나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흥분시키는 대상과 거부의 대상 역시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고, 그 사람 내면에 있는 다른 면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원래의 자아와 대상이 나눠진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같은 결국 같은 사람의 다른 면인 것이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전쟁 승리에 따른 사람들의 태도 변화가 리차드 3세를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로 분열시킨다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지만, 전쟁이 끝나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공은 계속 칭송받는 시간에도 자기는 잊히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힘들어한다.

리차드 3세는 공적을 칭송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들의 평가에 의존하다가, 그들의 평가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자 그들의 평가에 의존하던 자기를 내면에서 스스로 더욱 혐오하게 된 것이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칭찬하던 많은 사람들이 흥분시키는 대상이 돼 리차드 3세의 리비도적 자아를 자극했다면, 더 이상 칭찬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부의 대상으로 여겨져 리차드 3세의 반리비도적 자아를 격발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리차드 3세가 전쟁에서 공을 세우지 않았다면, 내면의 분열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고, 태양이 어둠으로 바뀌는 비극의 씨앗이 싹트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즉, 칭송을 더 이상 받지 못하는 자기의 모습을 견디기 힘든 리차드 3세는 신체적인 콤플렉스를 반리비도적 자아와 결합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인데, 황정민은 리비도적 자아를 표현할 때보다 반리비도적 자아를 표현할 때 더욱 실감 나게 연기를 펼친다.

더욱 곱사등이처럼 움츠리는 동작을 취하면서 어조는 차분하지만 강하고 날카로워지는데, 이런 면을 무대에서 표현하는 황정민을 보면 딱 ‘연극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리차드 3세를 위해 내면을 축적했다기보다는, 내면의 응어리진 무엇을 리차드 3세로 표현한 것처럼 황정민의 연기는 놀랍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반리비도적 자아가 폭발한 리차드 3세는 앤에게 극단의 조치를 취한다

리차드 3세는 앤(박지연 분)에게 사랑을 구애한다. 앤이 없으면 왕권을 차지한다고 해도 자기가 완벽해지지 않다고 생각한다. 리차드 3세에게 앤은 완벽한 대상일 수 있었는데, 앤이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앤에 대한 리차드 3세의 마음은 리비도적 자아와 반리비도적 자아로 나뉜다.

그런데, 상황이 원래 생각하던 대로 돌아가지 않고 마음의 여유가 더 없어지자 리차드 3세의 반리비도적 자아는 앤에게 의존하는 자기의 모습을 혐오하는데 머물지 않고 앤을 없애려는 극단의 조치를 계획하게 만든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앤이 리차드 3세의 사랑을 진심으로 받아줬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거부의 대상인 앤에 대한 리차드 3세의 반리비도적 자아가 격발하지 않았으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더욱 명확한 관계성을 발견할 수 있다.

황정민은 박지연에 대한 반리비도적 자아를 표현할 때, 사랑이 아닌 증오로 표현하지 않고, 사랑이 아닌 제거의 대상으로 표현해 약간의 감정의 점핑을 만든 것인데, 오히려 이런 점이 관객이 감정선을 그대로 유지하게 만든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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