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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관계를 원한다면, “따로 또 같이”를 기억하라! 권수영 교수, EBS ‘배워서 남줄랩’에서 명강연 펼쳐

발행일 : 2018-12-01 11:44:19

▷ 혹시 우리 아이가 중2병?!
▷ 심리적 독립이 되지 않은 성인 아이
▷ 당신의 관계는 몇 줄인가요?: 밀착 관계 벗어나기
▷ 관계를 친밀하게 만드는 3단계 대화법

 
EBS 1TV <배워서 남줄랩 시즌2>에서 지난주 11월 19일 방송에서 큰 호평을 받은 ‘상담학의 대가’ 권수영 교수(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상담코칭학과)의 강의가 제1부에 이어 26일에 제2부가 방송됐다. 또 다른 화제를 낳고 있는 제2부의 주제는 “당신의 관계는 몇 줄인가요?”이다.
 
제1부 강의에서는 관계 중독과 우리 안에 살고 있는 5명의 유령들과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다루었다면, 이번 제2부 강의에서는 어떻게 관계 중독에서 벗어나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실제적 해법을 제시했다.
 
◇ “혹시 우리 아이가 중2병?!”
 
중2병은 이미 우리 사회의 보통명사가 되었다. 이제 일반화해도 될 만큼 어느 가정에서나 자녀가 중2가 되면, 순식간에 단란했던 가정에 고성이 오가고 심지어는 화가 나서 문을 박차고 나가는 아이와 그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배신감을 느끼는 부모 사이에 극심한 심리적 상처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배워서 남줄랩>의 출연자들 중에는 아직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놓인 래퍼들이 상당수여서 이 중2병에 대한 화두는 뜨거운 호응을 낳았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수린, 의웅, 세령은 중2병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쏟아냈는데, 권 교수는 이러한 이야기 속에 ‘반항’이라는 단어가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반항이라고 하는 건 ‘누구’의 생각일까요?”라는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반항은 누구의 생각일까? 부모의 생각일까? 아니면 자녀의 생각일까? 답은 전자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각도 아닌 부모의 생각은 왜 대한민국의 수많은 중학교 2학년 자녀들에게 중2병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선사하게 되었을까?
 
이 병의 근원을 탐구하기 위해 권 교수는 한 유명한 심리학 실험을 보여줬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한 소녀가 그린 왼쪽 그림은 초경을 하기 전의 ‘나’의 모습이다. 한편, 오른쪽 그림은 한 달이 지난 뒤 초경이 시작되자 그린 ‘나’의 그림이다. 왼쪽 그림은 어린 소녀와 같은 반면, 오른쪽 그림은 어엿한 숙녀의 모습으로 변모해 있다. 어떻게 왼쪽 그림의 소녀는 한 달도 채 안되어서 오른쪽 그림의 성숙한 숙녀가 되었을까?
 
그것은 2차 성징 이후부터 어른이 됐다고 느끼는 ‘아이의 생각’이 그림에 투영이 된 것이다. 이제 이 소녀는 자신이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고 여길 수 있는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외관상 달라진 것이 전혀 없다.
 
만약에 이 소녀가 그림을 그린 직후 붉은 색 립스틱과 검은색 아이라인을 바르고 노출이 있는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을 부모가 본다면 어떻게 할까?
 
아마도 부모는 “조그만 게 이게 무슨 짓이야?”하고 당장 호통을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소녀는 발끈하여 “신경 끄세요!”라고 하며 문을 꽝 닫고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모와 아이의 갈등이 본격화되는 시점, 즉 중2병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권 교수는 소녀가 화를 내게 된 배경엔 ‘모멸 환상’이 내재해 있다고 지적한다. 어린 아이였던 소녀는 모멸감을 참을 수 있어도, 이제 어른이 된 이상 결코 참을 수 없는 법이다. 아마 그 소녀는 속으로 “나를 엄마가 아직도 아이 취급하고 있어, 절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돼.” 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이 소리의 신호를 추적하다보면 이 소리의 진원지가 반항이 아닌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 소리임을 깨닫게 된다고 전한다. 아이는 부모에 대한 반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알에서 깨어 세상으로 나오려는 ‘심리적 독립’의 일성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권 교수는 이러한 중2병 현상에 대해 부모가 아이의 심리적 독립을 오히려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사회적으로 독립하는 것 이상으로 아이의 심리적 독립선언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중요하다. 자녀가 언제까지나 부모가 만들어 놓은 구유에 누워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가능하다.
 
강연자 권수영 교수에 의하면, 중2병이란 ‘반항의 아이콘’이 아닌 ‘성장과 독립의 걸음마’일지도 모른다.
 
◇ 심리적 독립이 되지 않은 성인 아이
 
이러한 중2병 현상이 청소년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엿한 성인이 되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여도 심리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성인들의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수능을 넘어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학전문대학원과 같은 대학원 입시정보를 대학 졸업생의 부모가 더 훤하게 꿰고 모든 결정을 대신 해주는 상황, 결혼을 하기 이전에 부모의 허락을 받는 것이 당연시 되는 문화, 결혼 이후에도 오만 가지의 것들을 참견하는 부모와 모든 것을 소상하게 일러바치는 자녀의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하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MC 김숙과 유재환, 그리고 권 교수는 결혼 과정에서의 허락이 필요한지에 대한 상황극을 래퍼 슬릭과 함께 진행하여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 당신의 관계는 몇 줄인가요? : 밀착 관계 벗어나기
 
권 교수는 이러한 복잡다단한 관계들을 진단하기 위해 특별한 상징을 소개했는데, 그것은 바로 가족 상담사들의 임상도구인 ‘가계도(genogram)’이다. 이번 주제인 “당신의 관계는 몇 줄인가요?”라는 질문은 사실 이 가계도의 상징들과 관련이 있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이번 강의에서 다루는 관계의 유형은 ‘소원한 관계’, ‘친밀한 관계’ 그리고 ‘밀착 관계’ 등이다. 사진에 나와 있는 가계도 그림을 보면 점선으로 이뤄진 상징이 ‘소원한 관계’라면, 줄이 두 개가 있는 상징은 ‘친밀 관계’, 줄이 세 개가 있는 상징은 ‘밀착 관계’이다.
 
즉 권 교수가 준비한 강의 주제인 “당신의 관계는 몇 줄인가요?”의 물음은 바로 이 가계도에서 제시된 두 줄과 세 줄 관계의 차이점을 묻는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몇 줄이 가장 이상적인 관계일까? 권 교수는 이 ‘세 줄 관계’인 ‘밀착 관계’는 사실 건강한 관계와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가깝다 보니 관계에서 내 자신이 사라진 채 타인의 입장만을 대변해주다가 내 자신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밀착관계가 부모, 친구, 배우자, 자녀 등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면 진실로 이 사람은 “나도 나를 모르겠다!(권수영 지음, 레드박스)”라고 한탄할 지도 모른다.

‘나도 나를 모르겠다’. 사진=레드박스 제공 <‘나도 나를 모르겠다’. 사진=레드박스 제공>

그렇다면 ‘두 줄 관계’인 ‘친밀한 관계’와 ‘세 줄 관계’인 ‘밀착 관계’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흥미를 느끼는 독자라면 아래의 그림에서 본인이 몇 단계에 해당하는지 체크해 볼 수 있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권 교수는 1단계를 가뿐히 넘어 2단계, 3단계를 거쳐 4단계까지 해당된다면 ‘밀착 관계’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 4단계의 ‘밀착 관계’는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밀착 관계’는 평생을 거쳐 지속될 수 있는데 어쩌면 이 ‘밀착 관계’는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적으로 살고 싶은 내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으로 둥지를 틀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밀착관계를 벗어나려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권 교수는 이에 대해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밀착관계에서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내 주장을 하지 못하고 타인에게만 맞췄던 내가 과연 어떻게 내 주장을 할 수 있을까?
 
밀착한 관계를 벗어나 건강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상담 전문용어로 ‘분화(differentiation)라고 하는데, 권 교수는 이를 ‘따로 또 같이’ 라는 말로 비유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분화’라는 전문용어 보다야 ‘따로 또 같이’가 느낌이 좋다. 편하고 익숙하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으나 아직은 모호하다.
 
여기에서 권 교수는 ‘같이’가 아닌 ‘따로’가 먼저 나온다는 점을 꼭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따로’를 먼저 한다는 것은 ‘나의 주장’을 먼저 말하는 것이 ‘같이’ 보다 선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 마성의 대화법 : 구나-바람-느껴
 
또한 권 교수는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나의 주장을 먼저 말한다.”는 것은 내가 주장하는 바대로 우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바를 상대에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에 있다고 설명한다.
 
만약 한 친구가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을 하지 않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이 친구에게 “너 왜 내 문자를 씹어? 기분 나빠”라고 문자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얼핏 보면 이는 내 주장을 한 것 같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이 문자엔 ‘내가 원하는 것’은 빠져 있고, 단지 ‘(일부러) 씹고 있다.’라는 상대방에 대한 판단만 들어가 있다.
 
사실 그 친구가 씹고 있는 건지 아직 못 본건지, 아니면 그럴 만한 다른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그 친구가 “씹은 거 아니거든? 너야말로 저번 주 금요일에 내 문자 씹었잖아!”와 같이 반격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반격과 재 반격이 몇 번 이뤄지면 좋았던 친구관계도 급작스럽게 소원 관계로 돌변할 수 있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다르게 해본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바람을 먼저 전달 할 수 있는 ‘따로’ 대화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권 교수가 소개한 ‘구나-바람-느껴’의 3단계 대화법이다.
 
① 제1단계 : 구나
이 단계는 상대방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즉, 실제 일어난 일에 ‘감정’을 넣지 않고 사실 그대로만 말하는 단계이다. 이를 테면 “내가 어제 다섯 번 문자를 보냈는데 한 번도 연락을 못 받았-구나!”와 같이 있는 그대로를 판단하지 않고 표현하는 단계이다.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배워서 남줄랩’ 스틸사진. 사진=EBS 방송 캡처>

② 제2단계 : 바람
‘바람’ 단계는 나의 바람을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단계다. “나는 네가 문자에 바로 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와 같이 자신의 바람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③ 제3단계 : 느껴
‘느껴’ 단계는 ‘내가 (너 때문에) 기분 나빠!’라며 타인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나의 욕구를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 탓을 하기 보다는 충족되지 않은 나의 바람이 무너져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는 단계이다. 즉, “그런데 그 바람이 이뤄지지 않아 너무 답답하고 속상하게-느껴.”라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느껴’ 단계의 핵심이다.
 
‘따로’의 단계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바람과 욕구를 상대방에게 먼저 표현하는 것이라면 따로 뒤에 있는 ‘같이’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권 교수는 방송인으로 사는 젊은 레퍼들에게 누구나 ‘모든’ 사람들과는 ‘같이’ 할 수 없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한 두 사람이라도 자신의 숨겨진 감정을 공감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끝으로, ‘위대하다는 것은 오해받는 것’이라는 토마스 제퍼슨의 명언을 제시한 권수영 교수의 강연 결론은 엄청난 여운을 남겼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위인들은 결코 세상 사람들 모두와 연결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로부터는 엄청난 오해를 받기도 했다는 점, 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소외된 약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요즘 래퍼들이 부르는 랩이 힘겹게 사는 젊은 세대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고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하라는 권 교수의 결론은 정신없이 웃으며 유쾌하게 강의에 빠져들었던 출연자 래퍼 모두에게 놀랄만한 반전과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방송은 총 2주에 걸쳐 방송되었고 EBS <배워서 남줄랩 시즌2>에서 다시보기로 시청할 수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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