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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무용] 시댄스 난민 특집(5) ‘망명’ 비자발적 망명의 불안감! 독무, 2인무, 3인무로 얽혀 이어진다

발행일 : 2018-10-08 10:09:52

최은희, 헤수스 이달고 안무 <망명(Ex.iL)>이 10월 7일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됐다.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주최로 열린 제21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2018, 시댄스 2018)의 난민 특집 다섯 번째 작품이다.
 
조명으로 만들어진 시각적 공간, 북과 베이스 클라리넷으로 만들어진 소리의 공간에서 불안한 에너지 속에 이어지는 안무는 자발적 망명과 비자발적 망명이 주는 정서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망명’. 사진=Park Byeong-Min and Lee HoHyeong 제공 <‘망명’. 사진=Park Byeong-Min and Lee HoHyeong 제공>

◇ 조명으로 만들어진 시각적 공간! 북과 베이스 클라리넷으로 만들어진 소리의 공간! 불안한 에너지 속에 이어지는 안무!
 
막이 오르면 조명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북 연주가 강한 울림을 주며 시작된다. 시작부터 강렬한 북 연주는 자신의 가슴을 팍팍 치는 것 같은 내면의 강한 항변 같기도 하고, 강한 전쟁에서의 진군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위급하고 위태로운 분위기 형성되는데, 손목이 묶인 무용수는 북소리가 들리자 견딜 수 없는 듯 몸을 파르르 떤다. 순간순간 감당할 수 없는 힘든 고통이 디테일하게 표현돼 그대로 관객석으로 전달된다.
 
<망명>은 독무와 2인무, 3인무가 꾸준히 조합된 작품이다. 2인무 또는 3인무를 출 때 같은 동작을 하기도 하고 다른 동작을 하기도 한다. 역동적인 안무에 무용수들은 쉴 시간이 없이 움직이는데, 서로 합이 잘 맞아야 하는 안무가 많다는 점도 눈에 띈다.

‘망명’. 사진=Park Byeong-Min and Lee HoHyeong 제공 <‘망명’. 사진=Park Byeong-Min and Lee HoHyeong 제공>

<망명>의 조명이 시각적 공간을 만든다면, 북과 베이스 클라리넷은 소리의 공간을 만든다. 상징적인 악기의 연주로 동서양의 정서가 모두 표현되는데, 강렬하고 무거운 음악과 함께 무용수들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바닥을 이용한 안무로 공간에 무게감이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망명>에서 조명의 의미, 테이핑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역, 구속, 자유를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추상적 움직임과 구체적인 반응의 조합은 공연 내내 이어지는데, 버팀과 절규를 오가기도 한다.

‘망명’. 사진=Park Byeong-Min and Lee HoHyeong 제공 <‘망명’. 사진=Park Byeong-Min and Lee HoHyeong 제공>

◇ 자발적 망명의 피에르 볼레즈, 비자발적 망명의 윤이상
 
안무자는 피에르 볼레즈와 윤이상이 망명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자발적 망명이냐 비자발적 망명이냐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의지와 의도가 어떤가가 무척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망명>에서는 탈의를 하는 장면이 크게 두 번 나오는데, 비자발적 탈의와 자발적 탈의로 차이를 둬 무척 상징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처음에는 무용수가 자발적으로 옷을 벗은 게 아니다.
 
여자 무용수의 옷을 또 다른 여자 무용수가 벗기는데, 옷을 다 벗기지 않고 상의는 팔목까지만 벗기고, 하의는 발목까지만 벗긴다. 옷을 벗기는 과정을 중간에 멈춤으로써 손과 발을 더욱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노출과 억압이 동시에 이뤄져 수치심과 답답함을 무용수와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이런 방법은 이번 시댄스 난민 특집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망명’. 사진=Park Byeong-Min and Lee HoHyeong 제공 <‘망명’. 사진=Park Byeong-Min and Lee HoHyeong 제공>

비자발적으로 옷을 벗게 됐을 때 입고 있지도 벗고 있지도 않은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자발적 망명이 주는 뉘앙스를 연상하게 만든다. <망명>은 그 상황에서 입과 몸통을 테이프로 억압한다. 비자발적 망명은 자유가 아닌 또 다른 구속일 수도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고 생각된다.
 
공연 종반부에 밝아서 빛 이외의 대상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자발적으로 세 명의 무용수는 옷을 전부 탈의한다. 자발적 탈의의 경우 탈의된 몸이 아닌 후광의 빛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을 공연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자발적 망명의 경우 수치심과 답답함과는 현저하게 다른 정서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되는 장면이었다.
 
‘정의’에 대해 외치는 여자 무용수가 던진 메시지는 구체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충분히 그 안에 있는 감정이 전달된다는 점이 주목됐다. 조명기구를 검으로 활용해, 검무 또한 추기도 했는데, <망명>은 다양한 장르의 안무를 소화함과 동시에 안무를 소화하는 것 이상으로 연기력이 필요한 작품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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