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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무용] 국립현대무용단 ‘스텝업’(1) ‘백지에 가닿기까지’(배효섭 안무)

발행일 : 2018-09-07 12:36:04

국립현대무용단 픽업스테이지(PICK-UP DANCESTAGE) <스텝업(STEP UP)>이 9월 6일부터 9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백지에 가닿기까지>(안무 배효섭), <무용학시리즈 vol. 2: 말, 같지 않은 말>(안무 이은경), <0g>(안무 정철인)의 세 작품이 독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연결해 생각할 수도 있도록 이어진다.
 
배효섭, 임종경, 정한나가 출연한 첫 번째 작품인 <백지에 가닿기까지>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우리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흑과 백, 어두움과 밝음, 남자와 여자, 꿈틀거리는 움직임과 밝은 움직임의 대비를 통해 여백이 가능한 백지상태로 춤을 추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 불편함을 통해 집중하게 만드는 시작! 조명을 통한 백지 공간의 창출!
 
<백지에 가닿기까지>는 윙~하는 음악과 함께, 불편함을 통해 집중하게 만드는 시작 방법을 선택한다. 두 명의 남자 무용수의 호흡은 눈에 띄는데, 같거나 비슷한 동작을 하면서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거나 서로 마주보며 안무를 하기도 하지만, 90도 방향을 바꾼 미러링 안무를 펼친다. 한 영혼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고,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주로 사각의 조명 안에서 안무가 펼쳐지는데, 조명의 변화도 없고 시각적으로 화려한 조명의 움직임도 없다. 마치 백지 위에 무엇인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처럼, 조명이 적극적으로 안무에 개입하지 않고 일정한 틀로 제공되기 때문에 안무 자체의 디테일에 집중하게 만든다.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조명은 색 조명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밝은 조명을 사용하기 때문에, 조명을 이용해 백지의 공간을 창출한다고 느낄 수도 있다. 큰 반전이 이뤄지기 전까지 조명은 공간을 지속적으로 축소하게 만드는 점도 인상적이다.
 
◇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틀! 무대 깊숙한 곳까지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배치된 무대 공간!
 
<백지에 가닿기까지>의 무대는 무대 깊숙한 곳까지 양파 껍질처럼 겹겹이 배치돼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틀이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런 과정을 통한 안무 공간의 축소, 영역의 축소는 세상의 축소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축소는 작아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집중해서 밀도를 높인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검은색 프레임 안에서의 안무는 마치 텔레비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텔레비전이 아닌 브라운관의 경계가 명확한 옛날 텔레비전 안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채워진 지금이 안무가의 현재라고 하고 백지의 여백이 안무가의 과거라고 한다면, 과거의 여백 가능한 야생의 상태로 가는 과정을 옛날 텔레비전의 틀처럼 보이게 한 것은 이미지적으로 정서를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 갑자기 밝아진 관객석의 조명!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각성된다
 
<백지에 가닿기까지>에서 갑자기 관객석 불이 밝아질 때 어둠에 익숙해 있던 관객의 눈은 각성된다. 어둡던 관객석의 조명이 공연이 끝난 것처럼 밝아지면, 관객은 준비 없이 갑자기 무대에 오른 것처럼 긴장할 수도 있다.
 
여자 무용수는 무대에 등장해 처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호기심을 유발한다. 남자 무용수들의 무대는 검은색, 여자 무용수의 무대는 흰색인데, 무용수들의 의상은 모두 흰색이라는 점은 색의 연결고리라고 생각된다.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스텝업’ 중 ‘백지에 가닿기까지’ 공연사진. 사진=국립현대무용단(황승택 촬영) 제공>

남자 무용수들은 엎드린 상태에서 연동 운동을 연상하게 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음향이 관객의 귀를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점은 공연 시작과 많이 닮아 있다. 앞으로 나아갔는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연결된 것처럼 느껴진다.
 
공연 마지막에 남자 무용수들의 상의 탈의는 관객들의 호응을 유발했는데, 어두운 공간에서 상의 탈의를 하는 게 아니라 밝은 공간에서 상의 탈의라는 점이 주목됐다. 이때 여자 무용수의 밝은 춤은 무대에 너무 긴장감을 주지 않기 위해 시선을 분산하고 완급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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