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가 전 세계에서 가장 흔한 곳은 서울 강남 거리일 거야.”
예전에 몸담고 있던 자동차 전문지의 편집장이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벤츠가 판매 2~3위 정도여서 사실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이 말이 현실이 됐다. 강남 도산대로나 테헤란로를 지나다 보면 속된 말로 ‘발에 차이는 게’ 벤츠다.
특히 E클래스는 현대 쏘나타만큼이나 흔하다. 과거 렉서스 ES가 이런 모습이었는데, 어느 순간 BMW 520d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고 지금은 E클래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다 같아보여도 팔리는 모델은 다양하다. E220d와 E200, E300 그리고 AMG까지 E클래스의 가지치기는 엄청나다.
이번에 만난 차는 여러 트림 중에 E 43 4매틱이다. V6 3.0ℓ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을 9단 변속기와 4륜 구동으로 엮은 모델이다. 가격은 1억1250만원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벤츠 E클래스는 BMW 5시리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팔리는 모델이 다양하고, 특히 가솔린 모델의 비중이 더 크다. 또한 최근 벤츠를 구매하는 고객 중에 AMG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비싼 가격 때문에 수요는 제한적이지만,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외모에서는 크롬 핀 라디에이터 그릴과 20인치 휠, 트윈 테일 파이프 정도가 기존 E클래스 대비 차별요소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이 부분들이 원래 AMG 사양인지, 나중에 개별적으로 튜닝한 건지 구분하기 힘들다. 적어도 외관만큼은 기존 ‘강남 쏘나타’와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 위급인 E 63 4매틱 플러스에 양보한 측면도 있지만, 강렬한 인상의 차별화된 파츠를 좀 더 적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실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E클래스 특유의 디지털 계기반. 정보가 보이는 면적이 넓을뿐더러 운전하는 시야에서도 가깝다. 넓은 스크린 아래에 메탈 또는 우드 그레인을 깔아놓은 형태여서 구조가 간단하면서도 깔끔해 보인다. 다이나미카(DINAMICA) D컷 스티어링 휠과 레드 스티칭 시트와 시트벨트 등은 AMG 모델 특유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부메스터 오디오는 음질에는 ‘역시’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디오 출력은 무려 590W이고 스피커는 13개. 저음부터 중음, 고음까지 확실히 분리되는 음은 귀에 쏙쏙 꽂힌다.
다만 커맨드 컨트롤은 아직 불편하다. 이는 벤츠 라인업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메뉴로 들어가는 구성이 복잡하고, 특히 내비게이션의 목적지 입력이 불편하다. BMW나 아우디의 경우 손으로 글씨를 써서 입력할 수 있지만 벤츠는 커맨드 컨트롤을 일일이 움직여서 조작토록 해서 조작성이 떨어진다. 좀 더 간단하고 편리한 방식을 고민해볼 때다.
최고출력 401마력의 엔진은 힘이 넘친다. 최대토크(53.0㎏·m)는 2500~5000rpm에서 정점을 찍는다. 그러나 ‘AMG’ 브랜드라면 기대할 수 있는 팝콘 볶는 소리는 크지 않다. 과거 타봤던 다른 클래스의 AMG와 일반적인 E클래스의 중간 정도 수준이랄까. 데일리카로 쓰이는 부분을 감안한 설계인 듯한데, 강렬한 배기음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지에서 시속 100㎞ 가속시간이 4.6초인데도 불구하고 실제 반응보다 빠르다는 느낌이 덜하다.
핸들링과 차체 움직임 역시 다른 AMG 모델보다는 승차감에 살짝 더 비중을 뒀다. 에어 서스펜션은 AMG용으로 튜닝 되었는데, 기존 E클래스보다는 단단하지만 도로에 착 달라붙는 느낌은 덜하다. 엔진 사운드나 승차감에서 여러 요소를 감안해 타협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부분 역시 E 63 4매틱 플러스과 차이를 두기 위한 의도적인 세팅으로 보인다.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마니아라면 서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신 이런 세팅은 내구성 면에서는 좀 낫다. 단단하게 조여진 승차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싱류를 자주 교체해주어야 그 성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 43은 오랜만에 만난 AMG 모델인데 과거에 체험했던 AMG의 기억을 다시 리셋 해야 할 만큼 여러 면에서 달랐다. 일상적으로 쓰기에는 아주 좋지만, 스피드를 즐기는 이라면 E 63 4매틱에 눈을 돌리는 게 나을 수 있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매일 스포츠 세단을 타고 싶은 이를 위한 차. 야성적인 튜닝이 더해지면 좋을 듯.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