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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변산’(2) 박정민은 김고은의 이상화 자기대상, 김고은은 박정민의 거울 자기대상

발행일 : 2018-06-25 17:40:50

이준익 감독의 <변산(Sunset in My Hometown)>에서 김고은(선미 역)이 박정민(학수 역)을 좋아하는 이유와 성공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동기, 김고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박정민이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 박정민과 고준(용대 역)이 신현빈(미경 역)에게 끌리는 이유를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의 개념을 적용해 해석하면, 그냥 막연히 봤을 때보다 현실적으로 명백하게 와닿는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 하인즈 코헛의 ‘자기대상’
 
대상관계이론은 대상(사람) 사이의 관계, 즉 관계성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심리학 이론이다. 그중에서도 하인즈 코헛은 자기의 내부 세계보다 다른 사람을 포함한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코헛에 의하면, 자기를 세우기 위해서는 항상 자기와 연결된 외적 대상이 필요하고, 그 대상들과의 지속적인 자기대상 경험 속에서 자기가 강화되고 유지된다. ‘자기대상’은 ‘자기의 일부로 경험되는 대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쉽게 표현하면, 내가 나를 바라봄으로써 나의 가치와 매력을 인지하고 발전시키기보다는, 나의 가치와 의미, 매력을 인정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바라봄으로써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기대상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칭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거울 자기대상(mirroring self object), 힘없는 자기에 대한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힘이 있고 완벽하고 전능한 이미지와 융합하려고 찾는 이상화 자기대상(idealizing self object), 부모와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는 느끼길 원하는 쌍둥이 자기대상(twinship self object)이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 박정민은 김고은의 이상화 자기대상
 
<변산>에서 김고은에게 박정민은 이상화 자기대상이다. 학창시절부터 글을 잘 쓰고 이성에게 인기가 많았던 박정민은 김고은이 닮고 싶고 되고 싶은 이상적 존재였다고 볼 수 있다.
 
박정민이 없었더라도 김고은이 소설가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전업 작가가 아니면서도 김고은이 소설을 쓰게 만든 원동력과 자극제는 학창시절에 박정민이 썼던 시가 분명하다는 것을 영화는 알려준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박정민처럼 글을 잘 쓰고 대등하게 되는 것이 김고은에게는 자신을 완벽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정민은 이상화 자기대상인 것이다. 그 이전에는 박정민에게 연락하지 못하다가, 소설이 주목을 받게 되면서 아버지를 핑계 삼아 박정민을 변산에 내려오게 한 것은 이상화 자기대상에게 이제는 자신의 성장된 이미지를 접목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김고은은 박정민의 거울 자기대상
 
<변산>에서 박정민에게 김고은은 거울 자기대상이다. 박정민이 어릴 적 썼던 글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졌는지를 설명하고 다시 인지하게 해 자존감이 줄어든 박정민의 마음을 살려준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래퍼로 성공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변산으로 내려왔고, 변산으로 온 후에는 내기에서 지면서 어릴 적에 자신에게 맞고 지냈던 고준이 시키는 일을 하게 돼 위축되고 축소된 박정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인물인지 김고은은 반영해주는 거울 자기대상의 역할을 한다.
 
김고은은 래퍼를 꿈꾸는 남자가 청춘 때 시인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기대상이다. 친구이지만 팬심을 가진 존재로 머물지 않고 인터뷰를 요청받는 소설가로 성장했기 때문에 박정민의 가치를 반영해주는 김고은의 말이 더욱 신뢰성을 얻는다는 점도 눈에 띈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 신현빈은 박정민의 거울 자기대상
 
<변산>에서 박정민은 신현빈을 좋아하는데, 신현빈은 박정민의 마음을 받아주는 존재에 머물지 않고 김고은과는 다른 표현 방식으로 박정민의 가치를 반영해주는 거울 자기대상의 역할을 한다.
 
박정민의 랩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은 평가를 주변 사람들이 내릴 때 신현빈은 “난 괜찮던데”라고 하면서 평가의 분위기를 바꾼다. 김고은이 박정민의 문학성을 반영해주는 거울 자기대상이라면, 신현빈은 박정민의 래퍼로서의 능력과 매력을 반영해주는 거울 자기대상인 것이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박정민에게 거울 자기대상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자기대상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데, 두 명이 다른 측면으로 자기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박정민이 영화 후반에 자존감과 자신감을 찾아가는 것이 더욱 개연성 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 신현빈은 고준의 이상화 자기대상
 
신현빈은 고준의 이상화 자기대상이기도 한다. <변산>에서 과거와 현재에 고준보다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위에 있는 남자는 두 명이 있는데, 한 명은 어릴 적 자신을 괴롭히던 박정민이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의 교생 선생이었고 현재는 기자로 자신을 구박하고 제압하는 김준한(원준 역)이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공교롭게도 박정민과 김준한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신현빈이고, 신현빈 또한 이 두 남자를 좋아한다. 고준의 입장에서 볼 때는 과거와 현재의 비굴하거나 억압받았던 관계를 모두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신현빈의 남자가 돼 그녀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신현빈의 남자가 된다는 것은, 신현빈과 사귀게 된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자신의 결핍과 부족함을 모두 채워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신현빈은 고준이 건달이 아닌 모습으로도 자신을 당당하게 서게 만들 수 있는 이상화 자기대상인 것이다.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변산’ 스틸사진, 사진=변산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 제공>

고준이 신현빈을 좋아하게 되는 것을 급작스럽게 여기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과거의 상황을 통한 암시나 복선이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신현빈을 뜬금없이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신현빈이 고준의 이상화 자기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개연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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