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ENM 제작, 뮤지컬 <보디가드>가 11월 28일부터 2020년 2월 23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이다. 레이첼 마론(김선영, 박기영, 손승연, 해나 분) 역 김선영이 해석한 레이첼이 어떤 인물인지에 주목하면, 뮤지컬의 전체적인 정서를 이해하고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는데 더욱 용이해진다.
뮤지컬 무대에서 뮤지컬 넘버를 부르지 않는 남자 주인공인 보디가드 프랭크 파머 역 이동건, 강경준은 어떤 심정일지 궁금해진다. 스토커(이율 분)에 대한 명분을 명확하게 부여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와 효과를 살펴보면 제작진이 무척 똑똑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김선영이 해석한 레이첼 마론은 어떤 인물인가? 외적인 캐릭터? 내면이 강조된 캐릭터?
<보디가드>는 뮤지컬 무대가 아닌 쇼 무대 같은 특수효과로 시작한다. 원작 영화의 사운드트랙과 휘트니 휴스턴의 또 다른 대표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주크박스 뮤지컬로, 레이첼이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으로 뮤지컬은 시작한다.
김선영은 무척 모범적으로 춤을 소화하는데, 피아노를 치면서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등 혼자 노래할 때 더욱 감동적이다. 김선영은 레이첼 캐릭터의 외적인 모습보다 내면을 더욱 강조해 표현하려고 했을 수도 있다고 추정된다.
레이첼이 데이트를 신청하는 방법을 통해 레이첼이 강하고 세기보다는 여리고 순수한 면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김선영의 레이첼은 정서적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보호를 받아야 할 레이첼은, 프랭크에게 “걱정 마라요”, “내가 지켜줄게요”라고 하면서 보호본능과 모성애를 발휘하기도 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고 바에서 노래를 부를 때, 레이첼 내면에 있는 ‘본질적인 나’가 부각된다. 자신이 스타인 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자연인으로 노래를 부르는 게, 일탈이 아닌 자연스러운 자유라는 것을 김선영은 공감하게 만든다.
<보디가드>는 스타가 아닌 자연인으로 잘해주는 남자에게 여자가 끌리는 순간, 그런 여자를 있는 그대로의 감정으로 대하는 남자의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김선영은 레이첼이 스타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관객이 레이첼 마론의 언니 니키 마론(최현선, 정다희 분)에게 감정이입했을 경우, 김선영의 레이첼 마론은 관객이 상대적으로 레이첼에 거부감을 작게 느끼게 만들 수 있다.
◇ 뮤지컬 무대에서 뮤지컬 넘버를 부르지 않는(?) 남자 주인공 프랭크! 강경준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뮤지컬 무대에서 뮤지컬 넘버를 부르지 않는 남자 주인공의 심정은 어떨까? <보디가드>에서 프랭크가 노래를 한 번 부르기는 한다. 오페라의 아리아와 뮤지컬의 뮤지컬 넘버처럼 정형적인 노래는 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고, 그렇지만 어쨌든 한 곡을 불렀다고 볼 수도 있다.
강경준이 부른 노래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가 장면에 맞춰 한 곡을 부른 것과 더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 <보디가드>는 본격적으로 뮤지컬의 노래인 뮤지컬 넘버를 부르지 않는 주인공을 설정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만약 프랭크 또한 내면을 모두 노래로 표현했다면, <보디가드> 또한 다른 뮤지컬과 그냥 비슷한 느낌을 줬을 수도 있다.
강경준은 프랭크를 딱딱한 사람으로 표현한다. 브레이크를 주는 역할인데, 경호를 위해 다른 사람을 구속할 수밖에 없는 남자가 츤데레(‘츤’ 겉으로는 차갑지만, ‘데레’ 마음은 따뜻한 사람을 뜻함)라는 것을 강경준은 절제하며 표현한다.
◇ 스토커에 대한 명분을 명확하게 부여하지 않았다! 이유와 효과는?
<보디가드>는 스토커가 집착, 불안장애, 망상, 분노를 가졌을 것이라고 스토커에 대한 추정을 할 뿐, 스토커에 대한 명분을 분명하게 주지는 않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텔링의 개연성과 촘촘함을 위해 가해자에 대한 명분과 전사가 자세하게 표현될 경우,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미화됐을 수도 있다. 뮤지컬은 스토리텔링이 노래, 춤과 함께 펼쳐지기 때문이다.
만약 연극으로 표현됐다면 스토커의 내면이 스토커를 통해 직접적으로 보여줘도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뮤지컬 <보디가드>에서 스토커의 명분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똑똑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보디가드>에는 스토커가 레이첼과 자신을 투사적 동일시한다고 추정하는 장면이 있다. 뮤지컬만 보면 어떤 종류의 투사적 동일시를 어떻게 한다는 것을 알기 힘들다. 자세하게 설명하고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용어에 대한 적용이나 해석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보디가드>에서 주요 등장인물인 레이첼, 니키, 프랭크, 스토커는 모두 각기 다르지만, 내 마음속의 상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레이첼은 사랑은 날 아프게 만드는 것, 울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니키는 사랑받는 감정을 느껴보고 싶었던 마음에 실수를 하기도 한다.
문이 좁아지면서 닫히고, 열리면서 넓어지는 장면 전환이 많다. <보디가드>에서 이러한 연출은 등장인물의 마음의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