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에서 개최된 제52회 휴스턴국제영화제에서 <경치 좋은 자리(A BEAUTIFUL VIEW)>는 장편영화부문 금상과 아시안영화부문 베스트편집상을 수상했다. 본지는 임혜령 감독에 이어 박중권 감독의 인터뷰를 게재한다.
이하 박중권 감독과의 일문일답
Q1.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제가 십대 때 일본에 출장 갔다 온 넷째 형이 카메라를 사왔어요. 캐논 5D 필름 카메라였는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영화와의 인연이 시작된 게. 인물을 담는 게 좋았어요.
학교도 안 나가고 송탄, 의정부 같은 미군기지 앞에 미군 물건을 파시는 분들, 그런 곳 들을 찍고 다니고. 특히 송탄에서 6개월 가까이 월세방을 얻어서 살았어요. 사진 찍으려고. 미군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풍경을 멀리서 찍었는데 특수한 환경이 묻어있는 살아있는 인물을 찍는 게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멀리서 찍은 사람들에게 점점 다가가게 되고 지금도 다가가는 과정에 있고요. 이번 저희 영화에서도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주변을 카메라가 맴도는 느낌이 든다는 평이 있었는데 제가 인물에게 다가가는 방법인 것 같아요.
Q2. 감독님의 영화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가 뭘까요?
죽음.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사라짐에 대한 것.
제가 19살 때 몸이 크게 아팠어요. 죽을 고비를 넘기는 큰 수술을 받고 고통스러운 것보다도 몸이 안 움직일 때 불안감과 무기력감이 컸어요. 남들보다 활동적이고 고등학교 때는 운동까지 했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중환자실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산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아무렇지 않게 사람이 죽어가는 구나. 처음에는 충격 이였는데 나중에는 허무한 느낌이 들었어요.
사람은 항상 죽기위해 달려가는 구나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람에게는 명이라는 게 존대하는데 그것이 삶의 길이가 아니라 목적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주어진 명이 과연 무엇일까? 나에게 주어진 명이 무엇일까? 제 영화에 있어서 죽음이라는 화두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가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더 강해진 계기는 2004년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앗아간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현장을 촬영하면서였던 것 같아요. 우연한 기회로 그 쓰나미 현장을 방문한 자원봉사자에 대한 이야기를 현지에 방문해서 촬영 했었어요. 수십만의 삶이 한순간에 부서진 도시와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게 됐어요.
그때 반쯤 무너진 건물 안에서 한 시계방을 봤어요. 남아있는 벽 한쪽에 시계가 가득 걸려있는데 수많은 시계들이 쓰나미가 도시를 휩쓸었던 그 시간에 시계 바늘이 멈춰있는 풍경.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어요. 그러다 제 발 밑에 시선이 갔는데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어요.
그러자 남겨진 사람들, 부서진 삶 속에서 내일을 살아야하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갔어요. 이번 영화에서도 살던 마을이 수몰되고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남겨진 사람들이 하루하루 사는 게 예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건 그 사람들의 예술을 어떻게 하면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 같아요.
죽음의 순간들이 제 삶에 있어서 항상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내일은 죽음을 위한 시간이기 때문에 오늘의 삶은 내일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Q3. 상업영화 현장에서 활동해오셨는데 연출이 아닌 다양한 파트를 활동하셨다고 들었어요.
2003년에 영화 <마파도>를 시작으로 백동현 촬영감독님 밑에서 촬영부로 활동했어요. 화면의 설계와 정확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이 배웠죠. 그런데 촬영부를 하면 할수록 영화적 분위기를 좌우하는 조명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조명 디자인뿐만 아니라 조명을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져서 다음 영화 <분홍신>에서는 박종환 조명감독님의 밑에서 조명에 대해 알게 됐어요. 조명의 세계가 얼마나 변화와 진화가 무궁무진한지를 알게 된 경험이었죠.
그래서 다양한 작품에 참여하다가 한국 영화 현장을 많이 보고 싶어졌어요. 다양한 감독님들의 현장을 보고 싶어서 방법을 찾다가 스테디캠으로 가장 유명하셨던 여경보 촬영감독님 밑으로 들어갔어요. 영화 <열혈남아>, <괴물>, <타짜> 등등 정말 많은 영화 현장을 볼 수 있었어요. 여러 감독님들의 작업방식과 그 분들의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았어요.
다양한 현장에서의 경험들이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표현의 장을 넓혀준 것 같아요.
Q4. 두 분은 어떻게 같이 작업하게 되셨나요?
상업영화현장에서 일하던 중 좋은 제안을 받고 방송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어요. 처음 시작은 EBS <하나뿐인 지구>라는 프로그램인데 평소에 환경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시작하게 됐죠. 이후에도 다양한 방송다큐멘터리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임혜령 감독님과는 SBS스페셜 <유홍준, 일본 속 한국을 걷다>를 하면서 만나게 됐죠. 그렇게 인연을 이어오다가 제가 작업하던 시나리오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임 감독님의 고향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됐어요.
제가 작업하던 시나리오의 내용이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댐건설로 인해 살던 마을을 떠나고 현재를 살아가는 임혜령 감독님과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가 굉장히 마음에 와 닿았고 그래서 그곳을 배경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게 되었죠. 영화 제작을 진행하면서 주민들을 만나고 임혜령 감독님의 자전적인 이야기도 들어가게 되면서 공동연출을 하게 됐어요.
Q5. 전문배우가 아닌 주민들이 출연하게 된 계기는 뭘까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수몰지에 대한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듣기 위해서 지역주민들을 인터뷰했어요. 그러면서 이 분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영화 속에 담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었던 같아요.
또 임혜령 감독님이 지역에서 주민 분들과 영상제작 수업을 하면서 주민 분들이 직접 만들고 연기한 단편영화들을 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전문배우가 아닌 지역주민들이 연기를 해 볼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봤고 지역주민들과 임 감독님의 가족 분들을 영화 속에 배우로 등장시켰죠. 정말 특별한 경험 이였고 촬영하는 매 순간순간이 새롭고 즐거웠어요. 색이 바랜 수몰지의 공간들이 그 분들로 인해 색이 채워지고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죠.
Q6. 이번 영화를 촬영 하면서 좋았던 점은 무엇인가요?
영화의 촬영지가 너무 신비롭고 좋았어요. 저희 영화의 주요 촬영지가 예전에 마을이었던 곳이 도로나 집터만 남아 있다가 댐의 수위조절에 의해 물에 잠겼다가 드러나는 것을 반복하는 곳이에요.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물이 가득차서 굽이친 산들이 잠긴 커다란 호수의 풍경이 수려하다는 느낌만 받았죠.
그러다 몇 달 뒤 다시 방문했을 때 물이 빠지고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폐허에 노란색 중앙선이 흐릿하게 남은 회색 도로가 쭉 펼쳐져 있었는데 이런 곳이 대한민국에 있었다는 게 놀라웠어요.
그리고 일반인 분들과 영화를 제작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내가 다시 이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새롭고 배움의 연속이었죠.
Q7. <경치 좋은 자리>가 관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뭘까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대규모의 댐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사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연까지 하나하나 다 보듬어지지는 않았어요. 자의로 혹은 타의로 자신이 뿌리 내린 곳에서 떠난 사람들의 상실감과 그리움이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흔적은 다 사라졌지만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거든요.
한 사람이 죽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으면 그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듯이 무생물처럼 보이는 삶의 흔적이나 마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아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고 그것에 대해 저희 영화를 보는 분들이 세상에 모든 사라지고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한번쯤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또 그런 아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우리도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