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페미니스트라 불리는 나혜석. 이외 작가, 언론인, 독립운동가로도 불리는 나혜석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혼고백장’, ‘모된감상기’ 등의 파격적인 글과 행보로 유명하다.
그런 나혜석의 글 중 여행기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여성의 삶이 아닌 예술가의 삶을 산 나혜석의 1년 8개월간의 구미유람기 ‘꽃의 파리행’이다. ‘꽃의 파리행’은 서울의 동네서점 최초의 가이드북 ‘여행자의 동네서점’과 제주의 책방을 여행하고 쓴 ‘바다 냄새가 코 끝에’를 쓴 구선아 작가가 엮었다.
이하 구선아 작가와의 일문일답
Q1. ‘꽃의 파리행’을 소개해주세요.
‘꽃의 파리행’은 나혜석이 1920년대 말 1년 8개월 동안 유럽과 미주를 탐방하고 쓴 신문 기고 글을 모은 책이에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도시, 도시에서의 삶, 여성의 생활, 가정의 문화 등 그 시대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한 글을 엮고 재구성한 책입니다.
Q2. 책 제목은 어떤 의미인가요?
나혜석이 1933년 ‘三千里[삼천리]’에 파리행 수기를 쓴 글 제목이 ‘꽃의 파리행’이에요. 제목에 관해 별도 설명은 없지만 중의적 의미로 보여요. 꽃처럼 화려한 파리라는 의미도 있고, 본인을 꽃이라 칭한 것으로 볼 수도 있어요. 새로운 제목을 부치기보다는 나혜석이 직접 지은 제목이라면 더 의미 있을 것이고, 더군다나 세계 유람의 목적이었던 파리가 잘 드러나서 부치게 되었어요.
Q3. 표지가 아주 예쁩니다. 제목과도 잘 어울리고요.
나혜석의 그림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은데 그중 한 작품이에요. 표지 그림은 나혜석이 스페인 항구를 그린 그림이에요. 파리 그림도 있지만, 이 그림이 책 제목과도 내용과도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Q4. 이전에도 나혜석의 책이 출간되었는데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나혜석의 책은 소설, 수필, 이혼고백서 그리고 여행기까지 다양하게 여러 번 출간되었어요. 하지만 이번 ‘꽃의 파리행’이 가장 다른 점은 1년 8개월간의 시간을 보내고 조선에 돌아와 느낀 감정과 생활을 담은 글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1년 8개월 시간이 나혜석의 인생관과 예술관을 바꾸었거든요.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행기는 마지막 목차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를 읽기 위해 읽어야 하는 글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Q5. 나혜석에 관해 관심을 가진 건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예전부터 근대소설에 관심이 많았어요. 박태원, 이상, 윤동주 등의 글을 먼저 접했고 그들의 주변, 연계된 사람들, 그 시절의 글을 읽게 되었죠. 자연스럽게 나혜석의 소설과 글을 읽게 됐어요. 처음엔 그냥 할 말 하는 신여성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여러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놀랍더라고요. 특히 근대 도시와 전통사회에서 도시에서의 삶을 객관적으로 읽는 시선이 좋았어요.
Q6. 도시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지금 도시인문학 서점도 운영하고 계시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학부 땐 건축을, 그 다음엔 공간디자인을, 지금은 도시사회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처음엔 건축으로 시작해서 점점 도시와 도시에서의 삶에 관심이 커졌어요. 그래서 근대소설이나 한국소설 중에도 특정 도시나 장소에 관한 이야기에 더 흥미를 느껴요. 제가 쓰는 글도 읽는 글도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그리고 홍대 인근에서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독립출판물을 일부 다루고, 도시와 관련된 다양한 책도 소개하지만 도시에서 개인이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일들을 함께하고 싶어서 도시인문학 서점이라 이름 붙였어요.
Q7. 어떤 분께 ‘꽃의 파리행’을 추천하나요?
모든 여성분께 추천합니다. 여성주의 글 모음은 아니지만 여성으로서의 고뇌와 예술가로서의 고민이 잘 드러난 글입니다. 특히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안목과 식견, 철학이 매우 흥미로울 겁니다. 그리고 여행기와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께도 추천합니다. 솔직히 요즘 출간되는 세계여행기와 비교해도 세련된 감각을 가졌어요.
Q8.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통해 예술가로서, 문학가로서, 인간으로서의 나혜석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이번 작업을 통해 개인으로서 살며 자신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란스럽고 화려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잊지 않고 살았으면 합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