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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2018 부산국제영화제(7) ‘영주’ 상실감에 복수를 해야 하는데, 양가감정이 느껴진다

발행일 : 2018-09-30 00:01:59

차성덕 감독의 <영주(Youngju)>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2018 BIFF)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섹션에서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로 상영되는 장편 영화이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가장 김향기(영주 역)는 자신의 학업을 포기하더라도 남동생 탕준상(영인 역)만은 책임지고 싶다. 형편은 점점 어려워지고 영주는 부모님을 잃게 만든 교통사고의 가해자들을 찾아간다.
 
피해자는 힘들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는 잘 살고 있는 것을 봤을 때의 상실감, 복수하고 미워해야 하는 대상에게 사랑받고 싶은 양가감정이 심도 있게 영화에 녹아있다. 감독은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과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영화는 쌍천만 배우인 김향기의 원톱 주연 가능성 또한 보여준 의미 있는 작품이다.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피해자는 힘들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는 잘 살고 있는 것을 봤을 때의 상실감
 
영화는 초반에 김향기의 상실감을 부각한다. 동생으로 인해 갑자기 돈이 필요해진 그녀는 보이스피싱에 그대로 속는데, 마음이 절박하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을, 그녀가 현재 그런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의도적으로 김향기의 부모에게 가해를 한 것이 아닌 교통사고였지만, 그 사고로 인해 그녀는 많은 것을 박탈당했다. 절망과 분노에 싸인 그녀는 가해자를 바로 찾아가서 복수부터 할 것 같지만, 놀랍게도 가해자의 가게에 가서 취직을 한다.
 
마치 스릴러물을 연상하게 만들면서 긴장감과 호기심을 고조시키는데, 뻔하게 상상할 수 있는 기존의 스토리텔링을 따라가지 않는 신선함을 선사한다. 유재명(상문 역)과 김호정(향숙 역)은 모르고 김향기와 관객들은 아는 상황은 흥미로운 영화 속 상황이라고 생각되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감독이 가진 내면을 그대로 반영했던 것이라고 느껴진다.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김향기가 김호정과 유재명에 대해 느끼는 양가감정
 
부모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현재 자신의 생계를 위해서 가해자를 찾아갔는데, 그들이 나의 존재를 모르고 무척 잘해준다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에 가서 먹으라고 두부를 챙겨주는데, 김향기는 그 두부를 받아들기는 했지만 결국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지는 못한다.
 
김향기에게 좋은 아이라고 김호정은 말하는데 그 말속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그 진심은 김향기와 관객들에게 모두 전달된다. 가해자는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 또한 김향기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혼란스럽게 만든다.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나는 용서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용서받았다고 생각할 때의 분노와는 다른 감정이다. 나는 아직 복수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스스로 무너졌을 때, 통쾌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내가 상대를 망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만약에 내가 김향기라면 김호정과 유재명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정말 결정적인 순간에 도와줬고 지금 잘해주기 때문에 더 이상 미워할 수도 없는 입장에 있다. 김향기의 양가감정은 제3자가 아닌 본인이라고 감정이입할 때 무척 현실적인 감정일 수 있다. 양가감정은 두 가지 상호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김향기는 <신과함께-인과 연(Along with the Gods: The Last 49 Days)>에서도 덕춘 역으로 양가감정을 가진 역할을 했었다. 1,000년 전 과거에 부모를 죽였으나 자신에게 후견인처럼 보살핀 주지훈(해원맥 역)에게 처음 양가감정을 느꼈고, 1,000년 전 자신을 죽였으나 1,000년 동안 자신을 이끈 하정우(강림 역)에게도 양가감정을 느낀다.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주>에서 김향기, 김호정, 유재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상실과 결핍이다.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인데, 사랑해주고 싶은데 사랑해줄 수가 없고 사랑받고 싶은데 사랑받을 수도 없었던 사람들인 것이다.
 
◇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과 견해를 가진 감독
 
<영주>를 보면 감독은 죽음의 의미, 살아남은 사람들의 고통을 표면적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깊은 것을 꿰뚫고 있다고 느껴진다. 막연히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직간접적으로 깊이 죽음을 체험해 본 사람만 알고 있는 내면의 정서가 감독에게 있다고 추측된다.
 
영화는 김호정의 입을 통해 혼수상태에 있더라도 이야기는 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제로 청력이 가장 늦게까지 살아있기 때문이기도 한데,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이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는 것은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아는 관객은 더욱 절절한 울림을 경험할 것이다.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영주’ 스틸사진.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 원톱 주연으로서 김향기의 가능성
 
<영주>의 주연배우인 김향기는 <신과함께-죄와 벌(Along With the Gods: The Two Worlds)>와 <신과함께-인과 연>이 모두 천만 관객 영화가 되면서 쌍천만 배우에 등극했다. 연기를 잘했고, 훌륭한 배우들 사이에서 호흡을 잘 맞췄다. 워낙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자기 역할을 한 것이다.
 
두 작품에서 호흡을 잘 맞출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보여줬다면, <영주>에서는 원톱 주연의 가능성을 김향기는 보여줬다.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역할을 했는데, 영화의 정서와 스토리텔링을 모두 김향기가 끌고 갔다.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서 김향기가 등장한다.
 
안정적이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기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표정 연기와 함께 김향기를 경력이 무척 많은 배우처럼 보게 만든다. 본인에게 감정이입한 관객들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빠져나가지 않도록 몰입해 연기를 소화하는 면에 있어서도 탁월함을 발휘했는데, 롱런하는 멋진 배우로 계속 모습을 보여주길 응원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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