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제10회의 부제는 ‘(40일) 공모자’이다. 자신이 원하고 준비하지 않았는데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박무진(지진희 분)은 드라마 처음부터 지금까지 딜레마(Dilemma(horn))란 딜레마는 모두 겪는 것처럼 보인다. 딜레마는 일반적으로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것을 뜻하며, 두 개의 판단 사이에서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를 뜻한다.
거의 매회 박무진에게는 딜레마가 있었고, 박무진은 더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 이면의 진실을 찾으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과 같은 높은 학습능력으로 딜레마를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계속 생기는 딜레마 중에 제9회와 제10회를 중심으로 현재의 딜레마를 살펴본다. 박무진과 똑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박무진의 판단과 선택은 시청자들의 삶에도 큰 도움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박무진의 딜레마(1) : 자신의 정치생명이 걸려있을 수도 있는 스캔들을 해명할 것인가? vs. 아들이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힐 것인가?
<60일, 지정생존자> 제9회에 박무진은 박무진과 최강연(김규리 분)의 아들 박시완(남우현 분)의 출생에 대한 스캔들이 폭로될 위기에 처한다. 스캔들은 도덕성에 관련돼 있기 때문에 자신의 정치생명이 걸려 있다. 스캔들을 해명할 경우 아들에 대한 비밀을 세상에 알려야 하고 아들은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것이다. 도덕성에 대한 해명과 아들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 마음은 딜레마로 부딪힌다.
이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어른이 되어가는 건 마치 원칙과 기본보다 대의를 가장한 탐욕과 명분을 내세운 이익을 추구하는 거라는, 세상에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기시켜 주고 있다.
자기 아이의 마음은 무시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니까 한 나라의 수장이니까 청와대의 도덕성이 의심받으니까 나라의 안정을 위해 한 개인의 마음은 희생해도 된다는 논리가 <60일, 지정생존자> 제9회와 제10회에 펼쳐진다.
무엇을 위해서인가? 그래서 지켜진 안정이 무슨 의미인가? 아들을 저버린 아비가 이끄는 정부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게 살면 좋은가? 이런 의미를 생각하게 만드는데, 딜레마의 상황을 보며 드는 생각에도 딜레마가 끼어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의 박수를 받자고 자식을 지옥으로 밀어 넣어야 하는 건가요? 정치는 그렇게 하는 건가요? 내가 이 자리(기껏 대통령 권한대행)에 있다고 그 아이가 세상 모든 사람들 앞에서 비난받도록 해야 되나요?”라는 말은 박무진의 내면을 표현한 말이면서 동시에, 박무진이 딜레마에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말이다.
최강연이 자신과 아들 박시완에게 ‘우리’라는 표현을 썼을 때 박무진은 “그 우리에 나는 없는 거야?”라고 물었다. 정말 똑똑한 박시완은 “나 아빠 아들이잖아”라고 말해 시청자들을 완전 울컥하게 만들었는데, 딜레마의 상황에서 방향성을 제시했기에 울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딜레마 상황이 심화되면 울어야 하는지 아닌지 또한 딜레마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서울시장 강상구(안내상 분)를 찾아가 이야기할 때, 유리에 비친 얼굴은 페르소나(persona)일 수 있다. 페르소나는 그리스 어원의 ‘가면’을 나타내는 말로 ‘외적 인격’ 또는 ‘가면을 쓴 인격’을 뜻한다.
내 아들보다 페르소나를 중시한다면? 미친 거라고 속으로 분노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고, 세상을 살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너무나 당연히 나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서 아들의 마음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언제부터 이게 당연해진 건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자리는 좋은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말과 “한 번은 보고 싶었습니다. 좋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을”이라는 미친(!) 대사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서로 다르게 느낀 시청자들을 흔들었을 수 있다.
◇ 박무진의 딜레마(2) : 오영석을 테러 공모자로 간주해 국방부장관 임명을 거부할 것인가? vs. 임명 철회로 국정 지지도를 떨어뜨릴 것인가?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박무진은 국회의사당 테러에서 살아남은 국회의원 오영석(이준혁 분)에게 국방부장관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후 오영석이 테러에 연관돼 있다는 첩보를 듣게 되고,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박무진은 ‘오영석을 테러 공모자로 간주해 국방부장관 임명을 거부할 것인가?’와 ‘임명 철회로 국정 지지도를 떨어뜨릴 것인가?’ 사이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그 이전에는 ‘오영석을 국방부장관으로 발탁해 권한대행 체제의 통합 의지를 알릴 것인가?’와 ‘오영석에게 위험한 권한을 줄 것인가?’ 사이에서의 딜레마를 겪었었다.
오영석은 박무진에게 판단의 딜레마, 선택의 딜레마를 주는 인물이다. 오영석에 대한 판단과 선택이 명확해진다면, 그것은 테러의 배후에 대한 윤곽을 파악했거나 박무진이 딜레마에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일 수 있다.
◇ 박무진의 딜레마(3) : 청와대 사람을 아무도 믿지 않아야 하는가? vs. 믿어야 하는가?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박무진과 독대한 김준오(이하율 분)는 박무진에게 청와대에 테러의 공모자가 있다고 아무도 믿지 말라고 말한다. 박무진은 김준오의 말이 진실성이 있다고 받아들였지만, 그렇게 될 경우 권한대행의 자리에 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한정되거나 거의 없을 수 있다. 믿어야 하는가, 믿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는 지속될 수 있다.
◇ 박무진의 딜레마(4) : 도덕성의 딜레마
<60일, 지정생존자> 제9회에서 전직 비서실장 한주승(허준호 분)은 정치인의 도덕성은 양날의 검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박무진이 기대치를 너무 높여놓았다고 덧붙인다.
박무진의 도덕성은 순식간에 박무진을 가장 강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올려놓았지만, 다른 이유가 아닌 도덕성 때문에 오른 지지율은 도덕성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거나 혹은 반대의 면을 보여줄 때 한순간에 추락할 수도 있다. 도덕성의 딜레마는 박무진을 질주하게 만들 수도 있고, 박무진의 발을 잡을 수도 있다.
◇ 차영진이 테러의 공모자인가? ‘진실’일까 ‘드라마적 트릭’일까?
<60일, 지정생존자> 제10회에는 합참의장 이관묵(최재성 분)의 비밀 취급 인가를 취소를 국방부장관을 통해 지시한 사람이 국회의사당 테러의 공모자일 것이라는 추정을 하게 만들었고, 통화한 전화번호는 한주승과 차영진(손석구 분)이 함께 사용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제10회 마지막에 복원된 통화 파일에서 비밀 취급 인가 취소 지시 전화를 건 사람은 차영진이었다. 그렇다면 차영진이 청와대에 있는, 테러의 공모자인가? ‘진실’일수도 있지만, ‘드라마적 트릭’일수도 있다.
차영진이 독단으로 지시를 내렸을 수도 있지만, 한주승을 대신해 지시를 전달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하면, 드라마 후반부가 얼마 지나지 않은 제10회에서 바로 공모자를 알려주는 것은 호기심과 긴장감을 떨어트릴 수 있다.
제9회까지는 청와대 민정수석 안세영(이도엽 분)이 겉으로 가장 드러난 공모자로 몰아갔지만 제10회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받아들이게 된 것처럼, 제10회에 차영진을 공모자처럼 보이게 하는 것 또한 ‘드라마적 트릭’일수 있다.
네이버 방송 프로그램 정보의 등장인물 소개 순서를 보면 한주승은 세 번째 등장하고, 차영진은 일곱 번째 등장한다. 반전과 질주의 인물이 모두 첫 페이지에 소개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번째 페이지에 소개된 차영진이 공모자일 가능성은 줄어든다. 물론 이 또한 고도의 ‘드라마적 트릭’일수도 있지만, 개연성과 긴장을 낮추는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