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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국립오페라단 ‘마농’(2) 참 자기를 찾은 마농, 거짓 자기로 상처를 숨긴 데 그리외

발행일 : 2018-04-06 00:22:15

4월 5일부터 8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중인 국립오페라단 <마농(Manon)>에서 마농(소프라노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 손지혜 분)과 데 그리외 기사(이즈마엘 요르디, 국윤종 분)(이하 데 그리외)가 어떤 기질과 내면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심리학 중 관계성에 중심을 둔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중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의 ‘참 자기(true self)와 거짓 자기(false self)’를 기준으로 먼저 검토한다.

‘참 자기’와 ‘거짓 자기’에 대한 검토는 이후 이어질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을 기준으로 한 리뷰와 연속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 대상관계이론, 도날드 위니콧의 ‘참 자기’와 ‘거짓 자기’

도날드 위니콧은 자기 자신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낄 경우 참 자기를 지키기 위해 거짓 자기를 만든다고 했다. 여기서 참과 거짓은 도덕적인 질서의 옳고 그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본 기질을 충실히 따르느냐를 뜻한다. 기질대로 사는 자기의 모습이 참 자기라면, 사회적 환경 등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적응해 사는 모습이 거짓 자기인 것이다.

거짓 자기로 산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삶을 산다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기질대로 살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원래 천성이 게으른 사람인데,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사는 거짓 자기의 모습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거짓 자기로 산다고 하면 왠지 위선적으로 사는 것 같은 뉘앙스가 풍기지만, 위니콧은 절대 그런 의미로 용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더 이상 칭찬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하거나 그 칭찬이 더 이상 의미 없다고 느껴지면, 그 사람은 원래의 게으른 사람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원래의 게으른 사람으로 돌아갔을 때 사회적 칭찬을 더 이상 받을 수는 없지만, 게으른 기질 대로 살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행복이냐 불행이냐의 문제도 선택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와 주변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면과 나의 기질이 같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거짓 자기로 살 수밖에 없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참 자기가 기질적으로 타고난 나의 본 모습이라고 하면, 거짓 자기는 참 자기가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원래의 나의 모습을 감추고 세상이 원하는 대로, 다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나의 적응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 마농이 데 그리외에게 첫눈에 반한 이유는, 데 그리외에게 그만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데 그리외를 만남으로 인해 참 자기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마농>에서 마농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수녀원으로 가야 할 처지에 놓여 있었다. 우연히 데 그리외를 만난 마농은 데 그리외와 바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수녀원으로 가지 않고 사랑의 도피를 선택하게 된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의 이런 모습을 보며 개연성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마농의 캐릭터가 너무 감각적이고 즉흥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농의 기질과 내면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농이 데 그리외를 선택한 것은 물론 사랑 때문이지만, 참 자기로 살 수 있는 기회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농은 데 그리외를 만나기 전부터, “인생 내내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가사의 아리아를 불렀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데 그리외를 만난 후에는 “아! 얼마나 재미있을까, 인생 내내 즐길 수 있다면”이라고 노래한다. 사랑하기 때문에 수녀원으로 가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돌파구가 되기 때문에 데 그리외를 매력적으로 느껴 사랑한 것이라고 봐도 설득력이 충분히 있다.

<마농> 제3막 제1장을 보면 마농은 변덕, 충동, 쾌락을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축제가 마농의 참 자기를 상징한다면, 수녀원은 마농의 거짓 자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마농이 죽는 날이 와도 한바탕 웃음 속에서 일 거라고 스스로 말하는 마농의 모습은 이를 뒷받침한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데 그리외는 마농이 참 자기로 살고 싶게 만들어지도록 자극하는 인물이다. 마농이 참 자기로 살면 좋겠다고 흔들리게 해 결심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어떻게 저렇게 빨리 변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금방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마농의 키워드를 건드렸기 때문에 사랑이 시작됐을 수 있다.

마농이 데 그리외에게 금사빠처럼 빠진 이유는 남자로서의 데 그리외의 매력도 작용하지만, 그것보다 마농이 거짓 자기로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드는 트리거의 역할을 했기 때문인 것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남자에게 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남자와 함께 있을 때 억제했던 참 자기가 나오는 것을 경험한 마농은 억누르고 가두었던 기질, 본질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참 자기로 살 수 있다는 것은, 타고난 기질 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마농에게는 행복과 기쁨을 안겨준다는 것을 뜻한다.

현실에서는 마농과는 정반대로, 화려한 직업에 종사하는 게 거짓 자기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직업상 화려한 일에 종사하지만, 수녀처럼 사는 게 마음 편하고 행복한, 그런 모습이 참 자기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는 처음에 노래를 부를 때는 가련하고 처량한 면이 있었는데, 데 그리외 기사를 만난 후 부르는 이중창부터는 자신만만하게 불렀다. 아리아의 톤이 달라졌다는 것은, 참 자기로 살아갈 때 내면의 변화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 사랑이 키워드인 데 그리외에게 수도사와 도박사의 모습은 모두 거짓 자기일 수 있다

<마농>에서 마농과 헤어진 데 그리외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도사가 된다. 데 그리외 신부는 수녀들로부터 수녀라고 칭송을 받는데, 말씀을 들으면 열정이 마음 깊숙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마농’ 공연사진. 사진=국립오페라단 제공>

그렇지만, 데 그리외는 “삶과 이런 헛된 영광이 무슨 소용”이냐고 노래한다. 사랑이 훼손됐을 때 견딜 수 없었던 데 그리외는 수도사가 된 것이고, 마농과 다시 만나면서 도박판에 배팅을 하게 된 것인데, 수도원과 도박판, 이 상반된 공간에서의 데 그리외는 모두 참 자기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용어적 혼동을 가지면 안 되는데, 거짓 자기라고 데 그리외의 신앙심이 거짓이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수도사의 모습이 데 그리외의 기질과는 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데 그리외의 아버지 데 그리외 백작(베이스 김철준 분)이 데 그리외를 찾아와 계속 수도사로 살 것인지 묻는 대목은 이를 뒷받침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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