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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리차드 3세’(5) 자기대상이 없는 황정민이 표현한 내적 갈등

발행일 : 2018-02-17 18:14:41

2월 6일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리차드 3세’의 리차드 3세(황정민 분)의 캐릭터를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마지막 시간으로,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해 자기심리학을 발전시킨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의 개념을 적용한다.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 ‘멸절(annihilation)’ 및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의 개념을 통해 각각 확인한 리차드 3세의 캐릭터는 자기대상의 관점으로 연결해 생각할 수 있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대상관계이론,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코헛은 개인의 내부 세계보다 다른 사람을 포함한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시했다. 공감이라는 측면과 관계성이라는 측면을 살펴보기 위해 용어를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는데, 코헛은 좁은 의미의 자기는 ‘마음 또는 성격의 한 특정 구조로서의 자기’이고 넓은 의미의 자기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표현된 자기’라고 말했다.

코헛은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와 연결된 외적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들과의 지속적인 자기대상 경험 속에서 자기가 강화되고 유지된다고 봤다. 즉, ‘자기대상’은 ‘자기의 일부로 경험되는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살면서 자기를 비춰 확인하게 되는 모든 것이 자기대상이 될 수 있다. 만족감과 자존감을 스스로 얻지 못하고 자기대상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통해 비친 나의 모습을 통해 심리적 안정감, 심리적 안전감을 얻을 때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자기대상의 종류(1) : 거울 자기대상(mirroring self object)

자기대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거울 자기대상은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자기대상이다. 내가 이뤄낸 성과나 성취도 내게 의미 있는 타자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을 때 드디어 완성됐다고 느끼며, 자아의 존재감을 높이게 된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오늘따라 머리 손질이 잘 돼 스타일 있게 표현됐다고 느끼면 그 자체에 스스로의 행복을 느낄 수도 있지만, 만나는 사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거나 반응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마음은 다운될 수 있다.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 머리 손질을 한 것이 아닐지라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특히 의미 있는 타자로부터는 반응조차 없다면 머리 손질이 잘 돼 얻은 성취의 욕구는 줄어들 수 있고 의욕 또한 상실될 수 있는 것이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자기대상의 종류(2) : 이상화 자기대상(idealizing self object)

이상화 자기대상은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힘이 있고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찾는 대상이다. 이때 대상은 안정되고 이상화된 완벽한 이미지(이상화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자기와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와 융합될 수 없으면, 자기대상으로서의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혹은 있다가 사라질 경우, 이상화 자기대상을 평생 찾으며 헤맬 수도 있다. 더 이상 자기에게 그런 대상이 없다고 생각할 경우 스스로를 더욱 보호할 수 없도록 문란한 성적 행동을 하거나 마약이나 약물, 알코올 중독에 걸리는 회피를 자기도 모르게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자기대상의 종류(3) : 쌍둥이 자기대상(twinship self object)

쌍둥이 자기대상은 부모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끼길 원하는 자기대상을 지칭한다. 이때 부모는 자기를 반영하고 인정하고 보호하는 부모를 뜻한다. 자기가 타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쌍둥이 자기대상을 통해 확인받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되며, 전 생애에 걸쳐 유지되는 욕구로 알려져 있다.

◇ 전쟁 직후, 불특정 다수가 리차드 3세에게 거울 자기대상이 잠깐 됐다가 한꺼번에 더 이상 그런 역할을 하지 않게 된다

전쟁에서 공훈을 세우는 리차드 3세에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반영해주는 거울 자기대상이 된다. 신체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자기를 제대로 반영받지 못했던 리차드 3세는 전쟁을 통해 존재감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지만 그 인정은 계속 이어지지 않고 사라진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처음부터 아예 없던 결핍보다 빼앗겨 생긴 결핍이 훨씬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거울 자기대상이 한꺼번에 없어진 것은 리차드 3세에게 멸절을 경험하게 만드는데, 그 이유가 자기가 곱사등이이기 때문이라는 콤플렉스와 만나 분노의 상승작용을 하게 된다.

황정민은 극 초반 이런 정서를 실감 나게 전달한다. 자기대상이라는 개념을 고려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인정받는 게 뭐 그리 중요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거울 자기대상이 한꺼번에 없어진 황정민은 굽은 등을 더 굽히며 다니는 선택을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 앤을 이상화 자기대상으로 여긴 리차드 3세

‘리차드 3세’에서 앤(박지연 분)을 대상으로 한 리차드 3세의 반복되는 독백을 들으면, 앤은 확실한 이상화 자기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앤의 완벽한 미모와 조건이 자기와 만나 하나가 될 경우 자기 또한 이상적인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리차드 3세는 생각한다.

앤이 없을 경우 왕위를 차지한다고 해도 완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리차드 3세가 나중에 앤을 저버리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앤에 대한 애정이 식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앤보다 더 강한 이상화 자기대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보면 더욱 와닿는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황정민의 연기를 보면 박지연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자기의 권력을 이용해 사랑을 쟁취했다기보다는 구색을 갖추기 위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는데, 이상화 자기대상이라는 것을 고려한 연기인지의 여부를 떠나 정말 디테일한 감성까지 제대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은 역시 황정민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 쌍둥이 자기대상이 없는 리차드 3세! 도날드 위니콧의 개념으로 보면 충분히 좋은 엄마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리차드 3세’에서 리차드 3세에게는 부모와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느끼길 원하는 자기대상인 쌍둥이 자기대상이 없다. 도날드 위니콧의 개념을 적용하면 ‘충분히 좋은 엄마’ 혹은 그 역할을 해 주는 대상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연결해 해석할 수도 있다.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리차드 3세’ 연습사진. 사진=샘컴퍼니 제공>

자기를 보호하고 반영해줄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 자아가 엄청나게 강해지면 무서운 악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리차드 3세는 보여준다. 이번 공연에서 황정민의 연기에 대해 광기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리차드 3세의 캐릭터를 설정해 따라간 게 아니라 내면까지 모두 파악하고 장악한 연기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대상관계이론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리차드 3세 캐릭터와 황정민의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근거를 들어 확인할 수 있다. 연극배우 황정민이 얼마나 대단한 무대 연기를 펼치고 있는지는 그냥 봐도 알 수 있지만, 대상관계이론의 관계성에 기반을 두고 보면 더욱 깊고 절절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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