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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 지속 공연의 가능성과 기대를 갖게 만들다

발행일 : 2018-04-01 16:54:47

극단 행복한 사람들 제작, 신성우 작, 원종철 연출의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3월 21부터 4월 1일까지 대학로 JH아트홀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공연은 ‘2018 1번출구연극제’의 일환으로 극단 광대모둠의 ‘지겁소개소’에 이어 공연됐고, 극단 주다의 ‘의자는 잘못없다’, 극단 행의 ‘프로젝트 프랑켄슈타인’, 극단 Studio134의 ‘음악극 갈매기’가 이어질 예정이다.

초연 당시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2인극으로 만들어졌고 긴장감을 축적해 나가는 심리극으로 주목을 끌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초연에서 1인 2역이었던 검사와 변호사가 분리됐고 긴장과 이완을 반복해 가며 관객들이 지치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발전됐다는 점이 무척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해 지속 공연의 가능성과 기대를 갖게 만든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 흰색과 어두운 조명, 밝음과 그림자를 통해 정서를 이미지적으로 쌓아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1990년에 사망한 은둔 작가의 1991년 작품이 비공식 한국 최고가로 팔리면서, 이에 대한 진실에 대해 공방을 벌이는 그레이스(서지유 분), 검사(김동현 분), 변호사(문태수, 김한결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적개심, 팀플레이, 협조, 인간의 경쟁심은 극 초반부터 쌓아가는 정서의 주요한 축인데, 어두운 공간에서의 심문하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탁자 위 불빛은 검사의 그림자보다 그레이스의 그림자를 더 크고 길게 만드는데,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스토리텔링을 이미지적으로 암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공연장 벽면과 바닥, 의자와 탁자 모두 흰색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림자의 형성과 움직임은 더욱 도드라져, 실험적 무용 작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자신의 이름조차 이야기하지 않는 그레이스에게 검사는 탁자 위 전등으로 얼굴을 비춘 후 전등이 흔들리도록 밀어버리는데, 대답을 하지 않은 고착된 상태를 흔드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극 초반 그레이스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에 대해 관객들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공연에서 직사각형 테이블의 위치 변경은 인물의 위상과 갈등 관계의 변경을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테이블의 위치와 방향에 따라 그레이스와 검사는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는데, 테이블 위에 걸터앉거나 아예 위로 올라갈 때의 상황을 비교하면 현재 갈등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가짜 인생, 허무, 진짜 꿈에 대한 화두가 계속 던져지는 것을 보면, 무대 위 그림자가 더 진짜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두워서 그림자가 보이는 것인지, 빛이 있기 때문에 그림자가 보이는 것인지, 빛과 어둠이 어떻게 협조해 팀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그림자라는 팀워크의 결과물이 생기는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무대 설정은 흥미롭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 합리적인 예시와 과잉 일반화를 통해, 본질에 다가가면서도 본질을 피해간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미술품 글램핑 경매를 하면서 직접적으로 본질에 들어가기보다는 비유와 예시를 적절하게 사용해 무대 위 상대방과 관객이 설득당하도록 만드는데, 부분으로는 맞는 논리를 절묘하게 입맛대로 조합해 과잉 일반화한다는 점이 놀랍게 여겨진다.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의 이야기와 극중 박흥용 화백의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속에 오버랩 되는데, 추리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관객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한 논리적, 추리적 접근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을 표현할 때 초연에서는 너무 진지했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완급 조절과 강약 조절을 자유자재로 사용해 더욱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예술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반복해 던지면서 관객을 이끌고 가는 점도 흥미로운데, 미술품을 소장한다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는 말을 통해 의미를 부여할 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점도 눈에 띈다.

‘예술은 돈으로 환산될 수 있어 정직하다. 가짜는 가짜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진짜처럼 하기 위해 완벽하니까 증명할 게 없다. 가짜에게는 진짜라는 기준이 있기 때문에 완벽해질 수 있지만, 진짜는 원본이 없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다. 진본은 세상에 하나로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완벽은 가짜들의 세상에서 사용하는 말이다.’라는 말을 듣다 보면 빠져들어 수긍하게 되는데, 부분으로 모두 맞는 논리를 과잉 일반화함으로써 오류를 만든 궤변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 초반부터 관객을 검사에게 감정이입하게 만들고, 감정이입된 마음이 빠져나갈 시간이 되자 관객석에 앉아 동질감을 전달한 김동현

필자는 문태수 배우가 변호사 역으로 출연한 회차의 공연을 관람했는데, 서지유, 김동현, 문태수 모두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했다. 검사 역의 김동현은 초반의 순수하고 정직한 이미지를 통해 관객의 감정이 편하게 그에게 머물 수 있게 했는데, 중간에 연줄 없는 흑수저 검사라는 것을 밝히며 더욱 공감하게 만들었다가, 그렇지만 욕망 또한 크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가진 게 별로 없지만 뭔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진 관객 내면의 다양한 마음을 공감하게 만들고 있다.

김동현은 진지함 속에 빵 터지는 희극 연기를 펼치기도 하는데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 내 혼자 다 먹는다’라는 뜻의 ‘로티플, 내혼다먹’ 같은 표현을 쓸 때 진정성이 느껴지게 만든다는 점이 주목됐다.

무대에서 있다가 관객석 맨 앞줄에 앉아서 서지유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는데, 김동현에게 감정이입했던 관객의 마음이 서지유에게 이전되는 시간에 관객과 같은 위치와 입장을 유지해 관객의 마음을 계속 잡고 가게 만든다는 디테일 또한 돋보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 등장하면서부터 존재감을 발휘한 문태수, 정신없이 자기 말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변호사의 일관성을 보여주다

변호사 역의 문태수는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의 주도권을 가지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초반 그레이스와 검사 사이에서는 그레이스가 주도권을 가졌다면, 변호사가 등장하면서 그레이스에 대해 변호사가 주도권을 가졌는데, 정신없이 만들어 놓은 후 그레이스를 아주 어릴 때로 데려가는 점은 행동의 측면뿐만 아니라 심리학적 측면에서도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김동현과 서지유는 공연 초반부터 등장하지만 문태수는 시간이 꽤 흐른 후 갈등이 고조됐을 때 등장하는데, 처음부터 쌓아온 두 사람의 정서에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서는 무대 뒤에서 기다리는 동안 마음속으로 근육을 움직이며 계속 연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연극에서 변호사는 반전의 틀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문태수는 등장할 때의 존재감을 발휘하면서도 서지유와 바로 케미를 만들었는데, 관객이 감정선의 점핑을 겪지 않게 했다는 면에서 무척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 그냥 연기하면 어렵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몰입해 감정이입하면 마음 다스리기 힘든 그레이스 역을 소화한 서지유

서지유가 맡은 그레이스는 가장 똑똑할 수도 있고 가장 뻔뻔할 수도 있고 가장 멘탈이 강한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누구 하나 완벽하게 자신의 편이 돼 주지 않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서지유는 시크한 표정 속에 외로움과 불안함을 숨기면서도 관객이 전혀 알아채지 못하게 숨기지는 않고 살짝 눈치채도록 수위를 조절하는 디테일을 발휘했다.

변호사가 조력자로 도와주기는 하지만 그레이스의 진심과 진실을 위한 이해와 믿음이라기보다는, 승률 유지를 위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그레이스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캐릭터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물론 그레이스는 충분히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왜 그녀가 비난받을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녀가 비난받을 행동을 한 것을 증명하려는 사람들만 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기에 스스로 말할 수밖에 없는 그레이스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배역에 깊게 감정이입하기로 유명한 서지유 배우는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지 생각해본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심리극이라고 볼 수 있는데, 김동현과 문태수의 경우 내면의 욕망과 의도는 있지만 그 욕망과 의도는 견고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외적 갈등만 심리적으로 잘 표현하면 된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어메이징 그레이스’ 공연사진. 사진=MyungJib Kim 제공>

그렇지만, 서지유의 경우에는 김동현과의 심리전, 문태수와의 심리전뿐만 아니라 관객과의 심리전을 표현해야 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짜 내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참 자기와 거짓 자기 사이의 심리적 갈등과 그로 인한 아픔을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깊숙하게 표현해야 하기에 매 회차 공연이 끝나면 마음이 고갈될 수도 있다.

지금은 ‘어메이징 그레이스’ 막공(마지막 공연)이 펼쳐지고 있을 시간이다. 극 후반부에 할 말을 하기는 하지만 그레이스는 극 중에서 감정을 시원하게 발산하는 장면이 없기 때문에, 지금 서지유의 내면에는 그레이스가 가장 많이 쌓여 있을 것이다.

막공이 끝나고 배역에서 빨리 빠져나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레이스에 감정이입해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그냥 버리기보다는 스스로 용서해주고 있는 그대로 이해하면서 돌아오기를 바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재재공연에서 다시 서지유의 그레이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전하는 진심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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