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선 감독의 <생활의 탄생>은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SIFF2018, 서독제2018) 새로운선택 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로 상영되는 단편 영화이다. 여자(김유경 분)와 남자(도윤 분), 두 사람은 이사를 앞두고 집을 둘러보러 왔지만 어쩐지 말이 없다. 반면에, 바깥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감독은 한 공간 안에서, 혹은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영화 속에서 찾고자 했다. 김유경과 도윤은 많은 것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표현하는 연기를 소화했는데, 연기를 할 때 마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 한 공간 안에서, 혹은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감독은 ‘한 공간 안에서, 혹은 같은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라고 연출의도를 밝힌 바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서 같이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찾으려는 의도일 것인데, 어쩌면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안에 있어도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은 새로운 집으로 옮기는 것에 대한 기대를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들이 같이 있는 시간과 공간은 설렘이 아니라 무기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독은 의미를 바로 명확하게 찾아주지 않고 관객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준다. 영화 속 여자 혹은 남자에게 감정이입할 경우 관객은 더욱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생각하는 시간 동안 관객은 영화 속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만, 각자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 많은 것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표현하는 연기를 소화한 김유경과 도윤
<생활의 탄생>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 얼굴을 드러낸다. 대사도 많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는 장면도 꽤 있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줌으로써 연기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적게 보여주고 적게 들려주면서도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김유경과 도윤은 영화 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거나 대화하지 않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만들지는 않는다. 연출과 촬영의 힘일 수도 있지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존재감을 보이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존재감을 발휘한다.
이사 오기 전의 빈 집에는 아직 가구 등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비어있는 공간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김유경과 도윤이 그 공간을 다 채우고 있다고 느껴진다. 많은 것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표현하는 놀라움을 보여줬다.
만약 대사가 많지 않은 <생활의 탄생>을 찍으면서 두 배우가 속으로 생각했던 말을 내레이션으로 영화에 입힌다면 영화의 정서는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해진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이사를 오는 집에 대한 이야기, 이사 온 뒤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같은 공간과 시간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주어진 공간과 시간에서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얻는다기보다, 그 안에서 가치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