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제15회의 부제는 ‘(32일) 함정’이다.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드라마가 선택한 이상향과 판타지가 제안됐는데, 제작진이 정말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일수 있다.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에 관련된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대한민국에 헌신했지만 모두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는 한나경(강한나 분)의 분석과 통찰은, 드라마 초반 사건에 집중했던 시야가 드라마의 종영을 앞두고 사람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60일, 지정생존자>가 제안하는 이상향과 판타지
<60일, 지정생존자> 제15회는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향과 판타지를 새로 제안함과 동시에 지난 회차까지 나왔던 좋은 사람의 의미 등 중요한 가치관이 박무진(지진희 분)의 빠른 회상을 통해 반복됐다.
우신영(오혜원 분) 기자는 “시끄럽고 소란스러워도 민주주의는 그런 과정이니까”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자정작용의 원리에 대해 언급한 것인데,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내포하고 있는 대사이다.
차영진(손석구 분)은 정치는 승자 독식이라고 생각했는데, 박무진 권한대행의 정치는 승자는 있어도 패자가 없는 정치라고 이야기한다. 정치에도 포용과 공존이 있을 수 있고, 이겼어도 상대방을 궤멸시키지 않아도 되고 졌어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타지가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제작진의 마음이 차영진을 통해 전달된다고 볼 수 있다.
◇ 각자의 자리에서 대한민국에 헌신했지만 모두 버림받은 사람들
<60일, 지정생존자> 제15회에서 한나경은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에 관련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김실장(전박찬 분), 이경표(최영우 분), 오영석(이준혁 분)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대한민국에 헌신했지만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며,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깊게 파고들어갔다.
국가정보원 대테러 팀 분석관 한나경은 어이없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납치되는 무기력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극적으로 탈출하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었다.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는 같은 팀 사이버 요원인 서지원(전성우 분)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테러와 연관된 사람의 공통점을 찾아내는 등 뛰어난 통찰력을 통해 전체적인 판의 흐름을 파악하고 핵심을 꿰뚫기도 한다.
얼핏 보면 한나경은 직선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도 있는데, 내면의 디테일로 들어가면 변화의 스펙트럼이 넓은 입체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60일, 지정생존자>에서 더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내면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강한나는 업무지향적인 한나경을 표현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나경과 강한나는 실제로 닮아있다.
◇ 양진만이 살아있다? 이런 추측이 나오는 이유는?
<60일, 지정생존자> 제15회에서 김실장은 박무진을 직접 만나 “VIP는 나예요. 이 테러의 처음과 끝에 박무진 권한대행 당신이 있었다. 박무진 당신이 이 테러를 완성시켰어.”라고 말함으로써 오히려 VIP가 아닐 수 있다는 추측을 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김실장이 VIP일 가능성은 존재한다.
이경표는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김실장이 무리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경표가 통화한 사람은 VIP일 수도 있고, 김실장이 VIP라는 것을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만약 이경표가 통화한 사람이 VIP라면 김실장 이외에 VIP와 직접 연락한 유일한 인물이 되는 것이고, 통화한 사람이 김실장이 VIP라는 것을 알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라면 이경표는 김실장이 VIP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통화한 사람은 김실장의 또 다른 조력자로 자금 등을 제공하는 사람 혹은 세력일 수 있다.
한 번의 방송을 남겨둔 <60일, 지정생존자>에서 아직 VIP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 양진만(김갑수 분)이 아직 살아있고 양진만이 VIP일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는 시청자도 있다.
개연성이 없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죽은 줄로 보였던 이경표가 실제로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고, 양진만 또한 테러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모습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60일, 지정생존자> 시즌2를 위해 VIP의 존재를 끝까지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면, 실제로 양진만이 VIP인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는 뉘앙스를 전달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진짜 암시가 아닌 거짓 암시인 ‘역암시’일 수도 있고, 시청자들의 상상력과 아량을 자극하는 ‘드라마적 트릭’일수도 있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