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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에쿠우스’ 누구에게 감정이입할 것인가? 누구를 비난하고 심판할 수 있을 것인가?

발행일 : 2018-09-27 13:58:55

극단 실험극장 제작, 피터 쉐퍼 극작, 이한승 연출의 <에쿠우스(EQUUS)>가 9월 22일부터 11월 18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중이다. 이번 공연은 원작을 가장 잘 살린 역대 최고의 무대로 호평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연극적 기법과 파격적인 묘사로 1973년 런던 초연, 1975년 한국 초연 이후 43년이 지난 지금에도 명작의 감동을 주는데, 관객의 성향에 따라,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느냐에 따라 느낌의 방향과 강도는 크게 다를 수 있다.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 작품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은 반원형 무대인데, <에쿠우스>는 그 안에 사각형의 무대를 별도로 설치했다. 알런 스트랑(전박찬, 안승균 분)은 사각형 무대 위에 올라올 때와 아닐 때, 의사인 마틴 다이사트(장두이, 손병호 분)와 같이 있을 때와 아닐 때 말과 행동이 달라진다. 물리적 공간은 심리적 공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에쿠우스>가 초연될 당시에는 누가 봐도 파격적인 작품이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파격이 아니라고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 감정이입할 것인가, 어떤 감정선을 가지고 갈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이 작품은 내면의 환상을 심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노출 또한 환상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노출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에쿠우스> 관람을 결정한 관객은 실망할 수도 있다.
 
노출 수위는 절대 약하지 않다. 알런 스트랑과 질 메이슨(심은우, 김예림 분)의 전라 노출 장면도 있다. 그렇지만 무척 슬픈 장면이기 때문에 감정이입해 이어지는 감정선 상에 있는 관객이 에로틱한 면을 느끼기에 편할 수는 없다.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는 그냥 보면 어렵지 않게 즐길 수도 있지만, 감정이입하면 어렵고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는 작품이다. 표면적으로 이해하는지 심층적으로 다 파악하려는지에 따라 다르다. 민망할 수도 있지만, 별로 민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관객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다. 같은 관객이라도 타고난 기질과 사회적으로 형성된 성향이 다를 경우,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에쿠우스>를 여러 번 관람할 경우 그때마다 또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 심리전과 심리학
 
<에쿠우스>는 인간관계에서의 심리전이라는 측면에서 관람할 수도 있고, 심리학과 심리치료라는 학문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치료받는 처지에서도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이 상대방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기도 하고, 상대방을 통해 자기 자신을 찾고 싶은, 즉 마음의 구원을 받고 싶은 내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감정 표출의 알런과 감정 억제의 마틴의 생생한 대립 속에, 헤스터 살로만(차유경 분), 프랭크 스트랑(유정기, 서광일 분), 도라 스트랑(이양숙, 박윤정 분)의 중간자적인, 관찰자적인, 제3자적인 감정이 촘촘하게 조화를 이룬다.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에서 말을 타는 것의 의미에 투사와 대리만족이 있는 것처럼, 알런과 마틴은 서로 상반된 성격과 위치에 있는 것 같지만 서로 상대방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융화되고 통합돼 간다는 점이 주목된다. 장면 하나하나를 심리학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다.
 
알런은 고백약을 먹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내려고 한다. 가장 숨기고 싶은 것이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숨기고 싶다는 것은 드러내지 않고 싶다는 것인데, 그것을 내 안에 꼭꼭 숨길 경우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드러낼 수는 없고, 내가 내 안에 숨겨진 것을 말해도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알런에게는 의사인 마틴이 그런 존재이다. 또한 마틴에게 알런도 그런 존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알런은 마틴의 의자를 가까이 당긴다. 말을 털어놓을 정도로 친밀감이 형성됐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다른 사람이 듣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같이 표출된 것이다. <에쿠우스>에서는 행동의 디테일에 내면 심리가 담겨 있다.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알런이 마틴에게 “당신도 그러잖아”라고 말할 때 마틴은 적잖이 당황하는데, 마틴에게 감정이입했던 관객 또한 적잖이 당황할 수 있다. 공연에 몰입하면 파괴와 창조가 동전의 양면처럼 느껴지는데,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에쿠우스를 관객 또한 느낄 수도 있다.
 
◇ 말이 무대에서 직접 출연하는 것보다 더욱 말처럼 느껴지게 만든,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인 말 역할 연기
 
<에쿠우스>에서 말의 움직임을 표현한 디테일 묘사는 무척 돋보인다. 말이 무대에 직접 출연하는 것보다 더욱 말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젊은 기수(노상원 분), 너제트(배은규 분), 코러스(이동훈, 조형일, 신동찬, 이명규, 현익창, 김선진 분) 역을 맡은 배우들의 움직임을 보면, 저렇게 표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과 호흡을 맞췄을지 감탄하게 된다.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무대에서 말 역의 배우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고, 말 역의 배우 중 한 명의 움직임만 집중해 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을 준다. 말을 표현하기 때문에 노출이 있는 의상을 입어야 하고, 커튼콜에 가서야 본인이 얼굴을 드러내지만, 최선을 다해 열연하는 모습은 더욱 감동적이다.
 
등장인물의 심리에 대한 토론을 한다면 알런과 마틴, 질의 내면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알런의 내면이 투사된 말인 너제트의 내면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에쿠우스>를 남다르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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