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박경순 초대 개인전 <비천(飛天, Floating Dreams)>이 갤러리 미술세계 제2전시장에서 5월 2일부터 7일까지 전시 중이다. ‘비천’은 ‘하늘에 살며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선녀인 천녀(天女)’를 뜻하기도 하고, 작가의 영어 표현에 초점을 맞추면 ‘떠다니는 꿈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제목을 가진 <비천>의 많은 작품들은 작가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계이고 상상이 가미된 세계이기도 하지만,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속에서 날아다니는 모습에는 아름다운 음악과 향기가 머금어 있고, 작가노트에서 작가가 “나비와 같이 날아다니는 여인은 바로 나이고 싶었다”라고 밝힌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 ‘비천(飛天, Floating Dreams), 45.5×53cm, Acrylic on wood pannel’
‘비천(飛天, Floating Dreams), 45.5×53cm, Acrylic on wood pannel’에서 악기를 연주하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인의 움직임의 곡선과 주변에 표현된 곡선의 정서는 일치하는데, 여인은 낯선 세계에 날아다니는 게 아니라 그녀의 세계를 향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크릴의 색을 모두 제거한다고 가정하면 거친 바닥면이 나타날 것이고, 거친 바닥면을 모두 생략한다면 부드러운 평면적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조화는 그림의 역동성과 안정감을 동시에 구현하면서, 작가의 내면과 정서가 날아다니고 싶은 세상이 아예 다른 세상이 아닌 거칠고 굴곡이 있지만 아름답게 색칠할 수 있는 현재일 수도 있다고 추정하게 만든다.
작가는 자유롭기를 원하는데, 그 자유는 현실에서 벗어난 상상 속의 이상적인 자유일 수도 있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 자유롭기를 원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림에 보인다. 여인은 날아다니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미적 자태를 뽐내는데 이 또한 현재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더 큰 예술혼을 발휘하고 싶은 작가의 마음일 수 있다.
◇ ‘비천(飛天, Floating Dreams), 72.7×60.6cm, Acrylic on wood pannel’
‘비천(飛天, Floating Dreams), 72.7×60.6cm, Acrylic on wood pannel’은 연꽃의 자태가 아름답고 화려하게 표현돼 시선을 끄는데, 첫인상의 감동을 유지한 채 차분히 바라보면 그 밑에 있는 다섯 여인들의 자태가 호기심을 유발한다.
밝고 환한 연꽃 안에서 여인이 나오거나 혹은 그런 연꽃을 들고 아름다움을 더욱 발산하는 게 일반적이라면, 그림 속 여인들은 얼핏 봐서는 보이지 않게 검은색으로 표현돼 있고 연꽃보다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돼 있다. 더 자세히 보면 다섯 여인은 모두 다른 움직임의 디테일을 표현하고 있는데, 여인의 발끝 움직임을 표현한 방법도 모두 겹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크고 화려하고 밝지 않아도 누군가의 첫 시선을 받지 못 해도 흥겹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그것도 특정한 사람만 그럴 수 있는 게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과 같이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작가는 표현하려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섯 여인들을 검은색으로 표현했지만 각기 다른 모습으로 모두 행복하게 나타낸 것은 작가의 긍정성을 알려준다. 밝을 때만 긍정적인 게 아니라, 연꽃처럼 화려한 색을 띠는 주변에 비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더라도 충분히 행복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긍정성을 작가는 전달한다.
◇ ‘비천(飛天, Floating Dreams), 25.8×17.9cm, Acrylic on wood pannel’
‘비천(飛天, Floating Dreams), 25.8×17.9cm, Acrylic on wood pannel’은 그야말로 작가의 자화상이라고 생각된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여인, 연꽃 밑에서 춤추던 여인이 바로 나라는 것을 얼굴을 공개하면서 알려주는 듯하다.
얼핏 보면 화려한 색감으로 아름답게 여인을 표현했다고 보인다. 그림의 질감을 고려해 바라보면 얼굴의 밝은 피부에는 상처가 남아 있는 흔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여인 얼굴에 실제로 난 상처일 수도 있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해 내 마음에 난 상처일 수도 있다.
만약 내 마음에 난 상처라면 그 상처를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목과 얼굴까지 꺼냈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 또한 긍정성과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림 속 여인의 아름다움은 밋밋한 아름다움이 아닌 입체적 아름다움인데, 그 입체성에는 예술적 화려함과 내면의 굴곡에서 오는 차이가 모두 담겨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