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 감독의 <폴란드로 간 아이들(The Children Gone to Poland)>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2018 BIFF) 와이드 앵글-다큐멘터리 쇼케이스 섹션에서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로 상영되는 장편 영화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보내진 전쟁고아들의 상처를 폴란드 선생님들은 위대한 사랑으로 품는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폴란드를, 폴란드 선생님들의 휴머니즘과 인간애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 우리가 특별히 인지하지 않던 사실!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도 전쟁고아가 많았다! 세 번 버림받은 아이들
<폴란드로 간 아이들> 초반에는 프와코비체 양육원 원장 유제프 보로비에츠의 회상 인터뷰가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으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프와코비체역 승강장에는 며칠에 걸쳐 아이를 실은 열차가 도착했는데, 기차 안 1200명의 아이들은 모두 다 바지와 하얀색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고 그는 기억한다.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쓰는 모자로 보였다고 전했는데, 폴란드 사람의 눈에는 모두 똑같이 생긴 아이들로 비쳤다는 점이 주목된다. 처음에 그들에게는 개개인이 아닌 그냥 전체적으로 동일한 아이들로 봤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전쟁고아가 많았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전쟁고아들 중에는 해외로 보내진 아이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놀라지 않는다. 그렇지만 북한에도 전쟁고아가 많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북한에도 “전쟁고아가 많았겠지”라고 생각하고 될 수 있다. 그러면서 북한의 전쟁고아들도 해외로 보내졌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데, 이 시점부터 관객은 감독과 감정의 진도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을 그렇지 못하며 간과하고 지나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역지사지하지 못하는 우리의 태도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들에게 많은 것을 새롭게 인지하고 느끼고 생각하게 만든다.
한국전쟁에 참정한 터키인 슐레이만(이스마일 하지오글루 분)과 전쟁고아 아일라(김설 분)의 감동 실화를 담은 영화 <아일라(Ayla: The Daughter of War)>를 보면서 아일라에 감정이입했던 관객들은 많다. 그 관객들 중에 북한에도 아일라와 같은 전쟁고아가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공감하며 안쓰러워했던 관객은 그리 많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알려지지 않은 많은 또 다른 전쟁고아 아일라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도, 북한의 전쟁고아들도 슬픔과 아픔을 겪었을 것 자체를 아예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북한과 폴란드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에 모든 판단의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그러나 이념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인도주의라는 측면에서 더 넓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북송된 전쟁고아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폴란드에 있을 때였다는 점은 마음을 두 번 아프게 만든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세 번 버려짐을 당한 것이다. 첫 번째는 전쟁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부모와 헤어지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북한이 전쟁을 지속하기 위해 강제로 폴란드로 이송된 것이고, 폴란드에서 사랑을 받았지만 다시 노동력이 필요한 북한으로 강제로 다시 가게 된 것이다.
아직 보호를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세 번의 이별을 겪는다는 것은, 나를 보호해줄 세상이 세 번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다. 정치와 이념의 개념으로 전체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라는 개념으로 그들을 소중한 인격체 하나하나로 볼 필요가 있다.
◇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 아이들의 상처를 사랑으로 품어준 폴란드 선생님들의 위대한 사랑!
<폴란드로 간 아이들>에서 감독은 폴란드 교사들과 아이들 간의 유대관계에 대해 궁금해한다. 어떤 마음과 생각일까? 추상미 감독은 내레이션을 직접 하고, 이송과 함께 출연했는데, 감독의 감정이입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관람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아이들의 상처를 사랑으로 품어준 폴란드 선생님들의 위대한 사랑을 보면서, 현재 우리는 새터민(탈북자)을 우리는 사랑으로 품어주고 있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갈 곳이 없는 난민들을 우리는 사랑으로 품어주고 있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누구를 사랑으로 품어줘야 하는지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사람도 많은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볼 때, 폴란드 선생님들의 사랑과 포용은 영화를 보는 내내 숙연하게 만든다. 정치적인 이유, 경제적인 이유로 충분히 반감과 저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저 상황에 처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미고 눈물이 난다.
추상미는 감독이기 이전에 배우였기 때문에 배우에게 상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배우가 연기를 할 때 상처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피력한다. 상처를 긍정적으로 승화하고 통합하는 방법을 감독은 공유하고 싶어한다고 느껴진다.
감독은 내레이션을 통해 관객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모든 질문에 대답하지는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대답을 하면서 관람하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깊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