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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황아름과 이보미

발행일 : 2018-08-13 17:05:39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황아름과 이보미

만감이 교차했다.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 시즌 2승이자 통산 3승을 장식한 황아름(31)을 보며 이보미(30ㆍ노부타 그룹)를 떠올렸다. 30대 초반 한 살 터울 두 선수는 미묘하게 닮은 듯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 상비군을 지낸 점과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일본 무대에 뛰어든 점, 하부 투어를 2년 이상 경험한 점이 닮았다. 하지만 일본 진출 과정과 데뷔 후에는 극명하게 엇갈린 행보를 보인다.

2006년 KLPGA 하부 투어에서 뛴 황아름은 일찌감치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황아름이란 이름이 국내 골프팬들에게 생소한 이유다. (사진=오상민) <2006년 KLPGA 하부 투어에서 뛴 황아름은 일찌감치 일본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황아름이란 이름이 국내 골프팬들에게 생소한 이유다. (사진=오상민)>

2006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제니아-엔조이투어(2부)에서 뛴 황아름은 2007년부터 일본으로 눈을 돌려 스텝업 투어(2부)에 출전했다. 2008년에는 스텝업 투어 2승을 달성했고, 7월에는 프로테스트에 합격, 2009년 레귤러 투어 시드까지 따냈다.

레귤러 투어 데뷔도 성공적이었다. 시즌 두 번째 대회 요코하마 타이어 골프 토너먼트 PRGR 레이디스컵에서 준우승하더니 이어 열린 야마하 레이디스 오픈에선 첫 우승을 장식하며 ‘재팬 드림’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우승 뒤 찾아온 긴 슬럼프는 황아름에게 9년 이상의 가혹한 기다림을 떠넘겼다.

이보미 역시 2007년부터 2년간 국내 하부 투어에서 뛴 경험이 있다. 그러나 2009년 정규 투어에 데뷔하면서 무서운 존재감을 드러냈다. 데뷔 첫해부터 우승 1회 포함 톱10에 8차례 진입하며 상금순위 5위에 올랐고, 이듬해엔 세 차례나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상금왕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2011년에는 JLPGA 투어에 본격 데뷔, 지난해까지 7년간 21승을 달성하며 두 차례의 상금여왕을 거머쥐었다. 그 과정에서 남녀 프로골프 투어를 통틀어 한 시즌 최다 상금 기록(2억3049만7057엔)을 경신했고, 일본 골프계를 ‘스마일캔디’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하부 투어와 프로테스트를 거쳐 레귤러 투어에 둥지를 튼 황아름과는 시작부터 달랐다.

올 시즌 9년 115일 만의 우승을 달성하며 제2의 황금기를 맞은 황아름. 끊임없는 변화와 인내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사진=황아름 페이스북) <올 시즌 9년 115일 만의 우승을 달성하며 제2의 황금기를 맞은 황아름. 끊임없는 변화와 인내력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사진=황아름 페이스북)>

황아름에게 이보미는 거대한 그림자였다. 하지만 두 선수의 골프인생은 이제 9번홀 홀아웃을 마쳤는지도 모른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또 다시 반전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던 황아름은 제2의 전성기를 열었고,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이보미는 추락 위기에 몰렸다.

사실 두 선수는 도움을 주고받는 데 망설임이 없을 만큼 친한 사이다. 황아름은 매년 이보미와 전지훈련을 함께하면서 이보미의 스윙코치인 조범수(65) 프로에게 지도를 받으며 스윙을 개조했다.
운동 포기를 고민하던 황아름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바꿔나갔다. 박인비(30ㆍKB금융그룹)의 멘털 트레이너를 찾아가 심리 상담을 받았고, 사용 클럽(타이틀리스트→온오프)과 스펙까지 바꿔가며 슬럼프 극복에 온힘을 쏟았다. 지난 6월 니가타현에서 열린 요넥스 레이디스 골프 토너먼트부터는 후지타 사이키(33ㆍ일본)의 조언을 받고 블레이드형(일자형) 헤드에 센터 샤프트를 장착한 (오디세이)퍼터를 사용했다.

반면 일본 진출과 동시에 탄탄대로를 달려온 이보미는 노부타 그룹이라는 일본 레저ㆍ스포츠계 큰손을 만나 ‘팀(Team) 이보미’를 꾸렸다. 매니저와 캐디, 코치, 트레이너, 클럽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팀 이보미’는 매 대회 이보미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이보미의 성공 원동력이기도 했다.

2015년과 2016년 JLPGA 투어 상금여왕에 오른 이보미. 매니저와 캐디, 코치, 트레이너, 클럽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팀이 이보미와 한 몸처럼 움직인다. (사진=오상민) <2015년과 2016년 JLPGA 투어 상금여왕에 오른 이보미. 매니저와 캐디, 코치, 트레이너, 클럽 담당자 등으로 구성된 팀이 이보미와 한 몸처럼 움직인다. (사진=오상민)>

하지만 거대해진 몸집 때문일까. 위기 감지와 전략적 대응은 눈에 띄게 둔감해진 인상이다. 지난해 초부터 이보미의 슬럼프가 감지됐지만 초기 대응이 아쉬웠다. 3년 4개월 만에 컷 탈락하며 이상 징후를 보였을 때도 큰 틀에서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3시즌 동안 단 한 차례도 없던 컷 탈락은 지난해만 4차례나 나왔다. 잘 나갈 땐 모두의 공이지만 슬럼프에 빠진 지금은 이보미만이 책임을 떠안았다. 다수 전문가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거구가 되어 버린 ‘팀 이보미’의 구조적 문제다.

“(이)보미가 자기 일처럼 도와줬다.” 황아름의 슬럼프 극복을 위해 누구보다 마음을 쓴 사람이 이보미다. 항로를 잃은 채 기약 없는 표류를 시작한 이도 이보미다. 만감이 교차하는 하루다.

필자소개 /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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