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 감독의 <이,기적인 남자(MR. EGOTISTIC)>에서 대학 강단에 서는 영화학 강사 박호산(재윤 역)은 드디어 2세를 가진 아내 최유하(미현 역)와 요즈음 본인의 눈에 들어와 공을 들이고 있는 조교 조은빛(지수 역)이 모두 자신의 사람인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친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40대 초반, 결혼 10년 차의 이기적인 남자가 느끼는 억울함을 담고 있다. 본인이 이기적이라는 것은 잘 모르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더 먼저 한다. 영화에서 박호산의 모습은, 정도와 깊이의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 안에 자리 잡은 단면의 하나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 40대 초반, 결혼 10년 차의 이기적인 남자가 느끼는 억울함
<이,기적인 남자>에서 박호산은 영화학 강의를 하면서 “납득은 되지만 공감되지 않는다는 심리적 아이러니”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영화 속 영화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영화 자체가 던지는 메시지로 여겨진다.
“교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 것 같아요?”라고 묻는 학생의 질문에 역지사지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말하는 박호산의 모습은, 어줍잖은 성공과 성취를 한 사람이 단지 자신의 성향이자 취향일 뿐일 이야기를 진리처럼 말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보인다.

박호산은 마음으로 같이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 편, 내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본인은 나름대로 노력하고 이룩해왔지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억울함을 박호산은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먹고 부인 선물을 사가지고 와서 고맙다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가지고 있던 제품이었다는 말에 박호산은 민망해하는 경우가 반복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이 납득이 되기는 한다.
각자 자신이 느끼는 게, 자신의 이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느낀다. 본인이 이기적이라는 점을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본인이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 내가 판을 좌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
영화에서 다른 등장인물은 알지 못하는데 관객은 알고 있는 것이 있을 때, 관객은 등장인물에 대한 우월의식과 영화에 대한 주인의식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중요한 주인공과 관객들만이 공유하는 내용이 있을 때 그렇게 되는데, <이,기적인 남자>에서는 주인공인 박호산은 모르고 최유하와 조은빛은 알고 있는 내용을 관객들이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호산에 감정이입하고 있는 관객은 박호산과 함께 난감해하며 영화를 볼 수 있다. 아내와 학교 조교가 모두 내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친했던 것이다. 내가 판을 좌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 이기적인 남자인데, 스케일이 크지 않고 소심하게 이기적인 남자
<이,기적인 남자>에서 박호산은 이기적인 남자인데, 스케일이 크지 않고 소심하게 이기적인 남자이다. 강하고 배타적으로 이기적인 남자였으면 편하게 비난하거나 마음속으로 손쉽게 응징할 수도 있을 것인데,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 소심하게 이기적이다. 재윤은 극적인 캐릭터라기보다는 현실적인 캐릭터인 것이다.
납득은 되지만 공감은 되지 않는 아이러니를 박호산은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인상적이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명료하고 자극적인 이야기에 익숙해있는 관객에게, <이,기적인 남자>는 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그냥 평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적어도 영화 중반까지는 그렇다.

◇ 박호산의 시야가 아닌, 최유하 혹은 조은빛의 시야로 바라본다면?
<이,기적인 남자>는 주로 박호산의 시야로 진행된다. 박호산의 움직임에 가장 큰 초점을 두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렇기 때문에 박호산의 이기적인 면과 억울함이 모두 전달되고, 납득은 되지만 공감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그런데 만약 부인인 최유하, 혹은 조교인 조은빛의 시야로 바라본다면 어떨까? 박호산의 이기적인 면과 함께 소심한 면이 더욱 많이 보일 수도 있다. 멋지다기보다는 찌질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주차위반 스티커를 차 앞 유리창에 여러 장 붙이고 다니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런 사소한 디테일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두 여자의 마음을 동시에 얻으려고 한다는 것에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영화 중반 이후에 박호산은 서둘러 알고 싶은 마음과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 갈등한다. 박호산에 감정이입해 있느냐, 최유하 또는 조은빛에 감정이입해 있느냐에 따라 관객은 전혀 상반된 감정을 가질 수 있다. 납득은 되지만 공감은 되지 않는 심리적인 아이러니는 결국 마지막에 관객의 몫일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