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그룹이 전기차를 시장에 내놓은 건 4년 전인 2014년 봄이다. 당시에 등장한 기아 쏘울 EV는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48㎞였다. 이 차에 앞서 나온 현대 블루온이나 기아 레이 EV는 테스트 모델 성격이어서 관공서 보급만 됐으나 쏘울 EV는 일반인이 구입할 수 있는 최초의 국산 전기차였다.
쏘울 EV는 도심 주행에서 큰 문제가 없지만 장거리 주행은 어려웠다. 또, 한 두 차례 도심 주행을 하고 나면 주행 가능거리가 두 자리 수로 떨어지기 때문에 충전소 찾기에 바빴다. 쏘울 EV뿐 아니라 이 시기에 나온 전기차가 대부분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현대차 아이오닉은 주행거리가 늘어나긴 했어도 여전히 200㎞ 이하였다. 그러다 2017년 쉐보레가 주행거리 383㎞의 볼트 EV를 선보이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볼트 EV는 순식간에 완판되며 전기차 시장의 주연으로 떠올랐다.
반전의 역사는 현대 코나 일렉트릭이 다시 썼다. 올해 4월 열린 EV 트렌드 코리아에서 데뷔한 코나 일렉트릭은 1회 충전 주행거리를 406㎞로 늘려 주목을 끌었다. 현대차는 올해 1만2000대를 판매할 계획이었으나, 예약 접수 한 달 만에 1만8000대를 신청 받는 기록을 세웠다.
최근 기아차가 선보인 니로 EV는 코나 일렉트릭과 비교해 배터리 용량(64㎾h 또는 39.2㎾h)이나 모터 출력이 똑같지만 차체 크기가 다르다. 이 때문에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코나 일렉트릭보다 살짝 짧은 385㎞다.
기존 차의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애고 무늬를 넣은 앞모습은 두 차 모두 비슷하다. 다만 니로 EV가 단순하게 라디에이터 그릴을 막은 것과 달리 코나 일렉트릭은 범퍼 자체를 새로 설계해 더 신선한 느낌을 준다.
타이어는 두 차 모두 215/55R17 사이즈이고 각기 다른 17인치 EV 전용 휠로 멋을 냈다. 특이한 건 코나 일렉트릭에는 넥센타이어만 장착되는 데 비해 니로 EV는 미쉐린 타이어만 장착된다는 점이다. 미쉐린과 넥센의 브랜드 선호도 차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실내 역시 코나 일렉트릭이 니로 EV보다 살짝 더 미래적인 분위기다. 코나 일렉트릭은 그레이 쓰리톤(3-ton) 컬러가 있어서 좀 더 화사한 느낌이고, 전자식 버튼 변속 시스템으로 차별화했다. 니로 EV의 대시보드는 기존 니로와 큰 차이가 없지만 다이얼식 변속 시스템이 눈길을 끈다. 후진과 중립, 주행은 다이얼을 돌려서 선택하고, 주차는 다이얼 가운데의 버튼을 눌러 조작토록 해 실질적인 조작편의성은 코나 일렉트릭보다 더 낫다.
그렇다면 주행성능은 어떨까. 최고출력 204마력의 똑같은 모터를 달았지만, 코나 일렉트릭의 공차중량(1685㎏)이 니로 EV(1755㎏)보다 가벼운 만큼, 코나 일렉트릭이 좀 더 가볍고 날렵하다. 물론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는 아니고 아주 미세한 느낌의 차이다.
연비를 극대화한 에코 플러스부터 에코, 노멀, 스포츠 등 네 가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주행모드 통합제어시스템을 갖춘 것은 두 차가 똑같다. 제동 시의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주는 패들 시프트가 적용된 것도 같다.
스포츠 모드의 가속감은 시쳇말로 ‘살벌한’ 수준이다. 코나 일렉트릭이 조금 더 빠른 느낌이지만 니로 EV 역시 만만치 않다. 밟는 즉시 가속되는 전기모터의 특성 때문에 내연기관보다 훨씬 더 빠르게 느껴진다.
고속도로 주행보조(HDA) 장비의 정확성은 두 차 모두 훌륭하다. 특히 곡선구간에서도 오랫동안 차선을 유지하면서 달리는 기능은 수입차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우수한 수준이다.
차체 높이는 두 차 모두 1570㎜로 똑같지만 휠베이스는 니로 EV가 100㎜ 길다. 이 길이 차이 때문에 차체가 위 아래로 움직이는 피칭 현상의 경우 니로 EV가 조금 더 안정적이다.
니로 EV가 결정적으로 돋보이는 건 화물 적재능력이다. 451ℓ의 기본 트렁크 용량을 갖추고 있고, 뒤 시트를 완전히 접으면 1405ℓ까지 늘어난다. 코나 일렉트릭의 트렁크 용량은 명기되지 않았지만 니로 EV보다 좁다. 물론 코나 일렉트릭의 트렁크도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큰 불편이 없다.
대신 코나 일렉트릭에는 니로 EV에 없는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장착된다.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있는 차를 타보면 시선을 돌릴 일이 적어지므로 운전이 확실히 편하다.
1회 충전 주행거리는 코나 일렉트릭이 길지만, 정부 인증 소비효율은 니로 EV가 ㎾h당 5.8㎞, 코나 일렉트릭이 5.6㎞로 니로 EV가 우월하다. 배터리 용량 39.2㎾h의 라이트 패키지의 경우도 니로 EV는 6.1㎞/㎾h, 코나 일렉트릭은 5.8㎞/㎾h로 니로 EV가 낫다. 고속 정속주행 구간이 많았던 이번 시승회에서 니로 EV는 9.8㎞/㎾h까지 찍었다.
연비에서 차이가 있긴 하지만 두 차 모두 충전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건 마찬가지다. 400㎞ 가까운 1회 충전 주행능력은 평상시에 충전을 2~3일 잊고 지내고 좋다는 의미다. 실제로 코나 일렉트릭 시승차를 내줄 때 현대기아차 홍보실 남 대리는 “아마 충전은 필요 없으실 거예요”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니로 EV의 가격은 세제 혜택(개소세 및 교육세 감면) 기준으로 4780만~4980만원이고, 코나 일렉트릭은 4650만~4850만원이다. 서울 기준으로 각종 보조금을 적용한 코나 일렉트릭의 실 구매가는 모던 트림이 2950만원, 프리미엄이 3150만원이다. 같은 조건일 때 니로 EV는 3080만~3280만원이다.
전기차의 보급을 발목 잡아온 게 비싼 차 가격과 부족한 충전소, 짧은 1회 충전 주행거리였다면 지금은 이 세 가지가 상당 부분 해결된 상태.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가 보조금을 늘려서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만 남았다. 코나 일렉트릭과 니로 EV의 선전을 기대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