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칼럼
HOME > 칼럼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인기 상종가 윤채영의 비애

발행일 : 2018-05-28 16:30:49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인기 상종가 윤채영의 비애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서른 즈음에 찾아온 상실감이 그녀를 일본으로 이끌었다. 불과 2년 전 일이다. 일본 시즈오카에서 열린 야마하 레이디스 오픈이 그녀의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첫 경험이었다.

당시 클럽 후원사 야마하의 추천으로 출전권을 얻은 그녀는 예상 밖 선전을 펼치며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 편성됐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현지 언론으로부터 ‘팔등신 미녀 골퍼’라 불리며 챔피언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주인공은 윤채영(31·한화큐셀)이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귀국 후 국내 대회에 전념하면서 일본으로의 화려한 외출은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됐다. 그때만 해도 일본 필드를 다시 밟게 될 거란 생각은 못했다. 숙명엔 예고가 없는 것일까. 돌연 일본행을 택한 윤채영은 퀄리파잉 토너먼트(QT)를 통해 JLPGA 투어에 안착했다. 현실에 안주하는 자신의 모습에 상실감을 느꼈다는 게 이유다.

“일본에서 같이 뛰자”며 권유하던 김하늘(하이트진로), 이보미(이상 30ㆍ노부타 그룹)도 윤채영의 변심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듯하다. 윤채영의 제2 골프인생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현실 안주보다 도전을 택한 윤채영은 제2의 골프인생을 활짝 열었다.

서른 살 ‘늦깎이 신예’ 윤채영의 1차 목표는 시드 유지였다. 그러기 위해선 가급적 많은 대회에 출전해 상금순위를 끌어올려야 했다. 데뷔 첫 시즌이던 지난해는 무려 29개 대회에 출전했는데, 국내 대회 2개를 포함하면 31개 대회를 소화한 셈이다. 2006년 프로데뷔 이래 한 시즌 개인 최다 출장이었다.

△4월 말 한국에서 열린 크리스 F&C 제40회 KLPGA 챔피언십에 출전한 윤채영. (사진=KLPGA 제공)
<△4월 말 한국에서 열린 크리스 F&C 제40회 KLPGA 챔피언십에 출전한 윤채영. (사진=KLPGA 제공) >

그녀의 투혼은 알토란같은 성적으로 결실을 맺었다. 3484만6044엔(약 3억5000만원)의 상금을 벌어들이며 상금순위 35위를 차지, 50위 이내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금 시드를 따냈다. 이 역시 프로 데뷔 후 한 시즌 최다 상금이었다.

올 시즌은 개막전 다이킨 오키드 레이디스 준우승, 악사 레이디스 공동 3위에 오르며 일찌감치 상금순위 상위권에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달라진 위상이 그녀의 존재감을 대변한다. 매 대회 윤채영을 응원하기 위해 대회장을 찾는 일본인 갤러리가 크게 늘었고, 대회장 주변에선 윤채영을 알아보는 현지인도 적지 않다.

이렇듯 성적과 인기라는 두 토끼를 손에 쥐었지만, 요즘 그녀의 얼굴엔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웠다. JLPGA 비회원이란 꼬리표다. 2016년 말 QT를 통과해 2017년 시드를 얻었고, 올해는 지난해 획득한 상금 시드로 투어를 전전하고 있다. 단년(單年)등록자(JLPGA 비회원 선수) 신분이다.

JLPGA는 올해 초 투어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거기엔 2019년부터 JLPGA 정회원만 QT에 출전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만약 올 시즌 상금 시드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패자부활전(QT)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JLPGA 투어 시즌 개막전 준우승 후 생일(3월 5일)을 맞은 윤채영. 동료선수들과 함께 외롭지 않은 생일을 보냈다. (사진=윤채영 트위터)

<△JLPGA 투어 시즌 개막전 준우승 후 생일(3월 5일)을 맞은 윤채영. 동료선수들과 함께 외롭지 않은 생일을 보냈다. (사진=윤채영 트위터) >

QT 제도가 처음 시행된 건 2004년부터다. 그러나 최근에는 프로테스트에 응시하지 않고 QT에 출전하는 일본인이 크게 늘었고, 자국에서 프로테스트에 합격한 외국선수는 아예 프로테스트를 거치지 않고 투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결국 내실 구축이란 명분으로 단년등록자 제도 폐지에 나선 것이다.

단년등록자라도 투어 우승 땐 정회원 자격을 주는 제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동안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투어 제도 개편과 맞물려 지난해부터 다시 시행되고 있다. 이민영(26ㆍ한화큐셀), 김하늘, 이보미, 배희경(26) 등이 우승을 통해 정회원 자격을 얻은 대표적 사례다. 현재 시드권자 중 아직도 단년등록자 꼬리표를 떼지 못한 한국선수는 윤채영과 정재은(29)뿐이다.

오는 2021년에는 단년등록자라는 단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 전에 우승을 하거나 2020년 시즌에 상금 시드를 획득해야만 정회원 자격을 얻어 투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어찌됐든 서른한 살 베테랑 윤채영으로선 부담스러운 과제다. 최근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일본에 오길 잘했다’라는 말에 마침표를 찍기엔 아직 이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필자소개 /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