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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김하늘 슬럼프의 마성

발행일 : 2018-07-16 14:43:41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김하늘 슬럼프의 마성

위기에 몰렸다. 올해만큼 깊은 슬럼프 수렁도 없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맹활약하던 김하늘(30·하이트진로)이 이상 징후를 보인 건 지난해 먼싱웨어 레이디스 도카이 클래식 프로암부터다. 경기 도중 두통과 현기증을 호소하며 기권했고,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정밀진단 결과 스트레스와 편두통으로 밝혀졌지만 관계자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체력적 한계였을까. 당시 상금순위 1위를 달리던 김하늘은 막판 뒷심 부족으로 스즈키 아이(24ㆍ일본)에게 상금여왕과 메르세데스랭킹(올해의 선수) 타이틀을 전부 내주며 무관으로 한해를 마감했다. 살인적인 스케줄과 상금여왕 부담감이 가져다준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예고 없이 찾아온 슬럼프는 상반기 내내 김하늘을 괴롭혔다. 올 시즌 12개 대회에 출전해 톱10 진입은 두 차례에 불과했다. 우려되는 건 부상과의 싸움이다. 5월 호켄노마도구치 레이디스에선 등 통증을 소호하며 기권했고, 7월 닛폰햄 레이디스 클래식은 흉추 및 요추 염좌로 대회 전 결장을 통보했다. 20일부터 사흘간 시가현에서 열리는 센추리21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총상금 8000만엔·약 8억원)는 한 달만의 복귀전이다.

△김하늘은 선수와 엔터테이너로서 성공한 국내 몇 안 되는 프로골퍼다. 사진은 김하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든 일본 골프팬들. (사진=오상민)
<△김하늘은 선수와 엔터테이너로서 성공한 국내 몇 안 되는 프로골퍼다. 사진은 김하늘의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든 일본 골프팬들. (사진=오상민) >

김하늘의 갑작스런 부진에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다. 최근 만난 사람 중 다수가 그의 부진 이유를 물었다. 난처한 질문이다. 세상에 슬럼프 없는 운동선수는 없다. 선수생활이 끝날 때까지 크고 작은 부상과 슬럼프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골프매너연구가 겸 칼럼니스트 스즈키 야스유키(81)는 “절호조가 오래 가지 않는 것처럼 슬럼프도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슬럼프가 왔다는 건 절호조가 가까이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심지어 샷 연습 중에도 슬럼프가 오기도 한다”고 기술한 바 있다. 어떤 선수라도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성장한다는 뜻이다.

대회장에서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부진 원인을 찾았다’, ‘이제 알 것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자신감의 표현이겠지만 골프라는 운동은 그리 쉽게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닌 것 같다.

일본프로골프전당에 오른 미야모토 도메키치(1902~1985)는 생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슬럼프는 한두 번 극복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슬럼프를 많이 극복한 사람일수록 플레이가 풍부해지고 골프의 맛이 살아난다”는 말을 남겼다.

결국 슬럼프는 활용방법에 따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하늘은 슬럼프가 지닌 마성을 제대로 활용해 대선수로 성장했다. 그의 슬럼프 원인이 무엇이고,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슬럼프를 극복한다면 더욱 진보한 플레이를 선보일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슬럼프 후에는 진일보한 플레이어로 거듭난 김하늘. 이번 슬럼프 후에도 풍미를 더한 플레이가 기대된다. (사진=오상민)
<△슬럼프 후에는 진일보한 플레이어로 거듭난 김하늘. 이번 슬럼프 후에도 풍미를 더한 플레이가 기대된다. (사진=오상민) >

2007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 데뷔한 김하늘은 큰 틀에서 두 차례의 슬럼프를 겪었다. 2008년엔 첫 우승 포함 3승을 달성하며 상금순위 3위에 올랐지만 이후 3년 가까이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우승 기회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승리의 여신이 그를 외면했다. 그의 첫 슬럼프였다.

그러나 김하늘은 2011년 4월 현대건설 서울경제 여자오픈에서 2년 7개월 만에 드라마 같은 우승을 시작으로 다시 한 번 시즌 3승을 달성, 생애 첫 상금왕 자리에 올랐다. 이듬해인 2012년에도 상금왕 타이틀을 지켜내며 2년 연속 상금왕 영예를 안았다.

목표의식이 흐릿해진 2013년부터는 신예들과의 경쟁 속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두 번째 슬럼프의 서막이었다. 2015년엔 JLPGA 투어로 무대를 옮겼지만 17개 대회를 치르는 동안 단 한 차례도 톱10에 진입하지 못할 만큼 부진했다. 하지만 국내 복귀 결심 후 출전한 먼싱웨어 레이디스 도카이 클래식에선 기적 같은 우승을 차지하며 기사회생했고, 2016년과 2017년엔 메이저 대회 2승 포함 5승을 달성하며 JLPGA 투어 대표 선수로 거듭났다.

슬럼프를 경험할수록 화려한 커리어를 더해가고 있는 그에게 슬럼프는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 나은 실패를 하라’며 실의에 잠긴 사람들을 독려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 사무엘 베케트(1906~1989)처럼 말이다.

필자소개 /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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