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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드라마] 배우 차재이의 되새김질: 웹드라마 ‘낫베이직’ 제1화 ‘고추아가씨’

발행일 : 2018-04-04 17:00:00

(편집자 주) 본지는 웹드라마 ‘낫베이직’에서 방잔수 역으로 출연하는 차재이 배우가 직접 쓴 리뷰를 게재합니다. 드라마 속 배우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김남매 제작/연출, 곽유미 촬영, 네이버TV의 웹드라마 ‘낫베이직’ 제1화는 ‘고추아가씨’입니다.

작품은 이름을 따라가고, 배우는 작품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낫베이직’은 그 속설에 맞는 가장 적절한 예다. 2년 전 겨울, 현재 낫베이직‘의 김감독과 곽유미 감독, 그리고 내가 일이 없어 마음이 힘들 때 충동적으로 만나 한남동 삐거덕대는 낡은 나무 장판 소리마저 구슬프게 들리던 조그마한 가게에서 허세로 악으로 주고받던 이야기, ‘남들이 안 써주면 그냥 우리가 만들자.’

그 말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소소한 소망으로 시작했던 작품이 유명 포털사이트의 배급이 확정되고 업계 내 관계자들에게 관심을 받으며 한 시즌의 시리즈로 완성이 될 줄 그 당시 우리는 상상도 못했다. 정말 ‘평범하지 않은’ 시작. 우리는 그 시작을 계속 평범하지 않게 이어가기로 했다.

‘낫베이직’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낫베이직’ 차재이(방잔수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 ‘끊김’의 미학

‘낫베이직’에선 중간중간 뜬금없는 환경단체 얘기가 나오기도 하고, 외모와는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나오기도 한다. 인물들은 드라마를 쫓기보다 본인 자신의 삶에 충실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때론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게 이질적이다. 그러나 그 이질감이 마치 ‘나’의 모습과 묘하게 닮아 있다.

작품을 기획하며 솔직하게 허물을 벗어내 보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굳어져 ‘낫베이직’ 팀의 목표가 되었다. 웹 콘텐츠이면서 코미디인 ‘낫베이직’이 단순한 스낵 영상이 아닌 ‘작품’이 되려면 우리는 큰 모험을 해야 했다. 그래서 시리즈는 연결되는 듯 연결되지 않고, 옴니버스인 듯하면서도 그 속에 전개가 있다.

‘끊김’의 미학. 그게 ‘낫베이직’ 시리즈의 매력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콘텐츠의 과부하 속에서 시청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일 것이다. 처음부터 찾아보며 시놉시스를 파악하지 않아도 되고, 복잡한 사고를 요구하지 않기에 언제나 어디서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사실 배우로써는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은 구성이다. 연기는 나를 버리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드라마를 따라가기보다 상황에 충실하는 시트콤 장르의 특성상 한 인물의 인생 발자취에 대한 단서가 드물 때가 종종 있다.

‘낫베이직’은 그런 면에서 나에게 두렵기에 어려운 작품이었다. 매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들 속에서 정당성을 찾아야만 하고, 그 안에서 인물을 다차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만 한다. 작품이 시작되고 제1화 촬영을 끝마치고 나서야 안도와 고마움을 느꼈다. 고민한 만큼 나는 점점 성장하고 있다.

다른 배우나 스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스크린에 그대로 투영된다. ‘낫베이직’은 전개가 진행될수록 시청자들과 함께 성장한다. 이는 ‘낫베이직’을 보는 하나의 묘미이자 굳이 웃기려 하지 않아도 웃음을 주는 코드이기도 하다.

◇ 몰리, 그리고 고추아가씨

각본을 쓴 김남매는 우리가 각 배우가 고민하여 만들어온 캐릭터에 대해 서로 정의하는 것을 지양했다. 배우와 패션디자이너 출신이기 때문일까. 유독 김남매는 배우 각자의 창의성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배우들은 각각 맡은 역할의 시각으로 오롯이 다른 캐릭터를 관찰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작가가 의도한 몰리(애슐란 준 분)가 어떤 사람인지, 또는 무엇인지 완벽히 알지 못한다. 아나운서 방잔수(차재이 분)가 바라보는 몰리를 말해보자면 대략 이러하다.

몰리는 ‘낫베이직’의 등장인물 들 중에서 가장 튀는 캐릭터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남장여자로 받아들일 법 하지만 극 중에서의 인물들 중 ‘그녀’를 ‘그’로 보는 사람은 없다. 그녀의 애매모호한 성(性)에 대한 언급은 대본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모이(요미 분)와 엮어 “자매”라고 확신을 주기까지 한다.

‘낫베이직’ 애슐란 준(문몰리 역), 김요미(문모이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낫베이직’ 애슐란 준(문몰리 역), 김요미(문모이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잔수는 놀란다. 그녀의 모호한 성(性) 때문이 아닌 당돌한 태도 때문이다. 몰리는 앵커룸 27에서 실세를 잡고 있는 잔수를 받아들일 수 없고 잔수는 이런 몰리를 경계한다. 그러나 임봉(한강 분)은 몰리가 ‘고추아가씨 선발대회’에 나가는 것에 찬성하고, 임봉이 찬성하자 이내 최대한(손문영 분)과 영원히 잔수 편일 줄만 알았던 몽지(조주리 분)도 몰리를 지지하기 시작한다.

앵커룸 27의 세태는 점점 몰리 쪽으로 기우는 듯 보인다. ‘낫베이직’은 대놓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주장한다거나 정치적인 견해를 드러내고자 하는 행동주의적 성향의 작품은 아니다. 그렇다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1. 몰리는 모이의 분신이며 모이의 억압된 생각들을 대변한다.
2. 다른 사람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하자 그들의 생각까지 대변할 수 있는 권리(일종의 허락)를 갖는다.
3. (혹은 단순히) 몰리는 그냥 몰리다.

방잔수의 권위적인 행동과 대사에서 종종 사용되는 ‘선배’라는 단어에서 이들이 일하고 있는 방송국이 꽤나 보수적인 조직임이 암시된다. 소심한 성격을 가진 임봉과 자신만의 생각 속에 갇혀 사는 듯한 최대한. 오로지 메이크업과 스타일에만 관심이 있는 몽지. 그 조직에 패기 있는 신입사원 모이와 말과 행동에 거침없는 몰리가 들어온다.

몰리의 언행과 행동은 망설임이 없다. 생각을 바로 내뱉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줄 안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의 성(性)이 정의되지 않아야 하는 걸 수도 있다. 그녀는 단순한 여자 혹은 남자의 성을 가진 보통의 사람이 아닌, 억압된 생각과 모순을 대변하는 ‘매운 고추’이자 당찬 ‘아가씨’ 둘 다 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틀 속에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는 인물은 또 하나 있다. 바로 방잔수.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몰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방송국 내의 세상은 그녀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고, 지금까지 그녀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몰리라는 녀석이 와서 그것을 흐트러트려 놓으니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반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몰리가 잔수는 점점 더 밉다.

하지만 잔수와 몰리 둘의 관계를 떼어 놓고 제3자 입장에서 몰리를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 몰리는 작품 내에서 상당히 많은 의견을 던진다. “너는 되는데 나는 왜 안 돼?”라는 그녀의 태도는 본인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평등성’의 주장일 수도 있다. 이전 ‘고추아가씨’와는 분명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를 요구하고, 자신이 속하지 않은 방송국에서도 단지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평하게 대우받기를 원한다. 이런 면에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자매 모이와도 평행선을 달린다.

‘낫베이직’ 차재이(방잔수 역), 조주리(몽지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낫베이직’ 차재이(방잔수 역), 조주리(몽지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중요한 점은 이러한 몰리의 등장이 ‘낫베이직’의 첫 화, 즉 시작점이라는 것. 기존 체계의 무너짐. 새로운 시도. 무모함. 모험. 도전. ‘낫베이직’이 앞으로 전개 상 추구하고자 하는 중요 키워드들을 김남매는 첫 화에 몰리와 잔수 외 다른 캐릭터들과의 관계 확립을 통해 보여준다.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참고 있었던 말들을 대변해주는 몰리가 참으로 통쾌하다. 거기에 맞서서 자기 자리를 지키려 바동대는 잔수의 모습도 미운 듯하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있다. 매번 몰리와 아웅다웅하는 방잔수 역을 맡은 나도 그러한데, 시청자들은 오죽하랴. 지극히 평범한 것 같은 회사 이야기 속에서도 ‘낫베이직’의 다음화가 기대되는 건 아마 첫 화부터 화통 삶아먹는 몰리와 잔수의 케미 덕이 아닐까.

◇ 배우의 한마디 : 애슐란 준

“‘몰리’라는 캐릭터는 배우로써 정말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배역입니다. 우선 ‘젠더벤딩(gender-bending)’을 한다는 점이 배우로써 새로운 연기 영역을 여행하며 남자 배역을 맡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점들을 보고 많은 걸 배웁니다.”

‘낫베이직’ 애슐란 준(문몰리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낫베이직’ 애슐란 준(문몰리 역). 사진=‘낫베이직’ 제공>

작성 차재이 배우
편집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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