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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황아름, 잃어버린 10년의 기록

발행일 : 2018-11-06 16:15:01
△요즘 황아름의 얼굴에선 당당함이 묻어난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선 10년 가까운 슬럼프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오상민 기자) 
<△요즘 황아름의 얼굴에선 당당함이 묻어난다. 그의 당당한 모습에선 10년 가까운 슬럼프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오상민 기자) >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황아름, 잃어버린 10년의 기록

여전히 당당했다. 부리부리한 눈은 날아가는 볼에 힘을 더했고, 홀아웃 후 갤러리를 향한 눈빛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지난 10년간 혹독했던 시련을 이겨내고 꽃길을 예약한 황아름(31)에겐 압박감 따윈 없어 보였다. 10년 전 부푼 꿈을 한가득 실고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 데뷔한 황아름과 지금의 황아름은 자신감이란 공통분모 속에서 필드를 호령하고 있었다.

황아름은 올 시즌 다이토켄타쿠(大東建託) 이헤야넷 레이디스에서 9년 3개월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기적처럼 재기했다. 2주 뒤 열린 NEC 가루이자와72 골프 토너먼트에서도 믿기 힘든 기량을 발휘하며 정상에 올라 JLPGA 투어 판도마저 뒤흔들었다.

현재 상금순위 7위(7167만3656엔)에 올라 있는 황아름은 시즌 최종전(메이저 대회)이자 여왕 결정전 성격을 띤 투어 챔피언십 리코컵에 9년 만의 출전을 확정지으며 골프인생 황금기를 활짝 열었다.

△티샷 전 코스를 바라보고 있는 황아름. 올 시즌 2승을 달성하며 프로골프 인생 황금기를 활짝 열었다. (사진=오상민 기자)
<△티샷 전 코스를 바라보고 있는 황아름. 올 시즌 2승을 달성하며 프로골프 인생 황금기를 활짝 열었다. (사진=오상민 기자) >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인 황아름은 2006년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제니아-엔조이투어(2부)에 데뷔했다. 비록 우승은 없었지만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일이 많았다. 2007년부터는 일본으로 눈을 돌려 스텝업 투어(2부)에 출전했고, 2009년엔 레귤러 투어 시드까지 따냈다.

첫 우승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시즌 두 번째 대회 요코하마 타이어 골프 토너먼트 PRGR 레이디스컵에서 준우승하더니 이어 열린 야마하 레이디스 오픈에선 줄리 루(42ㆍ대만)를 8타차 2위로 밀어내고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감격의 첫 우승 뒤 그를 기다린 건 무시무시한 슬럼프 터널이었다.

황아름은 우승 후 맞이한 슬럼프 터널 속에서 목표의식을 잃어갔다. 쉽게 손에 잡힐 것만 같았던 ‘재팬드림’은 점점 희미해졌고, 절망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어렵사리 상금시드는 유지했지만 매 시즌 반복되는 상실감이 자존감마저 무너트렸다.

△이보미(오른쪽)와 같은 조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황아름. 이보미와는 서슴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사진=오상민 기자)
<△이보미(오른쪽)와 같은 조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황아름. 이보미와는 서슴없이 고민을 털어놓을 만큼 가까운 사이다. (사진=오상민 기자) >

2014년 1월 발생한 교통사고는 그의 프로골프 인생에 결정적인 오점을 남겼다. 프로암대회를 마치고 가나가와(神奈川)현의 한 호텔로 돌아가던 그는 편도 1차선 도로에서 90세 노인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사고 발생 지점엔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없었고, 과속이나 음주, 졸음, 휴대전화 사용 등 교통법규 위반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황아름은 체포 이틀 만에 석방됐지만 이후 씻을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황아름은 그해 시드가 있었지만 자숙 기간을 가지면서 5월 말부터 대회 출전을 재개했다. 하지만 경기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의 인내력에도 한계가 있었다. 근근이 상금시드를 지켜온 황아름은 2016년과 2017년 시드를 잃은 뒤 퀄리파잉 토너먼트(QT)를 거쳐 레귤러 투어에 재 진입하는 일을 반복했다. 올 시즌 황아름의 우승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인내력의 승리였다. 10년 가까운 슬럼프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황아름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황아름의 우승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엔 지난 10년간의 눈물겨운 노력과 열정이 실종됐다. 반면 그의 스윙 코치와 멘탈 트레이너, 또는 그가 사용한 클럽과 스펙에 초점을 맞춘 뉴스는 경쟁하듯 쏟아져 나왔다.

△황아름은 데뷔 초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많다. 체중은 감소했고, 드라이브샷 탄도는 높아졌다. (사진=오상민 기자)
<△황아름은 데뷔 초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많다. 체중은 감소했고, 드라이브샷 탄도는 높아졌다. (사진=오상민 기자) >

그의 슬럼프 극복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이보미(30ㆍ노부타 그룹)의 스윙코치였던 조범수(65) 프로다. 2년 이상 꾸준히 스윙을 개조하며 경기력을 끌어올린 것이 컸다. 그러나 무엇보다 황아름 본인의 인내력과 골프에 대한 열정이 지금의 황아름을 만들었다.

황아름은 국내 프로 무대에서 활동하지 않아 한국 골프팬은 물론 언론에도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일본 무대에 뛰어들어 우승을 달성했지만 긴 슬럼프와 불미스러운 사고로 인해 두터운 팬덤 확보에도 실패했다. 그러는 사이 황아름이란 선수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마저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올 시즌 황아름이 올린 2승엔 돈으론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녹아 있다. 긴 슬럼프 속에서 자존감을 잃어가던 선수들은 그의 우승이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속에서 되찾은 10년간의 위대한 기록이다.

[오군의 재팬 골프 리뽀또] 황아름, 잃어버린 10년의 기록

필자소개/ 오상민

골프·스포츠 칼럼니스트(ohsm31@yahoo.co.jp). 일본 데일리사 한국지사장 겸 일본 골프전문지 월간 ‘슈퍼골프’의 한국어판 발행인·편집장 출신이다. 주로 일본 현지 골프업계 및 대회장을 취재한다. 일본 가압골프추진기구에서 골프 전문 트레이너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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