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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랭보’(1) 보들레르에 대한 심리적 영웅화는 랭보 자신에 대한 영웅화일 수 있다

발행일 : 2018-11-05 06:15:25

라이브와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가 공동제작한 뮤지컬 <랭보>가 10월 23일부터 2019년 1월 13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1관에서 공연 중이다. 프랑스 상징주의의 대표 천재시인 랭보(박영수, 정동화, 손승원, 윤소호 분)와 시인의 왕으로 불렸지만 비운의 삶을 산 베를렌느(에녹, 김종구, 정상윤 분), 랭보와 베를렌느를 지켜보며 평생 자신의 평범함에 좌절하는 들라에(이용규, 정휘, 강은일 분)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보들레르에 대한 심리적 영웅화의 의미, 랭보에게 아프리카가 주는 의미를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로날드 페어베언(W. Ronald D. Fairbairn)의 ‘분열성 양태(split position)’ 모델,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의 ‘자기대상(self object)’ 개념을 기준으로 총 4회에 걸쳐 리뷰를 공유한다.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 시는 이해하는 것인가? 받아들이는 것인가? 느끼는 것인가? 시인에게 철저히 밀착해서 시를 느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읽는 시간부터 읽는 사람이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낄 수 있는가?
 
관객은 랭보에게 감정이입함과 동시에 극 중에서 랭보의 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시에 공감할 수 있다. 관객은 랭보 혹은 베를렌느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면서, 동시에 반대로 평범한 들라에에게 공감하는 양가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양가감정은 같은 대상에 대해 서로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는 것 혹은 그 감정을 뜻한다.

극 중의 사람들은 랭보의 시를 이해하는 자, 이해하지 못하는 자, 강한 호의는 가지고 있지만 완벽하게는 이해하지는 못하는 자로 구분된다. 시인을 ‘미지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자’라고 한 극중 표현을 빌리면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는 자, 미지의 세계에 대해 도대체 이해하지 못하는 자, 미지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해하거나 상상하지 못하는 자로 나눌 수도 있다.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나에게로 돌아오라”라는 뮤지컬 넘버의 가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답고 완벽한 시를 쓰고 싶은 마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갈등,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모두 포함돼 있다.

“내가 쓰고 싶었던 시”라고 감탄하면서도 “내가 절대 쓸 수 없는 시”라고 말하는 것 또한 양가감정의 표현이다. <랭보>에는 시적인 대사, 시적인 내레이션이 많다. 그냥 편하게 보는 관객은 편하게 볼 수도 있고, 시적인 대사와 내레이션을 모두 흡수하려는 관객은 마치 밀도가 높은 수업시간처럼 머리와 감정이 꽉 찬다고 느낄 수도 있다.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 보들레르에 대한 심리적 영웅화는 랭보 자신에 대한 영웅화일 수 있다!
 
<랭보>에서 랭보는 왜 일인자가 아닌 보들레르의 후예가 되려고 했을까? 자신보다 열 살이 더 많은 베를렌느에게는 동료처럼 대하거나 혹은 가르쳐주려는 태도를 취하기로 했던 천재시인이 독보적인 일인자를 추구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랭보에게 가장 큰 이슈는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본인과 본인이 쓴 시를 모두 인정받지 못하는 랭보는 다른 대상을 통해 본인을 어필하고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받으려고 했을 수도 있다.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보들레르에 대한 영웅화는 랭보 자신에 대한 영웅화일 수 있다. 보들레르에 감정이입하고, 보들레르와 본인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보들레르가 없었으면 랭보가 영웅화할 수 있는 대상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자신을 영웅화하기 위해 보들레르의 이미지를 차용했던 것이라면, 보들레르가 아닌 대상이 영웅화됐을 수도 있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랭보의 표현 속에서 중요한 사람은 보들레르가 아닌 랭보인 것이다.

랭보에게 보들레르는 영웅이라기보다는, 랭보가 랭보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고 추앙했을 때 스스로 느끼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희석하는 존재라고 볼 수도 있다. 보들레르(1821~1867), 랭보(1854~1891)와 베를렌느(1844~1896)가 살았던 시기를 고려하면, 동시대를 겹치며 살았지만 현재는 살아있지 않는 대상에 대한 이상화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 무대장치의 전환이 없이, 스토리텔링과 시의 변화만으로 정서의 질주와 반전을 만드는 뮤지컬
 
<랭보>에서 랭보는 천재시인의 이미지와 구제불능의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의 이미지를 전환할 때 무대장치의 전환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랭보>는 무대장치의 전환이 없이 스토리텔링과 시의 변화만으로 정서의 질주와 반전을 만든다는 점이 주목된다.

접어서 던져 버린 시가 적혀 있던 종이는 바닥에 떨어진 낙엽처럼 보이는데, 시였던 종이가 바닥에 떨어진 낙엽처럼 보이는 이미지 전환은 큰 무대장치의 전환이 없이도 시각적, 정서적 변화를 느끼게 만든다는 점이 주목된다.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랭보’ 공연사진. 사진=라이브, 더블케이필름앤씨어터 제공>

낙엽처럼 바닥에 떨어진 종이는 치워지지 않고 공연이 끝날 때까지 계속 남아있는데, 이는 낙엽과 같은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키기도 하고 한 번 끌고 들어간 관객의 감정선을 그대로 유지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적인 정서를 시각화해 유지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랭보>는 웃고 즐기기보다는 진지하게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뮤지컬이다. 작품에 감동받은 관객, 특정 배우를 좋아하는 관객은 계속 재관람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주변에 추천을 하고 싶어도 관객 본인이 느낀 건 많은데 그 이유를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아서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랭보의 이야기가 소설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시적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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