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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연극] ‘인형의 집’(2) 사랑하는 사람 따로 있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따로 있는 정운선

발행일 : 2018-11-07 06:23:28

11월 6일부터 25일까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공연 중인, 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 기념 연극 <인형의 집>은 헨릭 입센 원작, 유리 부투소프 연출로 만들어졌다. 정운선(노라 역), 이기돈(헬메르 역), 우정원(린데 부인 역), 김도완(크로그스타드 역), 홍승균(랑크 박사 역)이 출연한다.
 
극 중 정운선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 따로 있다. 정말 복을 받은 거 아닌가 하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도 완벽하고 완전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가련한 사람이다.
 
<인형의 집>은 노라가 ‘개념화된 자기’에서 탈융합해 ‘맥락으로서의 자기’로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아빠에게는 인형 같은 딸이었고, 남편에게는 인형 같은 아내였던 노라가 두 사람 모두로부터의 심리적인 굴레에서 벗어나는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 사랑하는 사람 따로 있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따로 있는 노라
 
<인형의 집>에서 노라에게는 사랑하는 사람 따로 있고, 함께 있고 싶은 사람 따로 있다. 이거저거 다 가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외로울 수 있는 사람이다. 남편인 헬메르를 사랑하지만 대화가 되지 않고, 랑크 박사와 대화가 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 교감하고 소통하는 대상과 사랑을 하는 완전한 대상이 노라에게는 없다. 사랑에 있어서 절대 결핍은 아니지만 항상 부분 결핍을 겪는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현실적인 상실감이 노라에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든 모두 언젠가 떠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노라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노라와 랑크 박사는 터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였는데, 랑크 박사는 노라에게 호감이 있었다. 호감이 없지만 친분이 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를 터놓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가정은 현실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위선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깊은 교감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호감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노라에게 욕심나면서도 더 이상 원하지 못했던 랑크 박사의 모습에 공감하는 관객도 꽤 있을 것이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해결되지 않는 이슈의 원인은 대부분의 어릴 적에 있다. 그중에서도 엄마와의 관계성 혹은 아빠와의 관계성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인형의 집>에서 노라는 아버지와의 문제를 남편과도 똑같이 겪는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남편의 취향대로 산다. 아빠에게는 인형 같은 딸이었고, 남편에게는 인형 같은 아내인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마지막에 노라의 선택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만 바라보는데 그치지 않고, 아버지와의 심리적 관계를 청산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노라는 남편과의 관계만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한 게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이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작은 한 것이다.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 노라는 종달새, 다람쥐! 양복 속으로 숨은 헬메르!
 
남편 헬메르는 부인 노라에게 종달새라고 부르기도 하고, 다람쥐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라는 남편에게 자신을 지칭할 때 종달새, 다람쥐라고 표현하면서 애칭으로서의 호칭의 친근함을 표현한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노라의 이미지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종달새 혹은 다람쥐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개념화된 자기’로서의 노라를 특정한다. 노라는 ‘맥락으로서의 자기’를 제지당한 채 살게 된다. <인형의 집>은 노라가 ‘개념화된 자기’에서 탈융합해 ‘맥락으로서의 자기’로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다른 측면에서 보면 현실과 직면하기 두려워했던 노라는 종달새와 다람쥐의 이미지 뒤에 숨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진짜 본질은 감춘 것이다. 노라가 종달새와 다람쥐 뒤에 숨었다면, 헬메르는 양복 뒤에 숨었다고 볼 수도 있다. 양복 안에 숨은 것일 수도 있다.
 
체면과 평정을 중요시하는 헬메르는 양복을 벗었을 때 감정과 생각이 질주한다. 양복을 입은 헬메르가 ‘개념화된 자기’라면, 양복을 벗어던진 헬메르는 ‘맥락으로서의 자기’라고 볼 수 있다.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인형의 집’ 공연사진. 사진=예술의전당(Photo by Lee, Woo Sung) 제공>

헬메르가 부르짖는 정의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의를 부르짖지만, 헬메르에게 정의는 결국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 피해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보인다.
 
이런 표현법은 <인형의 집>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강화하거나 혹은 숨기기 위해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은,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닉네임이나 아이디를 사용하는 것과도 같은 이유이다. 작품 속 무대 위 수많은 오브제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헬메르를 맡은 이기돈은 소통하지 않는 인간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지하는가를 보여주려고 했다고 기자간담회 때 밝혔다. 이기돈은 그렇게 느꼈지만, 실제로 헬메르는 끝까지 그렇게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에서의 우리 또한 헬메르처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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