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SIFF2018, 서독제2018) 개막작은 ‘독립영화 차기작 프로젝트 : 트라이앵글2018’의 신작 <잠시 쉬어가도 좋아>(강동완, 김한라, 임오정 연출)이다. 세 개의 단편인 <돌아오는 길엔>(강동완 연출), <대풍감>(김한라 연출), <내가 필요하면 연출해>(임오정 연출)를 개별적으로 제작하고 ‘독립(Independent)’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장편 옴니버스로 발전시킨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 작품이다.
강동완 감독의 <돌아오는 길엔>은 가족 구성원 간의 이타심과 걱정,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담고 있다. 갈등이 극대화됐을 때 영화적 반전을 주는 방법이 돋보이는데, 옴니버스 영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 누구를 위한 이타심이고, 누구를 위한 걱정인가? 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때 느끼게 되는 양가감정!
영화 제목은 ‘돌아오는 길엔’인데 ‘가는 길엔’에 대한 에피소드로 영화가 시작한다. 여행을 가는 차 안에서부터 가족 간의 갈등은 시작되는데, 가족캠핑이 처음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새로운 장소와 행동으로 그간의 갈등이 수면으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계속 역정을 내는 아버지(권해효 분)의 눈에는 사소한 것 하나조차 눈에 거슬린다. 놀러 갔는데 그냥 좋은 말로 해도 될 것인데 계속 뭐라고 한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김금순 분)도 걱정한다고 하면서 아들(곽민규 분)과 딸(윤혜리 분)에 대한 비난을 늘어놓는다.
기분 좋게 놀러 가는 건데 그냥 이해하고 보호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고,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평소에 참으면서 조금씩 했던 이야기를 한 번에 하는 것을 보면 그간 얼마나 답답하고 서로에 대해 불만이 많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돌아오는 길엔>은 가족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을 때 느끼게 되는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양가감정은 두 가지 상호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이 공존하는 상태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이다,
고마우면서도 밉고, 불만이 있으면서도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 부부 사이,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양가감정은 존재하는데, 영화 속 상황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 가족끼리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돌아오는 길엔>은 가족끼리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자식의 사생활은 존중하지 않으면서 본인의 사생활은 존중받기를 바라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 아픈 관객도 있을 것이고, 다 위해서 그런 것인데 왜 나쁘게만 여기냐고 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밖에 나가면 다른 사람을 무척 잘 존중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도 집에만 들어오면 나쁜 사람이 되는 경우를 실제로 흔히 볼 수 있는데, <돌아오는 길엔>을 보면 소중한 사람일수록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일수록 내가 더 존중해야겠다고 반성하게 된다.
◇ 갈등이 극대화됐을 때 영화적 반전을 주는 방법
말로 인한 갈등이 극대화됐을 때 음악으로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는 방법은 영화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데, <돌아오는 길엔> 또한 그런 영화적 분위기의 전환을 통해,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숨 쉴 틈을 준다.
결론이 나기 힘든 상황에서 갈등을 일단 접게 만드는 외적 원인을 통해 시각적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영화 후반부 뮤직비디오 같은 연출은 인상적이다. 내적으로 폭발할 수 있는 답답하고 위험한 에너지를 외적인 원인으로 해소할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엔> 자체로도 그렇고, 옴니버스 영화 <잠시 쉬어가도 좋아> 전체로도 그렇다. 관객이 마음의 부담을 최대로 가지게 만든 상황에서 <돌아오는 길엔>이 끝났으면 그 여운 때문에 이어지는 작품을 깨끗한 도화지 같은 마음으로 볼 수 없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척 똑똑한 선택이라고 생각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