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거 없이 완벽한 봄날이었다. 진행요원이 이끄는 대로 가니 눈앞에 2세대부터 7세대까지의 3시리즈가 도열한 장관(壯觀)이 펼쳐진다.
관리상태도 상당히 좋았는데, 개인 소유 차량을 수소문해 모았다고 한다. 1세대(E21) 모델은 미처 구하지 못했다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어차피 한국에는 2세대 모델부터 공식 수입됐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3시리즈는 3세대(E36)부터 또렷하다. 첫 직장이었던 ‘자동차생활’ 기자 때 시승했던 이 차는 3시리즈가 동급 최고의 차로 자리 잡게 한 주역이었다.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벤츠도 이 당시의 C클래스는 감히 3시리즈에 맞설 수 없었다.
4세대(E46)의 330i의 시승 느낌은 지금도 강렬히 남아 있다. 콤팩트한 차체에 직렬 6기통 3.0ℓ 엔진을 얹고 펄펄 날아다니던 모습은 20대 후반의 내 모습을 닮았다.
2004년 데뷔한 5세대(E90/E91/E92/E93) 부터는 차체가 확 커졌다. 2008년 데뷔한 후기형부터는 한국에도 디젤 모델이 들어왔다. 이 모델이 큰 인기를 끌자 6세대(F30/F31)는 디젤부터 한국에 소개됐다.
이날 시승회에 온 기자들 중에 3세대부터 시승해본 이들이 나 말고 몇이나 있을까. 뿌듯했던 기분도 잠시. 그만큼 내가 나이 먹었다는 거 아닌가.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나왔다.
역대 모델들이 그랬듯이, 뉴 3시리즈는 구형보다 커졌다. 전장은 76㎜ 길어진 4709㎜, 전폭은 16㎜ 늘어난 1827㎜, 전고는 6㎜ 높인 1435㎜, 휠베이스는 41㎜ 더 길어진 2851㎜로 기존 대비 차체 크기가 더욱 커졌다. 그러면서도 공차중량은 55㎏ 가벼워졌고 무게중심은 10㎜ 낮아졌다.
차체를 마냥 키우면 둔해 보일 수 있지만, 뉴 3시리즈는 짧은 오버행, 긴 보닛, 호프마이스터 킥 같은 특유의 요소와 다이내믹한 차체 비율을 그대로 유지했다.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이어지는 스타일은 7시리즈에 도입됐을 때만 해도 다소 어색하다는 평이 있었다. 한데 이번 뉴 3시리즈는 그런 점을 찾아보기 힘들다. 레이저 라이트를 더한 눈매는 더욱 날카로워졌고, 액티브 에어 스트림을 장착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위쪽 각도를 살짝 눕히면서 한층 날렵해 보인다.
대시보드는 7시리즈, 5시리즈의 기조를 기어가면서 한결 세련되게 다듬었다. 플로팅 타입 모니터를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BMW는 이번엔 모니터가 클러스터에 착 달라붙는 형태의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했다. 이 모니터는 클러스터와 이어지면서 곡선을 이뤄 마치 두 요소가 연결된 듯한 느낌을 줬다. 뉴 3시리즈 인테리어를 담당한 김누리 디자이너는 “원가가 더 많이 드는 방식이지만, 스크린이 더 넓어보이는 효과가 있어 택했다”고 설명한다.
시승은 서울 코엑스에서 출발해 경기도 양평을 왕복하는 코스. 운전을 문영재 기자에게 맡기고 조수석에 앉으니 무릎이 하늘로 붕 뜬다. BMW 특유의 낮은 시트 포지션 때문이다. 시트 쿠션의 앞부분만 위로 올리면 자세가 좀 나아질 거 같은데, 앞뒤가 같이 오르고 내리도록 돼 있다.
뉴 3시리즈의 성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까. 아무나 도전하지 않는다는 중미산 일대가 시승코스로 잡혀 있다. 전날 시승회 때는 이 지방에 눈이 왔다는데, 내가 시승한 날은 너무도 화창했다. 안 달릴 수가 없는 날이었다.
시승 모델은 320d와 330i, 두 종류가 준비됐다. 많은 기자들이 과거 320d의 인기 때문에 디젤 모델을 더 선택했지만, 나는 가솔린차를 좋아하기 때문에 330i를 골랐다.
330i는 직렬 4기통 2.0ℓ 트윈 파워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해 최고출력 258마력, 최대토크 40.8㎏·m를 낸다. 6세대 330i는 각각 252마력, 35.7㎏·m였다.
1550rpm부터 발휘되는 최대토크는 4400rpm까지 쭉쭉 뻗어나간다. 무엇보다 힘을 억지스럽게 뽑아내지 않고 마치 6기통 엔진처럼 자연스럽게 뿜어내는 게 인상적이다. 덕분에 터보 특유의 억지로 쥐어 짜내는 소리가 사라졌다.
타이어는 내가 현장에서 확인한 것만 4가지 종류의 브랜드였다. 굿이어와 브리지스톤, 피렐리, 한국타이어가 있었는데 내가 탄 시승차는 피렐리 P-제로 제품이었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 피렐리라는 브랜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F1 그랑프리의 타이어 경쟁 체제를 단독 공급 체제로 바꾼 장본인인 데다, 경주 중 타이어 사고가 잦으면서 이미지를 구겼기 때문이다.
한데, 330i에 장착된 피렐리는 확실히 과거 명성이 살아 있었다. 구형인 F30은 승차감에 비중을 둔 탓에 와인딩 로드에서 다소 허둥대는 모습도 있었는데, 신형은 좀처럼 중심을 잃지 않고 접지력을 끈적끈적하게 유지한다.
드라이빙 모드는 기어 레버 뒤쪽에 마련된 버튼을 눌러 바꿀 수 있다. 스포츠와 컴포트, 에코 등이 마련되는데, 스포츠 모드라고 마구 통통 튀진 않고 컴포트 모드라고 물렁거리지 않는다. 화끈한 주행을 즐기는 이라면 추후 시판될 M340i를 기다리는 것도 괜찮겠다.
330i x드라이브의 인증연비는 도심 9.2, 고속도로 12.4, 복합 10.4㎞/ℓ다. 후륜 모델은 각각 10.0, 13.0, 11.1로 차이가 크지 않다.
뉴 3시리즈의 가격은 330i 럭셔리가 6020만원, M스포츠 패키지가 6220만원, 시승 모델인 330i x드라이브는 럭셔리가 6320만원, M스포츠 패키지가 6510만원이다. 320d는 5320만원부터 5920만원까지 6종류가 마련된다. M340i의 가격은 7590만원으로, 성능에 비해 가격이 꽤 괜찮게 나왔다.
3시리즈는 출시 이후 45년간 동급 세그먼트를 지배해온 BMW의 간판 모델이다. 짧은 시승시간이었지만 신형 3시리즈는 여전히 동급 최강임을 느낄 수 있었다.
평점(별 다섯 개 만점. ☆는 1/2)
익스테리어 ★★★★☆
인테리어 ★★★★★
파워트레인 ★★★★☆
서스펜션 ★★★★☆
정숙성 ★★★★☆
운전재미 ★★★★★
연비 ★★★★
값 대비 가치 ★★★★☆
총평: 더욱 세련되고 강력해졌다. 역시 동급 최강!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