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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서울시향 ‘캔디드’(2) 긍정적? 낙천적? 비관적? 부정적?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른 행동 패턴은?

발행일 : 2018-10-20 00:33:17

10월 12일과 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된, 서울시향 2018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 기념 오페레타 <캔디드(CANDIDE)>에서 등장인물의 성격에 따른 행동 패턴을 파악하면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개연성을 더욱 찾을 수 있다.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낙천적인지 비관적인지에 따라 같은 상황임에도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점은 이 작품을 보는 팁 중의 하나이다. 또한, 상황으로만 보면 일관성이 없게 보이는 행동들의 밑바탕에는 동일한 성격이 작용한다는 점을 알게 되면 <캔디드>를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 긍정적 vs. 부정적? 낙천적 vs. 비관적?
 
‘긍정적’이라는 것은 그러하다고 인정하거나 옳다고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반대되는 개념인 ‘부정적’이라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단정하거나 옳지 아니하다고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것을 뜻한다.
 
‘낙천적’이라는 것은 삶과 세상을 즐겁고 좋게 여기는 것을 뜻하며, 반대되는 개념인 ‘비관적’이라는 것은 삶과 세상을 어둡거나 슬프거나 절망스럽게 여기면서 잘 안될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뜻한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그렇다면 ‘긍정적’인 것과 ‘낙천적’인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같은 맥락에서 ‘부정적’인 것과 ‘비관적’인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큰 차이는 적극성, 실천성, 디테일 여부이다. ‘낙천적’과 ‘비관적’은 자신에 한정돼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긍정적’과 ‘부정적’은 다른 사람까지 끌고 들어간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직 나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지 않았는데 버스는 이미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이때 ‘긍정적’인 사람과 ‘낙천적’인 사람은 버스를 탈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정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은 버스를 못 탈 것이라고 생각한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그럼 ‘긍정적’인 것과 ‘낙천적’인 것은 같은 것인가? 실천적인 면과 디테일에 있어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 ‘긍정적’인 사람은 버스를 탈 수 있다고 믿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뛰어간다. 반면에 ‘낙천적’인 사람은 그냥 걸어가도 버스를 탈 수 있다고 여유 있게 생각한다. 이때 ‘낙천적’인 사람은 버스를 탈 수 있을 수도 있고, 본인의 낙천성을 기다려주지 않는 버스를 놓칠 수도 있다.
 
‘비관적’인 사람은 버스를 못 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뛰거나 빨리 걸으려는 생각을 접는다. ‘부정적’인 사람은 영향력이 가장 크다. 버스를 못 탈 것이라고 생각해 본인이 행동을 멈춤과 동시에, 주변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가는 사람들에게 버스를 뛰어봐야 못 탈 것이라고 말하고 제지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버스를 못 타고 만든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 캔디드의 유일한 신앙은 낙천주의
 
<캔디드>에서 캔디드(테너 조나단 존슨 분)의 유일한 신앙은 낙천주의이다. 화형식을 부추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적극적으로 찬반의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본인의 마음은 편하겠지만, 주변에서는 답답할 수도 있고 불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캔디드는 자신의 마음에는 사랑밖에 없다고 말한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불타는 사랑을 한다고 볼 수도 없고,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고 볼 수도 없다. 쿠네곤데(소프라노 로렌 스누퍼 분)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고 위험에 내버려 두기도 한다. 캔디드의 사랑은 진실이고 무모한 것 같지만 뜨뜻미지근한 측면이 많은데, 캔디드가 긍정적인 인물이 아니라 낙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는 쿠네곤데와 헤어지게 되는 계기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까지는 애정이 없다고 보이는데 그렇지만 쿠네곤데가 멀리 떨어져 다른 나라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없이 쿠네곤데를 찾아가는 용맹함을 보인다.
 
일관성이 없는 성격이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지만, 캔디드는 무척 일관성 있게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캔디드는 긍정적 인물이 아니라 낙천적 인물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캔디드는 지금 당장 헤어지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헤어져도 다 잘 될 것이라는 믿는다.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도 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낙천적인 생각을 한다. 만약 낙천적이 아니라 긍정적이었다면 그냥 무작정 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수소문해 쿠네곤데가 어디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냈을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헤어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낙천적 성격은 본인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주변을 제대로 챙기지는 않을 수 있다. 성격이나 성품이 꽤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 성향이 크진 않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무책임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은, 긍정적이 아니라 낙천적인 성격과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긍정적인 사람이 모든 면에서 좋은 것일까? 긍정적인 사람은 본인의 긍정성, 적극성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불필요하게 움직이게 만들어 피곤하고 귀찮다고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좋은 예는 아니지만, 낙천적 스토커와 긍정적 스토커를 가정하면 좀 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 때로는 비관적이고 때로는 낙천적인 이중성을 보여주는 쿠네곤데
 
대주교와 유대인에게 몇 달 동안 유린당했다고 말하는 쿠네곤데는 수동적이고 비관적이긴 하지만, 그에 비해 부정적인 면은 상대적으로 작다. 만약 부정적이었다면 적극적으로 힘든 일을 겪은 자신을 스스로 더 괴롭혔을 것이다.
 
쿠네곤데의 이야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듣고 있으면, 대주교와 유대인, 두 사람에게 보석들을 받았다고 하며 좋아하는 쿠네곤데의 말이 이어진다. 유린당했다고 말하면서도 보석들을 받은 것은 좋아하는 것이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앞뒤가 안 맞는 캐릭터 혹은 생각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보다는 비관적인 면이 더 많기 때문에 그런 선택과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많다.
 
더 깊게 들어가면 쿠네곤데는 때로는 비관적이었다가 때로는 낙천적인 이중성을 보여준다. 이런 이중성은 때로는 긍정적이었다가 때로는 부정적인 이중성과는 비슷해 보일 수도 있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캔디드’ 공연사진. 사진=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낙천과 비관을 넘나드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을 보며 주변 사람은 그를 안타깝게 여길 것이다. 그런데 긍정과 부정을 넘나드는 이중성을 가진 사람은 주변 사람들까지도 깊게 물들여 모두를 안타까운 상황으로 끌고 들어갈 수 있다
 
쿠네곤데는 부와 사치와 보석을 위해 세뇨르 총독에게 끌리기도 하는데, 물질 우선주의자라는 가치관의 측면에서 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성격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쿠네곤데는 캔디드의 사랑과 돈 많은 남자를 모두 받아들이는데, 그녀의 가치관보다는 성격적 측면이 더욱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가치관의 측면에서 볼 때 일관성 없는 선택과 행동일지라도, 성격적 측면에서 볼 때 무척 일관성 있는 선택과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캔디드>는 보여준다. <캔디드>의 정서가 ‘낙천적’, ‘비관적’이 아닌, ‘긍정적’, ‘부정적’이었으면 이야기의 톤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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