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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 차이콥스키만 남고, 푸시킨은 사라지다?

발행일 : 2019-02-28 00:24:39

메가박스에서 상영 중인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스페이드의 여왕(The Queen of Spades)>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작품으로, 2018년 5월 잘츠부르크 대축전극장 실황 영상이다.
 
고난도의 아리아를 실력파 성악가들의 노래로 듣는 감동은 엄청나지만, 공감해 몰입하고 감정이입하기에는 불편하고 방해가 되는 요소들이 너무 많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푸시킨의 단편을 원작으로 만든 오페라인데, 스토리텔링의 각색을 거치고 나서 ‘차이콥스키만 남고 푸시킨은 사라졌다’라고 느껴진다는 점이 안타깝다.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 최선을 다해 만든 아리아! 감동적이고 멋지지만, 완급 조절 없고 폭발하지 않는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대규모 합창단이 무대에 올라 웅장함을 발휘했다. 그렇지만 움직임에 있어서는 어수선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유럽 스타일로 칼군무를 하지 않은 것까지는 괜찮은데, 디테일에 있어서 대규모의 합창단이 각자 개개인의 스타일로 안무를 소화하다 보니 공연 군무라기보다는 그냥 아마추어 파티 댄스타임 같은 느낌도 들었다. 군무의 콘셉트가 이해하기 난해했다는 점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의 하나였다.
 
완급 조절, 강약 조절 없이 계속 힘줘서 부르는 아리아는 처음에는 감동적이었지만 점점 감흥이 떨어지고 지루해졌는데, ‘끔찍한 저주’가 주는 날카로운 긴장감 또한 점점 줄어들었다.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스페이드의 여왕>은 테너 브랜던 요바노비치(헤르만 역), 소프라노 예브게니아 무라베바(리자 역) 등 성악가들이 어려운 노래를 참 잘 부른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절절한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페라 본연의 묘미, 아리아 본연의 감동을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 스토리텔링에 개연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헤르만 캐릭터에 몰입하기 어렵다?
 
<스페이드의 여왕>은 도박에 대한 내용인데, 도박사의 짜릿함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원작이 푸시킨의 단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각색된 이야기에 몰입하기 힘들었다. 몰입하기 힘든 도박 이야기는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었다. 스토리텔링의 개연성과 디테일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운 각색은, 결국 완급 조절 없는 아리아 또한 점점 불편하게 느끼게 만들었다.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오페라 시작할 때의 회전문의 시각적 효과는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결과적으로 사람은 움직이지 않고 문만 움직이는 형태로 진행됐다. 공연 시작부터 헤르만을 궁지에 몰아넣어 엄청 큰 긴장감과 갈등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들었는데, 192분이 지난 후 마치 예고편이 가장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나온 느낌은 관객을 허탈하게 만들 수 있다.
 
상의를 풀어헤친 헤르만!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나 생각하게 된다. 시각적 볼거리를 제공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리자에게 당신에 대한 사랑으로 고통받는다고 노래로 표현하는 헤르만은 왜 고통을 받는지에 대한 공감을 충분히 전달하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창작 과정에서는 충분히 논의가 있었을 수도 있는데, 감정의 연결고리와 과정에 대한 생략이 너무 많아 감정이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뜬금없다고 느껴지기도 했는데, 관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푸시킨의 원작이 빛을 내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 노래와 음악만으로 오페라를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스페이드의 여왕>
 
‘젊음은 영원하지 않고, 늙음은 서둘러 찾아온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스페이드의 여왕>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음악만 듣겠다고 결심하고 관람하면 무척 좋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아리아가 강렬하게 폭발하는 시간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절절한 감동을 기대한 관객들은 더욱 실망할 수 있다. 영상 속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관객들도 그리 크게 흥분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영상 속 관객들은 공연 중간에는 안정적인 박수를 치다가 커튼콜 때는 큰 환호를 보내는데, 작품에 대한 환호가 아니라 최선을 다한 성악가들에 대한 환호로 느껴진다.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가 나왔을 때 영상 속 관객들이 상대적으로 가장 큰 환호했는데, <스페이드의 여왕>의 영상 속 관객들은 오페라보다는 그냥 음악일 때 더 가치가 있다고 반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오페라가 아닌 3시간짜리 진지한 뮤직비디오를 본 느낌은, 스토리텔링에 큰 의미를 두는 우리나라 관객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다. 오페라를 비롯해 종합 무대 공연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은 스토리텔링인데, 훌륭한 원작을 살리지 못했다는 점은 정말 아쉽다.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스페이드의 여왕’ 공연사진. 사진=Pique Dame ⓒ SF RuthWalz 제공>

<스페이드의 여왕>에는 긴장을 이완하는 인물이 없다. 지루해질만하면 나와서 관객들을 웃게 만드는 캐릭터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게 봐야 하는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그나마 웃음을 주는, 긴장을 이완하게 만드는 장면은 춤추는 장면인데 화끈하게 볼거리를 제공했다면 남은 공연 시간 동안 다시 집중해 또다시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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