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D COMPANY, LOTTE ENTERTAINMENT 제작 뮤지컬 ‘닥터지바고(DOCTOR ZHIVAGO)’가 2월 27일부터 5월 7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이다.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거쳐 뮤지컬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전 세계와 한 나라를 뒤흔든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의 혁명 속에 등장인물 간의 힘의 관계, 마음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야기인데, 뮤지컬은 그 안에 너무 많은 것을 다 담으려고 했는지 연결고리가 매끄럽지 않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런 디테일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노래 실력이 커버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 곡선형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빠른 장면 전환과 이야기 전개, 사랑 앞에서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사람들
‘닥터지바고’를 가장 잘 표현하는 대사를 고르자면 당연 “당신을 만나면 난 심장이 터질 것 같아”를 선택할 수 있다. 어마어마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등장인물의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삶과 결단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 뮤지컬은 웃음을 전담하는 캐릭터가 없이 진지하게 진행되는데, 긴장 이완이 없이 계속해 긴장과 집중, 감정을 축적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왜 사랑하는지에 대해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는 부분이 있다.
세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는 네 가지의 연결된 사랑을 하는데, 세 가지의 사랑은 양방향이고 하나의 사랑은 일방향이기 때문에 일곱 가지의 진실된 마음의 이유가 있을 것인데, 명확하게 전달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감정이입하기에 감정이 점핑 되는 부분이 있는데, 소설의 모든 디테일과 연결고리가 다 표현되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배우들과 무대가 만드는 감동이 스토리텔링의 디테일한 연결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의사이면서 시인인 지바고는 원작자가 꿈꾸는 내면일 수도 있다고 생각되는데, 어딜 가든 전쟁 중이고 어딜 가든 안전한 곳이 없는 불안함과 절박함은 ‘닥터지바고’의 곡선형 스크린에 펼쳐지는 빠른 장면 전환으로 극대화된다.
◇ 왜 박은태라고 하는지 와닿고, 왜 조정은과의 조합이 절절하게 느껴지는지 실감 나는 무대
필자는 박은태, 조정은, 최민철이 캐스팅된 회차의 ‘닥터지바고’를 관람했다. 박은태의 지바고는, 왜 박은태, 박은태 하는지 알게 했는데 그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은 미성과 고음의 파워를 같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박은태는 저음으로 대화할 때의 미성을 사용하고 고음으로 노래할 때의 파워를 보여주는데, 보호본능을 발휘하면서도 큰 버팀목의 느낌도 준다. 분노인지 혼란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을 표현하는데 박은태가 가진 변화의 폭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닥터지바고’를 몰입해 관람하니 조정은의 목소리와 박은태의 목소리는 공통점이 있어서 동일하게 정서적인 어필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정은은 분위기 있게 노래 부르는데, 가늘고 여리게 노래 부르는 것 같지만 힘이 있다.
사연이 있는 것 같은 울림과 미세한 떨림을 표현하는 조정은의 목소리는, 박은태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면서 그가 가지지 못하고 있는 의지의 실천에 집중하게 만든다. 강하고 강한 여성이 아닌, 여려 보이지만 당차고 강한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조정은의 목소리와 표정은 무척 훌륭하다.
◇ 유리 지바고를 사랑하는 두 여인, 라라! 토냐!
‘닥터지바고’에서 유리 지바고(류정한, 박은태 분)를 사랑하는 두 여인은 라라(조정은, 전미도 분)와 토냐(이정화 분)이다. 알렉산드르(김봉환 분)와 안나(이경미 분)의 배려로 지바고는 토냐의 집에서 자랐고 어릴 적부터 사랑했었고 결혼했다. 지바고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라라의 존재를 알면서도 묻어두는 헌신적인 여성이다.
라라가 지바고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가 쓴 시를 통해 문학적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고, 간호보조사로 자원했을 때 의사인 지바고와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그의 진면목에 끌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냐와 라라가 지바고를 사랑하고, 지바고도 두 여인을 사랑하는 이유는 충분히 뮤지컬에 내포돼 있다.
◇ 라라를 사랑하는 세 남자, 파샤! 코마로프스키! 지바고!
‘닥터지바고’에서 라라는 세 남자의 사랑을 받는다. 파샤(강필석 분), 코마로프스키(서영주, 최민철 분), 지바고이다. 파샤는 라라를 위해서 세상 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인물이다. 순진하면서도 열정적인 이상주의자를 극단적이고 무자비한 혁명가로 돌변하게 만드는 것은 라라에 대한 사랑이다.
그렇지만, 라라가 파샤를 왜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측면으로만 볼 때 라라는 사랑에 대해서는 수용적이며 수동적인 인물이다. 그렇지만, 지바고를 대할 때는 달라진다.
지바고가 라라에게 끌리는 이유는 분명하고 강렬하다. 물론 라라가 여성으로서 가진 매력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지바고는 자신의 틀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반면 라라는 그것을 직접 실천에 옮기는 추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혐오하는 사람 앞에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라라는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라가 지바고의 문학적 뮤즈라는 점 또한 크게 작용하는데, 그전에 쌓아온 정서와 감정이 라라를 뮤즈로 만들게 됐다고 볼 수 있다.
부정부패한 고위 법관 코마로프스키는 라라를 유린한 인물로 타도의 대상으로 생각되는데, 라라에 대해 헌신적인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몰입한 관객을 멍하게 만들 수도 있다.
코마로프스키의 내면의 디테일이 뮤지컬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코마로프스키와 같은 행동을 한 고위직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생각돼 관객은 매우 불편해질 수도 있다.
‘닥터지바고’에서 원캐스트로 출연하는 강필석과 이정화 또한 뛰어난 연기력과 가창력을 발휘하고 있다. 강필석은 분노한 내면의 절규는 관객에게 두려움과 측은지심이라는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정화는 왈츠 스텝을 밟을 때 무척 아름다운 자세를 취하는데, 아름답지만 절제된 왈츠 스텝처럼 토냐가 현재 평가받는 것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뉘앙스를 전달한다는 점이 주목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