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앤아트컴퍼니 주최 ‘케빈 케너 피아노 리사이틀’이 3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됐다. 케빈 케너(Kevin Kenner)는 쇼팽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모두 석권한 최초의 미국인 피아니스트로, 쇼팽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 11년간 영국왕립음악원 교수, 미국 프로스트 음악원 교수 및 프로스트 쇼팽 페스티벌 & 아카데미 예술감독,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멘토 등 흥미로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
진지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연주하면서도 연주의 깊이와 악센트를 명확하게 표현하는데, 관객의 환호에 시간을 끌지 않고 앙코르곡을 연주하는 등 핵심에 초점을 맞추는 정직한 아티스트이다. 관객과 밀당하지도 않고, 연주에서 바로 빠져나오지도 않는 모습과 음악은 케빈 케너를 계속 응원하게 만들고 연주의 감동을 오랫동안 여운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피아노 한 대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케빈 케너는, 4월 2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8 국제통영음악제 ‘나이트 스튜디오 Ⅰ’ 정경화&케빈 케너, 4월 3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정경화 초청 리사이틀’ 무대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함께 할 예정이다.
◇ 기교적 움직임보다는 담백하고 깊이 있는 연주에 초점을 맞춘 케빈 케너
‘케빈 케너 피아노 리사이틀’은 프레데릭 쇼팽과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의 곡으로 이뤄졌다. 첫 곡인 쇼팽의 ‘Polonaise in F-sharp minor, Op. 44’를 케빈 케너는 진지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연주했는데, 상체의 프레임을 유지하면서도 몰두해 깊이를 느끼게 만들었다.

케빈 케너는 첫 곡에 대한 관객의 박수에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두 번째 곡인 ‘3 Mazurkas Op. 63’ 연주를 이어갔는데, 포장과 디스플레이보다는 핵심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연주 또한 현란하게 보이려고 기교적 움직임을 강조하기보다는 담백하지만 깊이 있음에 초점을 맞췄다. 관객은 몰입하고 집중할수록 케빈 케너의 세계에 빠져들게 됐는데, 즐기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지는 않는 피아니스트의 연주 실력에 감탄하게 된다.

두 번째 마주르카인 ‘No. 2 in F minor’를 연주할 때 경쾌한 부분에서 리듬에 맞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도 얼굴 표정의 변화는 주지 않았는데, 중심축을 유지하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연주가 끝난 후 무대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지도 않고 박수도 오래 받지 않고 피아노 의자에 바로 앉아 집중해 ‘Sonata No. 3 in b minor, Op. 58’ 연주를 시작했는데, 케빈 케너는 몰입한 감정선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서로 다른 곡을 하나하나 나누기보다는 동일선상의 스토리텔링 속 이야기를 펼치는 것처럼 정서를 축적한다는 점이 주목됐다.

케빈 케너는 관객들을 차분하고 조용하게 집중시키는데 탁월함을 발휘했는데, 제4악장에서 역동적으로 질주할 때는 밝음과 무게감을 동시에 표현했다. 세 곡의 연주가 끝난 후 무대 뒤로 들어가자마자 땀을 닦고 다시 인사하러 무대에 나오는 모습은, 그가 전달하는 안정감은 상당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 입술로 노래를 부르는 듯한 리듬감, 클라이맥스를 향한 빠른 연주와 기교의 거침없는 질주
인터미션 후 이어진 ‘케빈 케너 피아노 리사이틀’ 제2부는 파데레프스키의 연주곡으로 펼쳐졌다. 빠르고 밝은 연주 부분에서 케빈 케너는 입술로 노래 부르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했고, 긴 연주시간 동안 클라이맥스를 향한 질주를 하면서 빠른 연주와 기교로 거침없는 질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케빈 케너는 앙코르곡을 연주할 때도 시원시원하게 다음 곡으로 바로 넘어갔다. 첫 앙코르곡인 쇼팽의 ‘Nocturne in c-Sharp minor’를 서정적으로 연주한 케빈 케너는 관객의 박수가 이어지자 바로 쇼팽의 ‘Polonaise in A flat, Op.53’ 연주에 바로 들어갔는데 지금까지의 곡들과는 달리 감정을 쏟아내는 연주를 들려줬고, 관객들 또한 축적돼 가득 차 있는 감정을 쏟아낼 수 있었다.
세 번째 앙코르곡인 파데레프스키의 ‘Minuet Op.14, No.1’ 연주 후에 관객석에서는 가장 큰 박수가 나왔고, 케빈 케너의 표정은 밝아졌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도 빠져나오지 않고 다음 곡으로 감정선과 정서를 연결하던 피아니스트가 세 번째 앙코르곡이 끝난 후 지은 표정은 그야말로 인상적이었다.

관객들이 곡이 끝난 후 박수를 바로 치는 것보다 몇 초라도 여백을 두고 박수를 쳤으면, 케빈 케너의 연주에 대한 여운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감정선과 정서를 끊지 않고 이어가는 케빈 케너의 내면에는 무한선율로 유명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쥘 마스네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상해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