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규 감독의 <파도치는 땅(The Land on the Waves)>은 1967년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을 소재로, 국가 폭력으로 균열된 가족의 상처가 치유되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사건보다 정서적인 측면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그 이후 그 일을 겪은 사람들과 가족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감독의 의도를 영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
◇ 간첩 조작 사건 자체보다는, 그 이후 그 일을 겪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담았다
<파도치는 땅>은 1967년 납북 어부 간첩 조작 사건 자체를 파헤치기보다는, 그 이후 그 일을 겪은 사람들과 가족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막 빠른 속도로 이야기를 펼치면서 궁금증을 바로바로 해소해주지는 않는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난 당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을 수도 있지만, 그 이후의 기나긴 시간은 당사자들에게 매우 천천히 지나갔을 수도 있는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영화가 가진 호흡의 속도는 와닿는다.
영상도 다큐멘터리처럼 롱테이크로 진행되는 시간이 많다. <파도치는 땅>은 관객에게 생각할 시간과 마음의 여백을 충분히 준다. 하나의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몰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 은혜가 가진 미스터리, 은혜가 받은 오해
<파도치는 땅>에서 어느 날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은 잊고 지낸 상처의 기억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만든다. 문성(박정학 분)은 학원 사업에 실패하고 자금을 마련하러 다니고, 그의 하나뿐인 아들 도진(맹세창 분)은 미국 유학을 중단하고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오랫동안 절연했던 아버지 광덕(전영운 분)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은 문성은 30여 년 만에 고향 군산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간호하는 미스터리한 여인 은혜(이태경 분)를 만난다.
은혜에 대한 궁금증, 선입견, 오해는 문성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가질 수 있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이어질 이야기를 계속 상상하는 관객은 보상금과 관련된 선입견을 더더욱 가질 수 있다. 은혜가 받은 오해, 말하지 못한 억울했던 일을 알게 되면서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아픔이 있다는 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왜 이제 찾아오셨어요?”라고 은혜가 문성에게 묻는 장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은혜의 분노를 폭발할 수도 있고, 문성을 크게 질책하거나 죄책감을 부여할 수도 있는 장면에서 감독은 확정적인 정서와 감정을 관객에게 주입하지 않는다. 이 영화의 톤을 이해한다면, 이 장면을 표현할 때 정말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 잊고 지냈던 역사의 상흔, 국가의 폭력이 남긴 삼대의 비밀,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감독
<파도치는 땅>은 국가가 가한 폭력이 한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포함된 가족 전체에 준 영향을 정서적인 측면에서 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는 잊히지만, 본인과 가족들에게는 계속 남아있는 아픔과 슬픔, 고통과 편견에 관심을 가진다.
영화 속 삼대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서로 밀접하게 교류를 하고 지냈다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감독은 서로 교류하지 못한 가족의 관계성 또한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고 한다.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 것 같다고 느껴진다. 날 것 그대로의 모습, 포장되거나 미화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삼대의 관계도 미화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과도 일맥상통한다.
자극적인 영화에 익숙해진 관객, 아름다운 영상을 원하는 관객, 명쾌하고 빠른 질주와 응징을 원하는 관객 등은 개인의 성향과 경험에 따라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관객이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불편한 점을 부드럽게 미화하지도 않았다는 점 또한 감독이 어떤 마음과 의도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는지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