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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무용] 정동극장 ‘궁: 장녹수전’ 고품격의 한국무용! 드라마를 타고 흐르다

발행일 : 2018-04-07 07:11:27

정동극장 상설공연 <궁: 장녹수전>이 4월 5일부터 정동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정혜진 안무, 오경택 연출로, 천한 노비의 신분으로 시작해 후궁 자리에 올라 궁에 입궐한 조선 유일의 기녀 장녹수(조하늘 분)의 이야기를 한국무용으로 담고 있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기예로 풍류를 즐기고 권력을 탐하며 욕망을 채운 장녹수와 풍류를 사랑한 왕 연산(이혁 분)은 비극적 종말의 마지막 순간에도 “한바탕 잘 놀았노라”라고 외친다. 대사가 있는 이야기로 전개됐을 경우 장녹수 또는 연산에 감정이입하지 못한 관객들은 계속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인데, 드라마로 녹여낸 한국무용으로 표현한 <궁: 장녹수전>은 비극적 감정과 ‘흥’의 정서 사이에서 관객이 편안하게 몰입할 수 있도록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사물놀이라는 틀 안에서 펼쳐진, 드라마가 있는 고품격의 한국무용

<궁: 장녹수전>은 설장고, 삼고무, 교방 살풀이 등 자주 볼 수 없었던 기방 문화 속 장녹수의 춤이 메인 공연인데, 공연의 시작과 커튼콜에는 답교놀이, 등불춤, 허재비 놀음, 판굿 등 신명 나는 우리 전통 놀이, 사물놀이로 채워진다는 점이 주목된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공연 시작부터 경쾌한 리듬에 맞춰 사뿐사뿐 걷는 여자 무용수의 스텝은 사물놀이가 주는 타악의 리듬과 함께 관객들이 빠르게 공감하며 몰입하게 만든다. 본격적인 한국무용이 시작하기 전, 관객 2명을 무대로 불러 전통 놀이를 직접 시현하는 시간이 있는데, 관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그냥 관객석에서 앉아서 끝날 때까지 보면 된다는 안전감을 약간 흔들어 언제든 무대로 불려갈 수 있다는 긴장감과 기대감을 준 것인데, 외국 관객을 비롯해 한국무용과 전통 놀이에 익숙하지 않았던 관객들을 공연에 밀착하게 만든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스토리텔링이 있는 안무가 끝난 후 사진 촬영을 허락한 커튼콜 시간에는 다시 사물놀이로 신나게 마무리한다. 관객을 데리고 온 곳으로 다시 데려다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데, 사물놀이라는 액자 틀 안에 드라마가 있는 고품격의 한국무용이 펼쳐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공연이 한국무용으로만 이뤄져 관객들을 처음부터 그냥 한국무용으로 데려왔으면 감동해서 심장이 빨리 뛰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다. 타악 리듬에 맞춰 시작한 놀이와 무용은 감정선을 그대로 이어가게 만들기도 하고, 정적인 안무에서 더욱 차이를 느끼게 만들어 감동의 깊이를 깊게 만들기도 한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상소문에 갇힌 연산을 표현하는 방법은 현대무용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표현법이었고, 탈을 쓴 사람들의 등장은 각종 탈춤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탈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익명성이라고 볼 수 있다. 견딜 수 없이 힘든 감정을 내면의 무의식으로 억누르기 위해 사용하는 보호막일 수도 있다. 탈을 쓰는 장면에서 한 명이 탈을 쓰는 게 아니라 집단적으로 탈을 썼는데, 집단적 익명성 또는 집단적 감정 보호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 안무를 보면서 쉽게 스토리텔링을 알 수 있는 무용극

<궁: 장녹수전>은 사전에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표현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거나 추상적이지도 않고, 너무 설명적으로 표현돼 상상력을 발휘할 공간을 제약하지도 않는다. 무용 속에서 스토리텔링을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무용만이 가진 무대적 매력과 상상력이 발휘될 수 있는 영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은 상설공연인데, 상설공연은 꾸준히 새로운 관객을 맞이해야 함과 동시에 기존 관객들이 언제든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지속성과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 공연사진. 사진=정동극장 제공>

<궁: 장녹수전>은 무용극으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무용 공연으로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깔끔하고 명확한 무대와 수준급 한국무용은 누군가에게 공연을 추천해 같이 관람하고 싶게 만들고 있다. <궁: 장녹수전>이 정동극장의 새로운 주요 레퍼토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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