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5,6전시실에서 12월 7일부터 2019년 3월 31일까지 전시 중이다. 에바 알머슨의 작품 중에서 판화 작품은 유화 작품과는 달리 압축되고 굵은 선으로 대표적인 감성을 집중적으로 표현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에칭(etching)에 의한 판화 기법은 주로 선을 표현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렇지만 면의 질감과 색감, 디테일한 표현은 용의치 않은데, 에바 알머슨이 판화를 통해 자신의 느낌과 감성, 메시지를 표현할 때 어떤 집중과 선택, 강조와 생략을 했는지 살피면 더욱 흥미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 ‘자신토의 초상화, Carborundum Etching, 70×50cm, 1995’
‘자신토의 초상화, Carborundum Etching, 70×50cm, 1995’는 굵고 강한 선을 볼 수 있는 에바 알머슨의 첫 번째 판화 시리즈 작품이다. 카보런덤(탄화규소)이 사용된 판화기법은 섬세한 선을 허용하지 않고 굵은 경계를 만들기 때문에,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의 다른 작품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굵은 선으로 표현했지만 여인의 표정에는 감정이 깊게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체성도 제외하고, 디테일한 표현도 제외하고, 색도 제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얼굴을 보면 감정이 훅 와닿는다는 점은 놀랍다.
만약 에바 알머슨이 이 작품을 단색의 유화로 똑같이 표현했다면 어떨까? 판화로 만들 때 표현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디테일을, 유화로 그리면서 표현할 수 있는데도 억제하고 절제해야 할 것인데, 그렇게 된다면 같은 모습을 그린 그림에서 다른 정서와 느낌이 전달될지 아니면 비슷하게 다가올지 궁금해진다.
◇ ‘무도회, Etching, 70×50cm, 2001’
‘무도회, Etching, 70×50cm, 2001’을 본 첫 시야는 관람객에 따라 두 사람의 표정일 수도 있고, 자세일 수도 있다. 커플 댄스를 출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떤 동작에 가까울지 생각할 수도 있다.
커플 댄스를 출 때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작품에서의 남녀는 서로의 공간을 그냥 공유한다. 그렇지만 무례하거나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보이지는 않고, 정말 행복한 상황일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여자의 옷은 구체적이거나 상징적으로 표현됐는데 반해, 남자는 형체만 표현됐다고 보이기도 한다. 여자의 치마는 마치 머리카락을 풀어놓은 솜사탕처럼 보이고, 발뒤꿈치를 든 모습은 실제 커플 댄스 자세를 연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을 상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에 남자는 발바닥을 전부 땅에 대고 있는데 춤을 잘 못 추기 때문에 정확한 동작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춤의 종류가 업바운스의 춤이 아닌 다운바운스의 춤을 추면서 박자에 따른 디테일한 움직임을 생략한 채 리드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두 번째 경우라면 판화적 생략과 그림 속 남자의 스텝 생략에 어떤 정서적 연결고리가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