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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영화] ‘질투의 역사’ 많은 남자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지만, 정작 본인이 원하는 사랑은 한 번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발행일 : 2019-03-10 13:37:42

정인봉 감독의 <질투의 역사(The History of Jealousy)>에서 대학 선후배였던 수민(남규리 분), 원호(오지호 분), 진숙(장소연 분), 홍(김승현 분), 선기(조한선 분)는 10년 만의 재회하고, 다섯 명 사이에 있던 진실이 오늘 밤 드러난다.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선배’라고 부르는 호칭은 영화의 전체적 뉘앙스를 짐작하게 만드는데, 공간, 시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다. 많은 남자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이 원하는 사랑은 한 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수민에 대해 관객은 공감할 수도, 공감하기 싫을 수도 있다.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선배’라고 부르는 사이! 공간, 시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질투의 역사>에서 수민은 원호에게 “선배 옆에 있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선배’라고 부르는 사이인데, 사귀기 전에도 사귀고 나서도 헤어지고 나서도 마찬가지이다. 원호는 수민에게 아예 호칭을 부르지 않는다.
 
원호와 수민은 서로에게 호칭은 어색하게 표현하지만 마음과 행동은 진지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호칭이 뭐 그리 대수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선후배라는 틀을 뛰어넘는 사랑을 하지는 않는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호칭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어색한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보인다.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여자 후배인 수민은 적극적이고 남자 선배인 원호는 수용적이다. 원호의 몸에 난 상처를 보고 “아팠겠다”라고 말하는 수민에게 원호는 “어릴 때 상천데 뭐 이젠 괜찮아”라고 대답한다.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데, 가슴에 난 상처와 마음에 간직한 상처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질투의 역사>는 공간, 시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10년이 지나도 근본적인 면은 바뀌지 않고,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관계를 그들은 유지한다.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다소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다.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 영화 초반은 영화라기보다는 장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 영화 마지막 장면의 파격이 모든 것을 매듭짓는다!
 
<질투의 역사>는 영화 초반에는 영화라기보다는 장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스토리텔링의 촘촘함보다는 이미지적, 뉘앙스적 흐름이 펼쳐지고, 감정 또한 생략과 점핑이 곳곳에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등장인물이 왜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왜 마음이 변하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독은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밝혔는데, 너무 많이 생각하고 곱씹고 느끼면서, 영화를 만들 때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기는 감정들을 생략하거나 뛰어넘었을 수도 있다.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이런 상황은 작가나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반복해 생각하며 간직하고 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내가 당연히 알고 있고 느끼고 있는 것을 상대방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 좀 더 친절하게 감정의 흐름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제작비와 제작시간의 한계 때문에 다 표현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더 많이 좋아하면서도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공유와 공감이, 더 전반적으로 더 디테일하게 펼쳐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데, 섬세하게 공감하면서 내면에 있는 실제 디테일한 감정이 왜곡돼 표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감독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 많은 남자들로부터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이 원하는 사랑은 한 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수민
 
<질투의 역사>에서는 수민이 바라보는 사람과 수민을 바라보는 사람이 같지 않을 때가 많다. 내가 바라보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나를 바라보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나를 바라보는 사람과 내가 바라보는 사람 사이에서의 갈등은 영화 속 주된 정서 중의 하나이다.
 
원호는 수민의 희생과 배려의 가치에 대한 고마움을 진지하게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을 받을 줄 알았지 주는 법을 모르는 것으로 보인다. 내 여자일 때는 잘해주지 않고 헤어진 이후에 집착하는 모습은 원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우리 각자에게도 존재하는 모습의 단면일 수도 있다.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수민은 많은 남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기는 하지만 정작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받지는 못한다. 사랑은 자신 혹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작됐어도, 유지하는 것은 오롯이 수민 본인의 몫인 것이다.
 
수민과 만난 남자들은 모두 작은 오해를 포용하지 못한다. 수민은 보호받지도 못하고 안전하다고 느끼지도 못한다. 사귀는 사람이 있을 때도 어쩌면 수민은 외롭고 허전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유이다.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질투의 역사’ 스틸사진. 사진=유앤정필름 제공>

수민 역을 소화하는 남규리 혼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감정에 진지하게 공감하는 관객도 있을 것이고, 별로 공감하고 싶지 않은 관객도 있을 것이다. 어린수민 역을 맡았던 박한솔은 성인이 된 수민 역의 남규리를 보며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 궁금하다.
 
<질투의 역사>에서 수민이 머리를 자르고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는 장면은, 내가 나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평상시 나의 모습, 나의 스타일이 아닌데, 가면을 쓰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질투라는 본능적 감정이 가진 양면성에 대해 영화는 마지막에 ‘너라고 달랐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달랐을까? 다르지 않았을까?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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