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 때, 쌍용차는 렉스턴 스포츠를 론칭하고 시승회를 열었다. G4 렉스턴의 단순한 픽업 버전인 줄 알았던 이 차의 완성도는 예상보다 뛰어났다. 자동차 전문가들의 호평이 이어졌고, 일반 소비자들도 그 가치를 알아봤다. 쌍용차가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한 10만6202대 가운데 렉스턴 스포츠는 4만2021대로 4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다.
쌍용차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1년여가 지나 ‘렉스턴 스포츠 칸’을 선보였다. 가장 큰 특징은 렉스턴 스포츠보다 휠베이스를 110㎜ 늘이고 화물공간을 대폭 키운 것. 데크 용량은 1011ℓ에서 1262ℓ로, 적재용량은 400㎏에서 500~700㎏으로 커졌으며 차체 길이는 310㎜ 늘어났다.
늘어난 휠베이스는 실내공간보다는 짐칸을 키우는 데 온전히 쓰였다. 실내공간이 늘어난 버전을 따로 만드는 것도 좋겠지만, 그러자면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진다.
짐칸을 늘이는 데 올인한 결과, 옆모습의 밸런스는 오히려 더 좋아졌다. SUV의 승객석 뒤에 짐칸을 붙인 모습이라기보다는 처음부터 픽업으로 디자인된 차 같은 느낌이다.
재미있는 건 리어 서스펜션을 5링크 또는 파워 리프 스프링 두 가지 타입으로 갖췄다는 점이다. 리프 스프링은 판 스프링을 겹겹이 쌓아 앞뒤로 이은 것으로, 무거운 짐을 실을 때 차체가 처지는 것을 막는 용도로 쓴다.
기존 적재함으로도 레저 생활을 즐기는 데 무리는 없지만, 더 많은 적재용량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살짝 부족했던 게 사실. 반면에 리프 스프링을 쓰면 승차감 면에서는 손해다. 특히 적재공간이 비어있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쌍용차는 이 점을 의식해 리프 스프링을 쓴 모델에는 일정량의 화물을 미리 실어놓고 시승회를 시작했다.
예상대로 리프 스프링 모델은 자잘한 노면의 요철이 실내로 전해지는데, 기존 트럭들보다는 훨씬 정제됐다. 위 아래로 흔들리는 피칭도 어느 정도 억제돼 있어 큰 불편함은 없다.
시승회에서 만난 쌍용차 관계자는 “리프 스프링 모델의 승차감이 더 좋다”고 한다. 그는 리프 스프링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 보였다. 하지만 서울로 돌아올 때 5링크 타입을 타보니 역시 5링크는 5링크였다. 리프 스프링보다 훨씬 부드럽고 움직임이 안정돼 있다. 특히 뒷좌석 승차감도 앞좌석만큼이나 좋다.
렉스턴 스포츠 칸은 기존 e-XDi220 엔진의 최고출력을 그대로 둔 채 최대토크만 42.8㎏·m로 키웠다. 렉스턴 스포츠도 파워 부족은 전혀 못 느꼈는데, 최대토크가 2.0㎏·m 늘어난 이 엔진은 힘에서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아이신의 6단 자동변속기와의 궁합도 척척 맞는다. 급가속 때의 소음도 잘 억제되어 있다.
뛰어난 정숙성의 비결 중 하나는 이번에 추가한 언더커버 덕분이다. 언더 커버는 하체에서 올라오는 소음을 줄일 뿐 아니라, 오프로드에서 돌이나 바위로부터 차체를 보호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번 시승회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언덕경사로에서 밀림방지 시스템과 내리막주행안정장치 체험, 통나무 범피, 모굴, 사면경사로 체험이 마련됐다. 작년에 있던 슬라럼 코스는 없앴지만, 대신에 모굴 코스를 훨씬 깊게 파서 험로주행 능력을 알리는 데 중점을 뒀다.
모굴 코스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깊이가 상당했으나, 렉스턴 스포츠 칸은 네 바퀴 중 두 바퀴만 땅에 닿는 상황에서도 거뜬히 헤쳐 나갔다. 다만 렉스턴 스포츠 칸은 짐칸이 늘어난 만큼 리어 오버행의 길이도 늘어나 너무 무리한 각도에서는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 이날 시승회에서도 운전이 미숙한 기자가 이 코스에서 뒤 범퍼를 파손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렉스턴 스포츠는 수동과 자동변속기 두 가지가 나오지만 칸은 오로지 자동변속기만 장착했다. 자동변속기 기준으로 렉스턴 스포츠 칸 2WD 모델은 도심 9.1㎞/ℓ, 고속도로 11.3㎞/ℓ, 복합 10.0㎞/ℓ이고, 4WD 모델은 도심 8.9㎞/ℓ, 고속도로 10.8㎞/ℓ, 복합 9.7㎞/ℓ다. 렉스턴 스포츠는 모든 항목에서 리터당 0.1㎞를 더 간다. 늘어난 짐칸에 비하면 연비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다.
트림은 4가지다. 리프 스프링을 쓴 파이오니어 라인은 2838만~3071만원이고, 5링크 타입을 쓴 프로페셔널 라인은 2986만~3367만원이다. 프로페셔널 S와 비슷한 옵션을 갖춘 렉스턴 스포츠 노블레스를 비교하면 대략 30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렉스턴 스포츠 칸은 점차 다양해지는 아웃도어 레저 생활에 잘 어울리는 파트너가 될 것이다. 특히 경쟁 브랜드의 SUV가 넘볼 수 없는 압도적인 적재용량은 쌍용차가 가진 강점을 더욱 극대화시켜줄 전망이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짐칸만 늘인 게 아니라 활용성이 좋아졌다. 승차감을 원한다면 5링크를 고를 것.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