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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세리 키즈’와 ‘아이 칠드런’

발행일 : 2018-06-12 17:11:31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세리 키즈’와 ‘아이 칠드런’

취재진이 분주해졌다. 약속이나 한 듯 16세 소녀 앞에 진을 치더니 소녀의 얼굴에 카메라 앵글을 고정시켰다. 챔피언 조에 앞서 경기를 마친 소녀는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챔피언 조 플레이를 지켜봤다. 그리고 잠시 뒤 카메라맨들의 플래시 세례가 시작됐다. 소녀의 우승이었다. 쟁쟁한 프로 선수들을 모조리 제치고 우승컵을 안은 천재소녀는 일본열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2014년 4월 일본 구마모토에서 열린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KKT배 반테린 레이디스 오픈 최종 3라운드 풍경이다. 주인공은 올 시즌 JLPGA 투어 황금세대 기수 가쓰 미나미(20)다.

당시 가고시마시립 나가타(長田)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가쓰는 선두에 한 타차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를 출발했지만 시종 아마추어답지 않은 침착한 경기력으로 경쟁자들을 뿌리쳤다. 이보미(30ㆍ노부타 그룹)는 마지막까지 끈질긴 추격전을 펼쳤지만 결국 여중생 아마추어 가쓰 우승의 희생양이 됐다. JLPGA 투어 사상 최연소(15세 293일) 우승이었다. 이 역사적 장면이 일본 여자골프 황금세대의 출발점이다.

△일본 여자 골프 ‘황금세대’의 기수 가쓰 미나미. (사진=오상민)
<△일본 여자 골프 ‘황금세대’의 기수 가쓰 미나미. (사진=오상민) >

올 상반기 일본 골프계 최대 이슈는 황금세대의 약진이다. ‘아이 칠드런’이라 불리는 황금세대는 올 시즌 JLPGA 투어에 데뷔한 1998~1999년생 기대주다. 지난 2011년 일본인 첫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미야자토 아이(33ㆍ일본)를 보며 골프선수 꿈을 키운 세대다. 가쓰를 비롯해 하타오카 나사, 미우라 모모카(이상 19), 아라카키 히나, 고이와이 사쿠라(이상 20) 등이 대표 주자다.

가쓰는 올 시즌 JLPGA 투어 15개 대회에 출전해 6차례 톱10에 진입하며 상금순위 7위에 올라 있다. 최근 열린 리조트 트러스트 레이디스와 요넥스 레이디스에서는 연속 준우승하며 프로 데뷔 첫 우승에 성큼 다가섰다.

2016년과 2017년 일본여자오픈을 2연패한 하타오카는 지난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QT)를 1위로 통과한 ‘괴물 루키’다. 올 시즌 킹스밀 챔피언십에서는 연장 접전 끝에 준우승했고, 볼빅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에서는 각각 톱10에 진입하며 LPGA 투어 우승도 가시권에 뒀다.

△지난 2016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일본여자오픈을 제패 후 현지 TV와 인터뷰하고 있는 하타오카 나사. (사진=오상민)
<△지난 2016년 아마추어 신분으로 일본여자오픈을 제패 후 현지 TV와 인터뷰하고 있는 하타오카 나사. (사진=오상민) >

아라카키는 JLPGA 투어 사이버에이전트 레이디스에서 데뷔 첫 우승을 장식했고, 고이와이와 미우라도 매 대회 우승전선에서 맹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여자골프 황금세대는 1998년 박세리(41)의 US여자오픈 우승을 보며 골프선수 꿈을 키운 ‘세리 키즈’와 많이 닮았다. ‘세리 키즈’는 1988년 전후 세대로 박인비(KB금융그룹), 신지애(쓰리본드), 이보미, 김하늘(하이트진로) 등이 주축이다. 한국 여자골프를 세계 최강으로 이끈 주역들이다.

‘세리 키즈’로 시작된 황금세대는 유소연(28ㆍ메디힐), 김세영(25ㆍ미래에셋), 김효주(23ㆍ롯데), 전인지(24ㆍKB금융그룹), 박성현(25ㆍKEB하나은행) 등 세계적 스타플레이어 탄생으로 이어졌다. 일본인들의 ‘아이 칠드런’에 대한 기대감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세리 키즈’와 ‘아이 칠드런’의 탄생 배경엔 씁쓸한 이면도 존재한다. ‘아이 칠드런’은 일본정부와 민간기업, 선진산업이 집약된 걸작이라면 ‘세리 키즈’는 엘리트스포츠 편향적 체육정책으로 낙후된 산업 속에서 기적처럼 피어난 야생화라 할 수 있다.

일본은 경기력뿐 아니라 골프클럽과 용품, 코스관리, 코칭ㆍ투어 시스템 등 모든 분야에서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골프 선진국이다. 스타플레이어 육성을 위해선 어린 꿈나무에 대한 중장기적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학업에 관해선 특혜가 없다. 특급 선수라도 학생인 이상 학업과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대회 출전이나 합숙으로 출석하지 못한 수업은 주말 및 방학기간에 보충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1/3 결석을 허용하는 국내 교육부의 거꾸로 가는 체육정책에 시끄러운 요즘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공부하는 체육인, 훌륭한 스포츠산업 인재 양성을 위해 백년대계를 준비한 일본 체육계는 여전히 딴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필자소개 /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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