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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달빛요정과 소녀’ 내 이야기 들어줄 수 있어요?

발행일 : 2019-01-09 15:55:03

극단 차이무 제작, 민복기 작/연출, <달빛요정과 소녀>이 1월 7일부터 20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에서 공연 중이다. 요절한 인디 가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진원)’의 노래로 이루어진 주크박스 뮤지컬로 서울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을 시도하려는 소녀를 두고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 이야기 들어줄 수 있어요?’라는 간절한 바람 질문, 애원은 몰입해 관람하던 중 관객들을 울컥하게 만든다.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 부른 박원상의 창법은 뮤지컬 속 이야기가 아닌 실제 이야기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공연 초반에 언제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빛을 관객석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여준 김영옥은 관객과 무대를 정서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 과거와 현재의 교차! 방송과 현실의 교차!
 
<달빛요정과 소녀>는 타임슬립을 통한 과거와 현재의 교차, 1인 미디어 방송과 현실이 교차되는 이야기이다. 다른 시간에서 온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리더(박원상 분), 파프리카 TV 늘백의 VJ 캐준(박해준 분)은 자살을 시도하는 고등학교 자퇴생 송아리영(김서현 분)을 만나게 되고, SOS 생명의 전화 자원봉사 상담원 이은주(김영옥 분)와도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만난다.
 
코러스Y(김영경 분)와 코러스X(류성훈 분)를 포함해 <달빛요정과 소녀>의 등장인물 6명은 모두 무대에 올라와 공연을 시작한다. 시간과 공간, 역할이 중첩되고 교차되는데, 전체적인 캐스팅의 틀을 먼저 보여주고 시작한 것이다.
 
관객은 지금 어느 상황인지 쉽게 알 수 있는데, 자막 등의 도움 없이 관객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운 친절한 표현 덕분이다. VJ 캐준의 실시간 영상은 무대 뒷면에 공연과 동시에 상영되는데, 서로 다른 공간과 시간을 공유할 것이라는 암시의 역할 또한 한다고 볼 수 있다.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 내 이야기 들어줄 수 있어요?
 
<달빛요정과 소녀>에서 아리영은 ‘내 이야기 들어줄 수 있어요?’라고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전화에서 은주에게 묻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아리영은 자신의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한 게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간절하게 애원한 것이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없다고 느낄 때의 막막함과 답답함, 세상에 나 혼자밖에 없다고 느낄 때의 외로움이 전달돼 마음이 너무 아프다.
 
17세에 생명을 마무리하려고 결심했을 때,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리영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죽고 싶어서 죽으려고 결심한 게 아니라 살기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죽겠다는 결심을 한다는 점을 놓치면 안 된다.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혹덩어리, 나는 엄마의 혹덩어리라고 아리영은 말한다. 사랑을 받고 자라도 결핍이 생길 수 있는 어린 나이에 그런 취급을 받은 것인데,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아가 그렇게 형성된다는 것이 더 큰 문제, 더 큰 위험이다. 애들이 무섭고 세상이 무섭다는 극중 대사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달빛요정과 소녀>는 세상에 나 혼자만 아픈 게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모두 기죽지 마라는 말과 노래 또한 덧붙인다. 애들이 무섭고 세상이 무서운 게 너의 탓이 아니라는 것 또한 극 중에서 더 명확하게 전달됐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 부른 박원상!
 
<달빛요정과 소녀>에서 박원상은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 뮤지컬 배우가 아닌 인디 뮤지션처럼 노래 불렀는데, 대사 없이 노래만 부른 공연 전반부는 더욱 그러했다. 박원상의 창법은 뮤지컬 이야기가 아닌 현실처럼 느끼게 만든다. 일반적인 뮤지컬 창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연 후 에너지 소비는 엄청날 것이다.
 
박원상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을 미화하거나 환상적인 영역에서 표현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박원상이 표현하려는 사람은 화려한 이진원이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이진원이라고 보이는데, 진정으로 이진원을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생각된다.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 언제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빛으로, 관객과 무대를 정서적으로 연결한 김영옥
 
<달빛요정과 소녀> 초반 김영옥의 눈빛은 긴장과 동결을 드러내면서도, 그러면서도 전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실감 나게 표현한다. 얼굴도 모르는 채 정말 위험한 상황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하면서 내 전화로 인해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명감과 절실함, 절박함을 전달한다.
 
김영옥의 눈빛을 보면서 실제로 SOS 전화를 받으면 저런 표정일 수 있겠다고 생각된다. 뮤지컬 초반부에는 언제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빛으로 표현했는데, 눈물이 맺혀있는데 참고 있는 모습에 공감이 됐다. 마네킹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는데, 관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연기를 했기 때문에 김영옥의 디테일한 표현은 생생하게 전달됐다.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달빛요정과 소녀’ 공연사진. 사진=극단 차이무 제공>

◇ 인디음악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을 인디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생생함과 몰입감
 
<달빛요정과 소녀>는 건반(문지현), 기타(김기빈, 서아림), 베이스(배정훈), 드럼(임혜원)으로 이뤄진 포크스푼(The Folkspoons)의 라이브 연주로 진행됐다. 인디음악을 다룬 뮤지컬에서 인디밴드가 라이브로 연주하는 생생함과 몰입감은 극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커튼콜에서 포크스푼은 자신들의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는데, 연극과 음악의 만남, 대학로와 홍대의 만남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포크스푼의 공연 비중이 더 늘어난 새로운 버전의 <달빛요정과 소녀>이 홍대에서 공연되면 관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해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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