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9

문화예술
HOME > 문화예술 > ET-ENT영화

[ET-ENT 영화] ‘갤버스턴’ 지옥이라고 생각해서 직면하기 어려웠던 현실! 직면했으면 삶은 달라졌을까?

발행일 : 2019-06-20 15:14:28

멜라니 로랑 감독의 <갤버스턴(Galveston)>은 지옥 속을 살고 있는 로이(벤 포스터 분)가 한 사건을 계기로,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소녀 록키(엘르 패닝 분)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옥이라고 생각해서 직면하기 어려웠던 현실에 직면했으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을 지은 작명법이 인상적인데, 상징과 오마주의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 지옥이라고 생각해서 직면하기 어려웠던 현실! 직면했으면 삶은 달라졌을까?
 
직면(直面, confrontation)은 두렵거나 회피하고 싶기에 생긴 행동, 사고, 감정의 불일치나 모순을 깨닫게 하는 것을 뜻한다. 불안이나 공포, 격한 슬픔 등 감당하기 힘든 것에 대해 직면하지 못하고, 심리적인 회피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갤버스턴>에서 로이는 의사의 엑스레이 브리핑을 듣지 않고 진료실을 뛰쳐나간다. 로이는 자신의 병에 대해 알아본다는 것이 직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 초반의 이 장면은 로이가 마지막 질주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설정이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는데, 영화를 끝까지 보면 결정적인 반전과 허탈함까지도 안겨줄 수 있는 심리적 대반전의 복선임을 깨달으면서 감탄할 수 있다.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은 ‘쫓기는 주제에’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도피와 회피가 전면에 나타난다. 19살인데 인생이 벌써 망한 느낌을 가진 록키는 희망은 없지만 제대로 살아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갤버스턴>은 관객의 성향과 각자의 현재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정말 삶이 막막한 사람은 격한 공감을 할 수도 있고,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명료하지 않은 감정을 계속 끌고 간다고 느끼며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 것이다.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 충분히 좋은 엄마! 엄마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엄마!
 
티파니(릴리 라인하트 분)는 자신이 버려진 게 아닌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진실을 확인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커진 의심과 불신의 마음을 보면서 마음이 아픈데, 단지 한 번의 마음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이유로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짠하게 느껴진다.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심리학자 도날드 위니콧(Donald Winnicott)은 ‘멸절(annihilation)’과 ‘충분히 좋은 엄마(good enough mother)’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엄마와 자신을 동일시하던 아이가, 절대적 의존과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시기에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존재 자체가 완전히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은 극도의 공포인 멸절을 경험하는 것이다.
 
<갤버스턴>에서 록키와 티파니는 각각 멸절의 고통을 겪는다. 이때 ‘충분히 좋은 엄마’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예방하는데, <갤버스턴>에서 충분히 좋은 엄마는 없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엄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로이는 짧은 시간이나마 록키와 티파니 각각에게 충분히 좋은 엄마의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다.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로이를 향한 록키의 마음, 록키가 로이에게 바라는 것은 보호와 안전이다. 그렇다면 <갤버스턴>에서 록키를 향한 로이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연민, 동정, 공감, 사랑, 보호 중 어떤 것을 선택해도 해석은 가능하다. 영화 관람 후 관객의 반응 또한 다양하게 나뉠 수 있다.
 
◇ <갤버스턴>의 작명법! 상징과 오마주!
 
왜 영화의 제목이 ‘갤버스턴’일까? 갤버스턴이라는 도시가 가진 이미지를 알면 <갤버스턴>은 영화 제목부터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비유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은 미국 텍사스주 멕시코만 연안의 갤버스턴섬 북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이다. 유럽 이민자들이 들어오는 주요 항구도시로 주목받았지만, 거대한 허리케인으로 많은 사상자를 낸 후 쇠퇴했다가 이제는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관광지로 유명해지고 있다. 갤버스턴이 가진 역사적 배경은 영화 속 희로애락과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여주인공 ‘록키’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출연한 영화 <록키(Rocky)>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든다. <록키>의 록키와 <갤버스턴>의 록키는 남녀의 차이, 스토리텔링의 차이는 있지만, 절망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고 싶은 욕구라는 공통적 정서를 가지고 있다.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 스틸사진. 사진=유로픽쳐스 제공>

<갤버스턴>에서 로이는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라고 말하는데,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서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 분)가 했던 대사를 오마주(hommage)한 것으로 보인다. 오마주는 영화에서 존경의 표시로 다른 작품의 주요 장면이나 대사를 인용하는 것을 뜻한다.
 
<갤버스턴>에서의 작명법과 대사를 보면 상징과 오마주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문화적 여건과 경험이 다른 관객에게는 직접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전체를 모두 공감하지 않고 핵심 정서만 공감해도 충분히 영화 속 감동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최신포토뉴스

위방향 화살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