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주최 <니키 드 생팔展 마즈다 컬렉션(Niki de Saint Phalle works from the Masuda collection)>(이하 <니키 드 생팔展>)이 6월 30일부터 9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 제2전시실에서 전시 중이다.
<사격회화 shooting painting>를 통해 현대미술계에 이름을 알린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 1930~2002)의 서울 첫 단독 전시이며,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으로 열리고 있다. <니키 드 생팔展>은 ‘Ⅰ. 개인적 상처와 치유’, ‘Ⅱ. 만남과 예술’, ‘Ⅲ.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으로 구성돼 있는데, 본지는 3회에 걸려 리뷰를 게재할 예정이다.
니키는 미술치료를 계기로 작품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니키 드 생팔展>을 직접 관람하면 어떤 작품에 상처가 있고 어떤 작품에 치유가 있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작품에 상처와 치유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경에서 볼 때 하얀 하트의 아름다운 작품을 다가가서 근경으로 보면 작품을 이루는 작은 요소들에는 슬픔과 분노, 억울함이 그대로 존재하기도 하고, 멀리서 볼 때 무서운 해골의 모양인데 가까이에서 보면 찬란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기도 한다.
니키는 미술을 통해 세상 앞에 당당해질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아픔과 상처는 죽을 때까지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긍정적으로 승화되고 순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림에 몰입할 때 그림을 통해 작가와 만날 수 있고 그림이 걸어오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니키 드 생팔展>의 작품들에 직접 다가가니 니키의 아픔과 고뇌, 분노, 상처, 울분과 설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동시에 밀려들어와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났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을 때도 남아있던 아픔은 그대로 작품 속의 한 단면으로 반영돼 있다. 천재적인 미술 재능을 지닌 니키는 죽을 때까지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 아픔을 예술로 승화했지만, 그럴 재능도 없고 그렇다고 주변의 보호와 위로도 못 받는 상처받은 사람들은 본인의 마음이 정말 죽을 만큼 아프다는 말도 못 하고 지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 떠올라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은 아픔이 전달된다.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인데, <니키 드 생팔展>을 관람할 때 니키 드 생팔의 생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마음에 초점을 맞추기를 추천한다. 그녀의 삶을 먼저 접한 후 작품에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이왕 미술관을 찾을 것이면 예습하지 말고 오디오가이드도 듣지 말고 작품 자체로 그녀의 마음과 대화하기를 추천한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먼저 관람한 후 오디오가이드를 작동하게 하면 더욱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스웨덴 TV 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 목판에 페인트, 석고 그리고 철망, 195×159×10cm, 1961.05.14.’
‘스웨덴 TV 프로그램을 위한 사격회화, 목판에 페인트, 석고 그리고 철망, 195×159×10cm, 1961.05.14.’은 <니키 드 생팔展>의 ‘Ⅰ. 개인적 상처와 치유’ 입구에 처음으로 전시돼 있는 작품이다.
그림을 본 순간 왜 ‘개인적 상처와 치유’라고 했는지 느껴지는 작품이다. 보는 순간 먹먹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공감을 하게 되는데, 계속 보고 있으면 처음의 답답함과 가슴 먹먹함이 어느새 풀리기 시작한다.
<사격회화 shooting painting>의 전형적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비닐, 캔, 못 등이 박혀 있고, 철사와 금속재료도 노출돼 있다. 흘러내리도록 표현된 물감은 마치 피가 흐르는 것처럼 아픔으로 전달된다.
필자는 정식 프레스콜 이전에 조명이 채 갖춰지지 않았을 때 이 작품을 만났는데,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작품을 느끼게 만들었다. 니키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면서, 그녀가 어떤 내면을 가졌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가이드의 역할을 한 작품이다.
◇ ‘괴물의 마음, 목판에 페인트, 석고와 다양한 오브제(울, 철망 등), 130×195×25cm, 1962’
‘괴물의 마음, 목판에 페인트, 석고와 다양한 오브제(울, 철망 등), 130×195×25cm, 1962’은 전체적으로 멀리서 보면 하얀색 하트 모양의 입체적이며 아름다운 작품이다. 그렇지만 가까이에 다가가면 힘들고 작고 사소한 여러 가지 요소들로 구성돼 있다는 반전이 있다.
‘괴물의 마음’이라는 제목도 인상적인데, 사랑을 만드는 작은 요소들은 악마적 정서를 가진 것일 수도 있고, 악마적 정서도 통합하면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큰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안에는 다른 면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니키에게는 사랑의 마음과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는 괴물적 분노가 공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데, 동전의 앞뒷면처럼 바뀌는 게 아니라 괴물적 요소도 큰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고, 큰 사랑도 나의 분노와 울분에 의해 괴물적 본능으로 분해될 수 있다고 표현한 점이 주목된다.
만약 미술로 자신의 울분과 슬픔, 설움, 분노를 표출해 승화하지 못했더라면 니키는 더 힘든 삶을 살았을 수도 있고, 위험한 인물이 됐을 수도 있었겠다고 추정할 수 있다.
결국, 그녀의 예술적 재능이 그녀를 살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니키의 작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관객에게는,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아마 니키도 그런 말을 할 것 같다. 아니, 지금도 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괴물의 마음’처럼 부분부분, 순간순간은 부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하는 사람도, 더 큰 자기 자신 안에서 하얗고 입체적이며 멋있는 사랑으로 승화할 수 있다는 가정과 상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 폴리에스터에 래커 페인트, 금속 골조, 100×147×56cm, 1971/1992’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 폴리에스터에 래커 페인트, 금속 골조, 100×147×56cm, 1971/1992’는 ‘세상의 모든 ‘나나(Nana)’를 위한 외침’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사진으로 볼 때와는 달리 한가람미술관을 직접 방문해서 관람하면 하나의 축으로 무게중심을 잡아 공간에 띄워 설치했다는 점이 신기하게 보이는 작품이다. 앞모습을 봤을 때는 임신을 해 뚱뚱해진 모습이 전체적인 정서를 표현하는데, 뒷모습은 더 여성적이고 사랑스럽게 표현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모습은 어딘가 위축됐지만 당당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데, 뒷모습은 그냥 당당한 모습으로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직접 관람한다면 관람 방향과 높이에 변화를 줘 다양한 시야를 경험하기를 추천한다.
‘샘의 나나(백색의 춤추는 나나)’의 모습을 그냥 보는 것도 좋겠지만, 단 1분 만이라도 멈춰 서서 나나에게 감정이입한다면,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나가 하는 이야기, 니키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