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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리차드 3세’(4) 멸절의 고통 속에 충분히 좋은 엄마의 보호도 받지 못한 황정민

발행일 : 2018-02-16 15:07:10

샘컴퍼니가 제작한 셰익스피어 원작, 서재형 연출의 연극 ‘리차드 3세’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2월 6일부터 3월 4일까지 공연 중이다. 극 중에서 리차드 3세(황정민 분)는 세상을 향한 자기만의 연극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의 행동이 옳은 일은 아니지만 그런 선택을 한 내면에는 절박함과 공포가 내재돼 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이론을 적용하면 리차드 3세는 ‘멸절(annihilation)’의 두려움 속에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는데, 자기를 보호해 줄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 혹은 그 역할을 하는 대상이 한 명도 없었기에 광기가 한 번 격발된 후 멈추지 않고 폭발한 것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멸절’과 ‘충분히 좋은 엄마’

도날드 위니콧에 의하면, 갓 태어난 아이는 자아라는 개념을 아직 가지지 못한다. 태어나기 전 엄마 뱃속에서처럼 엄마와 자기는 하나의 존재라고 여기기 때문에, 자기를 인식하기 전에 엄마를 먼저 인식한다. 자아가 아직 없는 절대적 의존성이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자기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인 멸절을 아이는 경험하게 된다.

그런 아이는 자기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느껴지면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든다.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 질서의 차원에서 옳고 그름이 아닌, 타고난 자기의 기질대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나뉘는데,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이를 이런 경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예방한다.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리차드 3세의 멸절은 전쟁에서의 승리 직후에 자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급격하게 바뀌면서 발생한다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는 전쟁에서 역량을 발휘하면서 칭송을 받는데, 전쟁이 끝나자마자 공은 멀쩡한 육체를 가진 다른 사람들의 몫이 되고 자기는 잊히고 버려진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곱사등이였던 리차드 3세가 전쟁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인정받은 것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쁨과 행복이었을 것이고, 자기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극 중에는 명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이전에 받았을 결핍을 전쟁 중에 많이 해소하고 있었을 수 있다.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그랬던 리차드 3세에게 전쟁이 끝난 후 다른 사람들의 급격한 태도 변화는, 세상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고통과 절망인 멸절에 직면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멸절에서 살아남기 위해 리차드 3세는 적극적이며 파괴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맏형이자 요크 왕가의 황제인 에드워드 4세(정웅인 분), 둘째 형 조지(이갑선 분)와 좋은 형제애를 발휘했던 리차드 3세는 그들을 파괴하기 시작하는 연극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리차드 3세는 시작은 다른 경우들과 마찬가지 시점에서 이뤄졌겠지만 거짓 자기가 지속적으로 힘을 얻으면서 참 자기 또한 지속적으로 파괴한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참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 자기가 참 자기 또한 훼손하게 만들면서 역사적으로도 기억되는 광기를 발휘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참 자기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나의 본 모습이라고 하면, 거짓 자기는 참 자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나의 적응된 모습이 일반적인데, 리차드 3세의 거짓 자기는 보호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만약 리차드 3세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가 있었다면 이런 멸절의 고통에서 보호해 광기의 폭발로 이어지지 않았을 수 있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생물학적 엄마뿐만 아니라 그 역할을 하는 보호, 아빠, 할머니, 이모, 고모, 선생님 등 주변 사람이 될 수도 있는데, 리차드 3세에게는 그런 대상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을 ‘리차드 3세’를 직접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대상은 찾아보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앤(박지연 분)이 가장 적합한 인물로 떠오른다. 만약 앤이 진정으로 리차드 3세를 사랑했고 보호하면서 마음의 안전을 느끼게 했다면 역사는 바뀔 수 있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 멸절의 고통을 표현한 황정민, 거짓 자기일 때 과장한 움직임을 실감 나게 보여준 황정민

‘리차드 3세’에서 황정민의 멸절의 순간을 독백으로 표현하고 그 고통을 몸으로 드러낸 시간은 무척 인상적이다. 극 초반에 펼쳐진 이런 연기는 리차드 3세에 대한 측은지심과 함께 일단 관객이 짧은 시간에 감정이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공연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공연을 직접 관람한 관객들은 황정민의 연기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데, 멸절의 순간을 표현한 황정민의 연기에 주목했다면 광기를 폭발해 질주하는 긴 시간 동안의 연기를 보면서 얼마나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연기인지 관객은 경험할 수 있고, 감동은 몇 배가 될 수 있다.

황정민은 리차드 3세를 표현함에 있어서 과한 액션과 내면 표현에만 집중한 것이 아니라, 멸절의 순간, 거짓 자기를 탄생시키는 순간, 충분히 좋은 엄마가 있었으면 이러지 않았을 것 같은 순간에 엄청나게 에너지를 집중하며 몰입했다는 것을 위니콧의 이론을 적용하면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고, 연기의 디테일까지 볼 수 있게 돼 더욱 감탄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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